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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ㅣ 창비시선 162
양애경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6.23.
노래책시렁 554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양애경
창작과비평사
1997.5.25.
큰아이가 “내가 설거지 할 테니까 그냥 두셔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갑니다. 손을 씻으려고 그릇 몇 벌을 슥슥 설거지를 합니다. 자리에 누워서 등허리를 폅니다. 개구리노래를 들으며 꿈누리를 다녀온 한밤에 문득 일어납니다. 이제부터 하루를 새로 여는데, 다시 낯과 손을 씻으려고 설거지를 조금 더 합니다. 이튿날 아침에 큰아이가 “어? 누가 설거지를 했지?” 하고 궁금해 하면, “하늘에서 누가 내려와서 하고 갔지.” 하고 속삭입니다.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를 돌아봅니다. ‘바닥’이란 ‘바다’와 같고, ‘바탕’이며, ‘밭’입니다. 바닥과 바다와 바탕과 밭이 있기에, 우리는 ‘발’을 놀려서 일어서고 움직이고 걷고 다니고 오가고 뛰고 달리다가 가만히 앉습니다. 발바닥은 발에서도 바닥이요, 이 땅(땅바닥)을 맨 먼저 느끼면서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발바닥으로 땅바닥을 디디는 사람은 늘 땅빛부터 헤아리며 스스로 온빛을 품습니다. 발바닥 아닌 달구지(자동차)에 으레 몸을 실으면 땅(이웃)을 등지거나 모르고, 이때에는 손바닥으로 겉글을 쓰거나 겉일을 하기 일쑤예요. 노래를 하려면 발바닥과 손바닥을 놀려서 땅과 하늘을 품을 노릇입니다. 노래를 듣고 부르고 나누려면 삶이라는 바닥부터 사랑할 일입니다.
ㅍㄹㄴ
그래, 적어도 나는 모기에게는 / 완벽한 애인이 될 수 있겠군. (모기가 내 팔을 물었을 때/9쪽)
저녁 밥 숟갈을 놓고 / 상 건너를 바라보았다 / 그가 숟갈을 놓고 / 이쪽을 건너다보았다 / 그의 눈동자 속이 복잡하게 얽히고 / 내 눈동자 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 그가 말했다 “배가 부르니 / 아무 생각이 없군요” / 내가 말했다 “정말 그래요 배가 부르면 /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죠” // 그러나 우리는 서로 /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거짓말/20쪽)
옛날엔 대갓집이었다는 낡은 한옥이 나오고 / 문간에서 팔순이 된 이모가 반겨줄 것이다 / 전에는 청량리역까지 마중을 나왔고 / 몇 달 전에는 종점까지 마중을 나왔지만 / 이제 이모는 다리가 아파 문간까지밖에 못 나오실 것이다 / 아이고 내 새끼 하고 이모는 말하고 싶겠지만 / 이제 푹 삭은 나이가 된 조카가 싫어할까봐 / 아이고 교수님 바쁜데 웬일일까라고 하실 것이다 (이모에게 가는 길/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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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나를 받아주네》(양애경, 창작과비평사, 1997)
낙엽은 썩고 그 사이로 버섯들이 돋아나고 있어
→ 갈잎은 썩고 사이로 버섯이 돋아나
→ 가랑잎은 썩고 사이로 버섯이 돋아나
6쪽
잎과 순들을 흔들고 있어
→ 잎과 싹을 흔들어
→ 잎과 새싹을 흔들어
6쪽
모기의 침의 굵기만큼의 구멍이다
→ 모기바늘 굵기만큼 구멍난다
→ 모기바늘 굵기만 한 구멍이다
8쪽
독액을 주입하고 피를 마신 다음
→ 쏘아대고 피를 마신 다음
→ 죽음물을 넣고 피를 마신 다음
8쪽
하지만 겨울 대기 속에서 걸으며 나는 내 몸을 느낀다
→ 그러나 나는 겨울바람에 걸으며 내 몸을 느낀다
→ 그렇지만 나는 이 겨울에 걸으며 온몸을 느낀다
16쪽
우리는 서로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우리는 서로 거짓말인 줄 잘 안다
20쪽
유행성독감이라고 하면서 앓고 있지만
→ 돌림고뿔이라고 하면서 앓지만
→ 고뿔바람이라고 하면서 앓지만
27쪽
오직 인간만이 증오로 임신시킬 수 있을 거예요
→ 오직 사람만이 미워하며 애를 배요
→ 오직 사람만이 사무쳐서 씨를 뿌려요
58쪽
봉급을 받기 시작한 후로도 십년이 지나서 그 금고를 열어 보았죠
→ 달삯을 받고 나서도 열 해가 지나서 그 돈시렁을 열어 보았죠
→ 품삯을 받은 뒤로도 열 해가 지나서 그 돈칸을 열어 보았죠
70쪽
세금 낼 만큼 돈을 많이 벌었는 줄은 몰랐었다
→ 떼어갈 만큼 돈을 많이 번 줄은 몰랐다
→ 낛을 낼 만큼 돈을 많이 번 줄은 몰랐다
81쪽
장마철의 개미의 둑처럼
→ 장마철 개미둑처럼
97쪽
나는 쉽게 상처받는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육체의 치유력 못지 않게 신비스러운 정신의 치유력도 있는 것 같다
→ 나는 쉽게 다친다. 그런데 사람은 몸을 살리는 힘 못지 않게 마음을 놀랍게 살리는 듯하다
→ 나는 쉽게 멍든다. 그러나 사람은 몸살림빛 못지 않게 마음살림빛이 놀랍다
12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