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온실꽃
‘유리집·비닐집’으로 키우는 데를 ‘온실’이라고 하더구나. 바깥은 겨울이거나 눈보라에 비바람에 벼락이 몰아치더라도 안쪽은 멀쩡한 곳이 ‘온실’이더구나. 밖(삶)을 모르는 채 ‘좋은것’만 먹으면서 이쁘장하게 꾸미는 데가 온실인 셈이야. 삶은 모르더라도 껍데기라는 겉몸만 보기좋게 만들면 된다고 여기는 온실이지. 보렴! 요즘은 사람들이 ‘ai·인공지능’에 기대어 손을 안 쓰고 몸을 안 쓰려고들 하더라. ‘몸’이란 ‘삶’을 보고 듣고 겪고 느끼면서 배우는 곳이기에, 몸써서 배울 때라야 살아가. 몸을 안 쓰면 삶이 없을 뿐 아니라, 삶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웃”을 모조리 몰라. ‘온실꽃’이란 “ai에 기대는 서울사람”이요, “몸소 밥옷집을 지어서 나눌 줄 모르는 서울사람”이고, “학교는 다니되 스스로 안 배우고 안 익히는 서울사람”이란다. 너는 길을 그려 볼 수 있을까? ‘온실꽃’은 ‘온실’이라는 데가 저를 살리는 오직 하나인 아늑한 집으로 여기겠지. ‘밖’이 어떠한지 모르면서 그저 두렵거나 무서워하기 쉬워. ‘안’이 얼마나 좁게 가두면서 얽매는지 모르는 채 길들고 갇힌단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시골도 들숲메도 멀리해. 어쩌다가 시골이나 들숲메에 놀러가기는 하지만, 시골과 들숲메를 삶터·살림터·사랑터로 삼을 줄 몰라. 서울사람이 누리는 모든 밥옷집이 시골과 들숲메에서 비롯하더라도, 스스로 짓거나 빚거나 가꾸려는 마음을 못 일으켜. 서울(온실)을 떠나면 죽는다고 두려워하지. 서울(온실)을 벗어나면, 여태 쌓은 ‘따뜻·아늑집’을 몽땅 잃는다고 무서워해. 모든 다른 사람이 그저 똑같이 예쁘장하게 꾸며서 키재기하듯 자랑하는 서울(온실)에서는 ‘빛’이 바래도 ‘숨’이 죽고 ‘씨’를 못 맺는 줄 까맣게 몰라. 밖(숲)으로 안 가니까. 2026.5.24.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