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98 : 2 (+ 에어컨 없는 집)



  ‘온누리 찬바람 살림새(전세계 에어컨 보급률)’를 문득 보았다. 2023해로 놓고 볼 적에 우리나라는 ‘98%’가 찬바람(에어컨)을 집에 갖추었다고 한다. 이때 뒤로 세 해가 지났으니 99%까지 이르렀을 수 있고, 99.5%까지 닿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값은 100%에 닿을 수는 없다. 우리집에는 찬바람을 안 놓으니까. 우리집에는 바람개비(선풍기)조차 안 놓으니까.


  한여름에 찬바람과 바람개비 없이 어찌 사느냐고 놀라거나 “미쳤어!” 하고 소리지르는 분이 많더라. 그러나 우리집은 따로 빛살(전기) 먹는 바람틀을 안 들여도 여름에 덥지 않다. 이따금 땀이 살짝 돋을 때가 있는데, 땀이 돋으면 샘물로 씻는다. 샘물은 얼음장 같다. 샘물로 씻고 나면 한나절이 서늘하다. 씻고 나서 땀이 또 돋으면 더 씻으면 된다. 손빨래를 하면 된다. 설거지를 해도 온몸이 시원하다.


  처음 시골집에 깃든 2011해에는 여름뿐 아니라 한봄에도 더웠다. 2011해에는 이미 봄부터 집안이 31℃를 넘기더라. 그때에는 왜 이렇게 펄펄 끓었겠는가. 바로 살림집을 둘러싼 나무가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해에 가끔 가지치기를 아주 살짝 할 뿐, 나무가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도록 지켜보고 돌아본다. 가지나 줄기를 함부로 쳐서 열매를 더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다리를 대어 오르거나, 그냥 나무타기를 하며 열매와 꽃을 딴다. 우듬지에 맺는 열매는 새한테 베푼다.


  해마다 나무가 우거질수록 집안은 덜 덥더라. 여름에 35℃까지 오르던 집안이었으나 33℃에 31℃에 29℃로 떨어지나더니, 이제는 한여름에 27℃ 즈음에서 더 오르지 않으며, 요사이는 24∼26℃ 사이였고, 여름밤에는 23℃ 안팎이다. 한겨울에도 14℃ 밑으로 안 떨어진다. 겨울에도 낮이면 17℃ 안팎이다. 올해에는 우리집 마당에 우거진 후박나무 가지를 조금 쳤다. 마당과 바깥닫이 사이를 오갈 길을 내려고 살짝 잘랐다. 이렇게 길을 트고 보니, 마당과 바깥닫이 사이를 오갈 적마다 나무 밑에서 푸른그늘을 한바탕 누린다. 큰나무가 포근히 품는 푸른숨을 그저 집에서 넉넉히 누린다. 마당도 뒤꼍도 옆밭도 나무가 차츰 자라면서 뙤약볕과 눈바람을 모두 가려 준다.


  우리나라 집집마다 찬바람(에어컨)을 98%나 들였다고 할 적에는 98%에 이르는 집이 “나무 없이 매몰찬 수렁에 잠겼다”는 뜻이라고 느낀다. 나무가 잘 자라서 푸른바람을 넉넉히 베푸는 곳이라면 바람개비조차 쓸 일이 없다. 부채질조차 할 일이 없다. 그래, 올해에는 우리집에서 부채질조차 안 하면서 지낸다. 다만, 셈틀을 켜서 일할 적에는 ‘나(사람)’한테 부채질을 안 하되, 셈틀(컴퓨터)이 애써 주기 때문에 셈틀더러 몸(하드디스크)을 식히라고 부채질을 한다.


  ‘98 : 2’라는, 또는 ‘99.5 : 0.5’라는, 더없이 슬픈 값을 우리 스스로 뒤바꿀 수 있기를 빈다. 모든 집에서 찬바람을 확 걷어치우고서 “나무를 심는 마당을 누리는 작은집이나 시골집이나 골목집”으로 살림터를 옮길 수 있기를 빈다. 집집마다 나무를 적어도 다섯 그루씩 건사하면 된다. 시원한 여름과 포근한 겨울을 바란다면 집집마다 나무를 적어도 열 그루씩 품으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시멘트덩이’로 세우는 돈판(부동산)이 아닌, 나무를 엮고 맞춰서 세우는 작은집으로 바꾸어 가기를 빈다. 나무로 집을 짓고서 둘레를 나무로 감싸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가 늘어나야 이 나라 앞길이 푸르게 빛난다. 2026.6.2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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