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13 개는 왜 ‘개’일까

책벌레수다 : 이름을 읽는 마음



  그저 모든 하루를 새롭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차분할 수 있는가. 언제나 배우는 줄 느끼면 따로 종이(졸업장)를 따려고 악착같이 굴지 않는다. 모든 하루가 배움날인 줄 모르기에 배움터(학교)에 붙들려서 목돈을 배움삯으로 치른다. 언제나 배우는 줄 느끼면 모든 돈을 살림살이에 들이면서 느긋이 이웃하고 나눈다. 목돈을 벌었어도 꽉 움켜쥐면서 부풀리기(자산증식)에 힘쓰는 이가 수두룩한데, 하루하루 배우는 기쁜 길이 아니라, 근심걱정으로 꽉꽉 들어찬 나머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터라, 자꾸자꾸 셈값(은행계좌)을 들여다보고 만다.


개벚나무, 개옻나무 …… 많기도 했는데, ‘개’를 붙인 것이 미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개’라고 붙였는지 모르겠어요. 나무들도 안 좋아할 것 같아요.” 미로의 말을 듣고 이야기꾼이 웃었다. 《이야기꾼 미로》 155쪽


  스스로 눈망울을 빛내면 스스로 알아본다. 스스로 눈이 흐리니 스스로 못 알아본다. 눈비가 그치고서 구름이 걷힌 하늘을 ‘개다’라 한다. 즐겁게 입은 옷을 말끔히 빨고서 해바람에 보송보송 말린 뒤에 정갈하게 다루어 놓으면 ‘개다’라 한다. 밤새 몸을 포근히 쉬어 새롭게 기운을 되찾고 일어난 뒤에 이부자리를 깔끔히 치우면 ‘개다’라 한다. 물과 가루를 알맞게 섞고서 손수 새롭게 밥차림이나 그릇을 빚으려고 하는 일을 ‘개다’라 한다. ‘개다’라는 낱말에서 밑동이 ‘개’이고, 사람 곁에서 오래도록 살림동무로 지낸 이웃을 가리키는 이름인 ‘개’일 뿐 아니라, 빗물이 들숲메를 거쳐서 바다로 들어서는 길목을 ‘개’라 한다. 이리하여 ‘개살구’나 ‘개오동’이나 ‘개나리’를 비롯한 곳에 붙는 ‘개-’라는 이름은 맑고 밝고 푸르고 곱고 홀가분하고 호젓하고 즐겁고 놀라운 숨빛을 가리키려고 붙이는 얼개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통증을 고칠 힘이 있다. 수년간 나는 스스로의 증상을 극복해 낸 많은 환자들과 함께했다. 《통증 탈출》 233쪽


  느끼려 하지 않으면 읽지 못 한다. 읽으려 하지 않으면 알지 못 한다. 알려 하지 않으면 느끼지 않는다. 모든 삶은 한결같이 어울리면서 흐른다. 물결이 칠 적에는 내려갔다가 올라간다. 먼저 올라가지 않는다. 바닥에서 하늘로 나아가는 춤짓인 바다이다. 바람도 매한가지이다. 먼저 솟구치지 않는다. 가만히 밑으로 스윽 곤두박을 하다가 휙 춤짓으로 온곳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멧자락을 오르려면 멧자락이 아닌 밑자락에서 살아야 한다. 밑자락에서 살기에 기꺼이 봉우리를 바라보며 올라간 뒤에, 밑자락에 있는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돌고도는 삶이란 언제나 사랑이다. 온곳에 감도는 푸른사랑이자 파란사랑이다.


‘아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곳에 미래는 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키우는 이들에게 행복한 사회일까?’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 8》 225∼226쪽


  개가 왜 ‘개’인 줄 알아차리면, 참이 왜 ‘참’인 줄 알아본다. ‘참·차다’는 ‘차갑다·겨울’과 나란하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기에 ‘차다’요, 이러한 결을 바로 겹겹 두르는 겨울이라는 철이다. 겨울에 이르러야 비로소 ‘차다·참’이다. 그러면 스스로 돌아볼 노릇이다. 왜 겨울이어야 ‘참’일까? 왜 겨울에 이르지 않으면 ‘차다’를 못 느끼고 못 배울까? 겨울이란, 봄여름가을로 이은 세 가지 철을 모두 마무르고서 쉬는 때이다. 쉬면서 꿈을 그리는 철인 겨울이다. 몸짓을 멈춰세우고서 고즈넉이 마음빛을 채우는 철인 겨울이다. 겨우내 꿈을 그리면서 마음을 빛으로 채우기에 새롭게 봄맞이를 할 수 있다. ‘참’이란 참하면서 참되고 착한 길인데, 차근차근 차곡차곤 찬찬히 천천히 철들면서 씨앗이 오롯이 차는 때를 나타낸다고 할 만하다. 모든 씨앗은 겨우내 속으로 차야 봄에 싹틔우고 뿌리내린다. 차가운 겨울빛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무와 배추와 마늘과 보리가 새봄에 알차게 거듭난다.


