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애국자 없는 나라 (+ 서울국제도서전)



  떠난 권정생 님은 예전에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글을 남겼다. 참 아름답다고 느끼는 글이다. ‘나라사랑(애국)’이라는 이름을 내걸수록 오히려 ‘사랑’하고는 먼 채 ‘나라에 목숨바치기’에 휩쓸려서 그만 넋을 잃고 마음까지 잊는다고 느낀다. 2026해 첫여름에 미국에서 열리는 공마당(축구월드컵)이 바로 ‘나라사랑’으로 치닫는 일 가운데 하나일 테지. 큰돈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싸움판을 ‘공’으로 주고받는다.


  2012해에 한글판으로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David Small + Heather Henson)라 나온 그림책이 있다. 2008년에 미국에서 “That Book Woman”이란 이름으로 나왔고, 1930해무렵에 말을 타고서 두멧시골에 책을 나르는 아주머니가 심은 꿈씨앗을 다룬 이야기이다. 책집도 배움터도 마을도 아예 없는 그야말로 두멧시골에 말을 타고서 머나먼길을 간 ‘책아줌마(도서관 사서)’는 오직 책 한 자락으로 사람 사이를 잇는 길을 냈다. ‘더 많은 사람’한테 이바지하는 책지기(사서)가 아닌, ‘오직 한 아이’한테 다가가려고 여러 날에 걸쳐서 말을 몰고, 다시 여러 날에 걸쳐서 말을 몰며 일터로 돌아간 책지기를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올해(2026) 첫여름에 ‘서울국제도서전’을 또 연다. 또 열지만 ‘도서전 사유화’는 터럭만큼도 가시지 않았다. 고름덩이를 그대로 안으면서 ‘책장사’를 이어가는 늪이다. 곰곰이 볼 노릇이다. 더 많은 책을 사고판다든지, 더 드날릴 이름꾼(유명작가)을 만난다든지, 더 좋은 책잔치를 누린다든지, 더 큰 한마당에서 어울린다든지, 다 ‘좋은’ 일이겠지. 그러나 ‘좋은책’으로는 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하고는 멀다. 우리가 책을 읽는 뜻이란 “좋은책 가려읽기”가 아니라 “책이라는 나무숨결(종이꾸러미)에 담은 사람숨빛(지은이 꿈씨앗)을 헤아리는 사랑을 누리기”라는 길을 알아가려는 하루이지 않을까. 스스로 깨어나려고 읽을 책이지 않은가. 이웃하고 나란히 눈뜨려고 쓰고 짓고 엮고 여며서 선보이고 작은책집에 들이는 책이지 않은가.


  우리 목소리로 바꿀 수 있고, 또는 못 바꿀 수 있다. 목소리를 낼 적에는 바꾸려는 뜻도 있을 테지만, ‘남(그들)’이 바뀌기를 바라는 뜻보다는 ‘나(우리)’부터 새롭게 눈뜨고 깨어나서 이 삶을 새롭게 사랑으로 지으려는 씨앗을 심으려는 마음이라고 느낀다. ‘몇몇잔치’가 아닌 ‘모두놀이’로 나아가기를 바라기에 목소리를 낸다. ‘그들잔치’가 아닌 ‘모두노래’로 피어나기를 바라기에 목소리를 낸다. 푸른숲을 바라보자는 뜻으로 목소리를 낸다. 이제는 ‘덩치(대규모)’가 아니라 ‘씨앗(너와 나와 우리)’을 품자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낸다.


  지난해(2025해)에 ‘이름을 내놓고서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 반대 목소리’를 낸 숱한 분이 엄청나게 화살을 맞았다. ‘사유화 반대 목소리’란, “책은 몇몇 힘꾼(권력자) 사유물(권력수단)이 아닌, 책은 모두가 누릴 빛”이라는 이야기를 펴겠다는 마음이다.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을 뿐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익혀서, 누구나 눈길과 숨길과 마음길을 틔울 뿐 아니라, 누구나 살림길과 사랑길과 사람길을 깨우치고는, 누구나 푸른숲과 파란하늘과 하얀별을 품는 오늘을 살아가는 곁빛으로 책을 읽는다고 본다. 그야말로 ‘누구나잔치’로 가야 맞는 서울책잔치이다. ‘서로잔치’로 가야 아름답다. ‘함께잔치’로 틔워야 즐겁다.


  우리나라 그림책밭을 갓 여는 길에 크게 이바지한 ‘마루벌’이란 펴냄터가 있다. 이 알찬 펴냄터는 가뭇없이 닫았다. 이곳에서 2003해에 옮긴 《무지개를 잡았어요》(돈 프리먼)라는 아름그림책을 오늘 드디어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큰아이(열아홉 살)랑 나란히 앉아서 읽었다. 아무리 아름그림책이어도 펴냄터가 사라지면 다시는 못 찾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첫손꼽는 책잔치라면, ‘책장사’만 하기보다는 ‘책읽기’와 ‘책나눔’과 ‘책노래’를 펼 수 있는 어깨동무로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라사랑(애국)’이 아닌 ‘나사랑(진정한 평화)’일 적에 비로소 서로서로 사이를 틔워서 파란바람이 싱그럽게 불겠지. 2026.6.1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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