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시골에서 서울로



  시골에서 서울로 간다. 시골내기가 서울바람을 쐬려고 간다. 엊저녁에 곁님이 “서울에 왜 가요?” 하고 묻기에 “그림책 《열두 달 소꿉노래》를 펴낸 곳에서 그림지기(화가)를 미국에서도 모시고, 그림책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해서 거기 가려고요.” 하고 들려준다.


  마을앞에 잿더미가 수북하다. 여태 마을앞에 있던 마을집(회관)을 허문 부스러기이다. 곧 크게 새 마을집을 세운다고 한다. 시골버스는 읍내에 닿고, 읍내에서 시외버스가 빠른길을 가른다. 고흥읍 곳곳을 보면 숱한 길나무가 줄기치기로 시달린다. 요새는 가지치기가 아닌 줄기치기를 끔찍하게 하더라. 빠른길을 한창 달리자니 길가에 우거진 아름드리를 마구 솎거나 뽑아낸 자국이 보인다. 벌써 잎이 다 시든 나무가 있고, 아직 푸른잎을 버티는 나무가 있다.


  서울(도시)에서 살면서 마음을 푸르게 돌보면 서울집(도시거주)도 푸른집이게 마련이다. 시골에서 살지만 마음이 하나도 안 푸르면 시골집(농촌거주)도 안 푸르게 마련이라서 잿집이다. 풀밥을 먹기에 풀몸(푸른몸)으로 바뀌지 않는다. 풀포기에 흐르는 풀빛을 읽고 느껴서 우리 마음으로 이으려 할 적에 비로소 풀몸(푸른몸)으로 가꿀 수 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도 몸이 바뀌되, 무슨 마음을 머금느냐에 따라서 몸을 가꾼다. 밥은 몸을 바꾸되 가꾸지는 못 한다. 마음은 몸을 바꾸기보다는 가꾸는 길이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못 하거나 안 하는 길”을 자꾸 쳐다보면서 “오늘 내가 이곳에서 즐겁게 짓고 펴고 노래하는 길”을 잊어갈 적에는 푸른집도 푸른마음도 푸른밥도 푸른말도 모두 잃어버린다. 고기밥을 즐기면서도 몸이 멀쩡한 사람은 “먹어서 바꾸려는 몸”이 아닌 “마음을 돌보면서 가꾸려는 몸”이다. 풀밥을 하지만 몸이 더 지치고 고단하면서 자꾸 불길(분노)이 솟는 사람은 “밥만 바꾸면 다 바뀌리라 잘못 여긴 탓”에 그만 짜증과 싫음과 미움과 불길이 끝없이 쳇바퀴질이게 마련이다.


  풀을 두 포기 먹어야 푸르지 않다. 풀을 한 포기 귀퉁이만 살짝 손끝으로 스쳐도 풀몸(푸른몸)으로 피어날 수 있다. 풀잎만 먹는데 몸이 푸른빛이지 않은 애벌레가 얼마나 많은가? 그저 풀잎만 갉았을 뿐이고, 고치를 틀고서 날개돋이를 했을 뿐인데 눈부신 날개를 매단 범나비에 제비나비에 모시나비에 부전나비에 네발나비에 그야말로 아름답다. 꽃가루와 꿀을 먹기 앞서 풀만 먹었으나 ‘몸’이 아닌 ‘마음’을 가꾸려고 하기에 스스로 거듭난다.


  바다를 가르는 고래가 바다에서 풀만 먹는가? 머리가 뛰어나다는 돌고래는 바다에서 무엇을 먹을까? 눈밭에서 어버이사랑을 베푸는 얼음새(펭귄)는 풀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북극곰은 무엇을 먹는가? 곰은 풀과 꽃과 낟알과 열매도 즐기지만, “풀만 먹는 곰”이란 없다. 풀을 먹기에 사람빛을 되찾지 않는다. 푸른마음을 먼저 돌보면서 가꾸려고 할 적에 비로소 찬찬히 사랑이라는 빛을 펴면서 둘레를 포근히 품어서 풀어낸다. 밥이 안 대수롭다는 뜻이 아니라, 밥에만 얽매이면 밥보(바보)가 되고 만다.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푸르게’ 살려는 마음으로 아침저녁과 밤낮을 짓고 그리고 펴려고 하는 나날이다. 비록 푸르지 않은 말과 몸짓과 마음이 곧잘 드러나더라도 늘 푸른길을 걸어가려는 그림을 늘 새롭게 그린다. 나는 ‘걷는이’이다. 나는 두다리로 선다. 나는 두눈으로 본다. 나는 두손으로 짓는다. 나는 두귀로 듣는다. 나는 왼눈만 뜨거나 오른눈으로만 볼 마음이 아니다. 나는 왼눈과 오른눈을 나란히 뜨면서 셋쨋눈을 한결같이 틔우려고 한다. 나는 왼손만 쓰거나 오른손만 쓰지 않는다. 나는 왼손으로도 오른손으로도 글씨를 쓰고 부엌칼을 다루고 두바퀴(자전거)를 달릴 뿐 아니라, 왼손으로도 오른손으로 나란히 공을 던지고 받을 수 있다. 나는 왼날개만 펴지 않는다. 나는 오른날개만 펴지 않는다. 나는 두날개를 나란히 펴면서 가운몸에 사랑이라는 빛줄기를 담아서 가슴을 열려고 한다.


  오늘 나는 푸른별이라는 집으로 간다. 시골에서 서울로 일하러 가는 길이되, 돈벌이가 아닌 ‘일’을 하려는 마음이다. 바람이 일듯 일을 한다. 바다가 일듯 일을 한다. 휘파람을 일으키듯 일을 한다. 이야기를 잇듯 일을 한다. 읽고 익혀서 일구려고 일을 한다. 나랑 너를 사랑이라는 눈빛으로 이으려고 일을 한다. 2026.5.1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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