‘하지만 나밖에 없다. 이 대국에서 돌을 던지는 것도,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도, 여기 있는 나밖에 할 수 없다구!’ 《고스트 바둑왕 22》 106쪽


  모든 낱말은 다 다른 이름이다. ‘개’와 ‘개다’뿐 아니라, ‘참’과 ‘차다’와 ‘참다’도 우리가 지내는 삶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사람으로서 서로 마주하며 부르는 말소리인 ‘이름’만 이름이지 않다. ‘나’나 ‘너’라는 낱말도 이름이고, ‘하늘’과 ‘땅’이라는 낱말도 이름이다. 우리가 소리로 얹어서 주고받는 모든 말이 다 다르게 이름이다. 수수하고 숱한 모든 말씨를 가만히 헤아리기에 스스로 배우면서 스스로 빛난다. 수수하고 숱한 모든 말씨를 하나씩 읽으려고 하지 않으면 배움길하고 멀 뿐 아니라, 하나도 알아차리지 못 할 테니 그만 고리거나 고약하거나 괴롭게 굴레를 쓰고 만다. 누가 해줄 수 없다. 누가 돕지 않는다. 스스로 하기에 스스로 일으킨다. 숨을 쉴 사람은 나요, 숨을 뱉을 사람도 나이다. 나무는 나무 스스로 숨을 쉬고 뱉는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으로서 다르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바람 한 줄기를 숨꽃 하나로 받아들이고 내놓는다. 물 한 방울을 물꽃 한 톨로 맞아들이고 내놓는다.


“머나먼 과거와 머나먼 미래를 잇기 위해서 네가 있다고? 우리 모두 마찬가지야.” 《고스트 바둑왕 23》 118쪽


  나는 여태 어떻게 걸어왔는지 늘 되새긴다. 열 살 무렵에는 지난 아홉 해를 어떻게 걸어왔는지 되새기며 열한 살을 바라보았다. 스무 살 무렵에는 지난 열아홉 해를 어찌저찌 걸었는지 곱씹으며 스물한 살을 내다보았다. 서른 살 무렵에는 지난 스물아홉 해를 어떤 마음으로 거닐었는지 헤아리며 서른한 살을 지켜보았다. 마흔 살 무렵에는 지난 서른아홉 해를 얼마나 노래하며 걸었는지 짚으며 마흔한 살을 살펴보았다. 쉰 살에도 매한가지요, 예순 살과 일흔 살에도 똑같다. 지난걸음을 하나씩 가누면서 새걸음을 곰곰이 그린다. 나는 나대로 걷는다. 너는 너로서 걷는다. 우리는 다른 걸음새로 만나기에 다른 눈짓을 나누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걸었기에 놀랍지 않고, 네가 걸었으니 대단하지 않다. 이런 삶이 하나 있고, 저런 삶이 둘 있다. 하나와 둘이 만나서 셋을 이루면, 이 셋은 어느덧 씨앗 한 톨로 가만히 돌아가서 고요히 잠든다. 꿈이란 참 즐겁고 아름답다. 꿈으로 못 이룰 일이 없다. 먼저 꿈으로 하나하나 이루고서 삶으로 맞아들인다. 언제나 꿈씨를 한 톨 심어서 돌아보기에, 이윽고 삶길을 차근차근 내딛는다. 나는 내가 바다를 이루고 바람으로 춤사위를 펼 꿈을 생각한다. 너는 네가 너울로 일어나고 돌개바람으로 노래할 꿈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배우면서 그리니까.


ㅍㄹㄴ


《이야기꾼 미로》(천세진, 교유서가, 2021.6.18.)

《통증 탈출》(알랜 고든·아론 지브/김선아 옮김, 샨티, 2025.12.15.)

#TheWayOut (나가는 길) #AlanGordon #AlonZiv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 8》(가시와기 하루코/하성호 옮김, 문학동네, 2025.6.9.)

#健康で文化的な最低限度の生活 #ケンカツ #柏木ハルコ 

《고스트 바둑왕 22》(호타 유미·오바타 타케시/김기숙 옮김, 서울문화사, 2003.8.30.)

《고스트 바둑왕 23》(호타 유미·오바타 타케시/김기숙 옮김, 서울문화사, 2003.10.20.)

#ヒカルの碁 #ほったゆみ #小畑健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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