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뭐래 창비시선 489
정끝별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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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5.8.

노래책시렁 549


《모래는 뭐래》

 정끝별

 창비

 2023.5.4.



  철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마흔 살부터는 스스로 ‘아저씨·아줌마’라는 이름을 받아들입니다. 아저씨나 아줌마는 나쁜말이 아닙니다. 철드는 숨빛을 품은 이름입니다. 철이 꽤 든다면, 예순 살부터는 ‘할아버지·할머니’라는 이름을 받아들이지요. 다만 아무나 할배·할매이지 않아요. ‘할-’은 ‘한-’을 가리키고, “하늘처럼 크고 너른”을 뜻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할아버지! 할머니!” 하고 부를 적에 비로소 ‘한사람(큰사람)’입니다. 《모래는 뭐래》를 여민 분은 ‘할머니’라는 이름을 받아들이려나요? “난 아직 젊어! 무슨?”이라고 여길까요? ‘시인·평론가·교수·작가’ 같은 이름을 받아들이는 분은 “아줌마 작가”나 “할머니 교수” 같은 이름을 안 반기는 듯합니다. 나라일꾼이어야 할 벼슬아치(국회의원)는 예순을 훌쩍 넘기고도 ‘오빠’이고 싶어하더군요. 철없습니다. ‘젊다·젊은이’란 ‘절다·절름발이’를 가리킵니다. 한창 불타오르느라 이리로 쏠리고 저리로 치닫기에 ‘젊다’고 해요. 아저씨·아줌마에 이르면 불타거나 치닫지 않고서 차분합니다. 할배·할매에 이르면 참하면서 착한 숨빛으로 어진 눈길을 베풀지요. 젊어 보이려는 글이 아닌, ‘아재·아지매’로서 차분히 가다듬는 글빛을 펼 때입니다. 또한 ‘할배·할매’로 참하게 피어나는 새꽃으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노래할 수 있을 테고요.


ㅍㄹㄴ


모래는 어디서 추락했을까? / 모래는 무엇에 부서져 저리 닮았을까? / 모래는 말보다 별보다 많을까? / 모래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 모래는 어떻게 투명한 유리가 될까? / 모래는 우주의 인질일까? / 설마 모래가 너일까? (모래는 무래?/33쪽)


기다란 잠의 꼬리를 늘어뜨린 너는 말랑말랑한 반죽 덩어리, 부푸는 중이야! // 아침에 버터를 바른 기름진 털을 노릇노릇 구워내는 오전의 햇살은 쏜살처럼 바빠 // 어쩌다가의 츄르처럼 달콤한 꿈은 깊은 호둣속 여행, 길을 잃고 호두까기 인형들과 한바탕 소동 (뽀또라는 이름의/42쪽)


+


《모래는 뭐래》(정끝별, 창비, 2023)


누구랄 것도 없이 누구도는 누군가의 아무개와 접하고 아무랄 것도 없이 아무도는 아무개의 누군가에 속한다

→ 누구라기보다 누구도는 누구네 아무개와 만나고 아무라기보다 아무도는 아무개네 누구에 깃든다

→ 누구보다도 누구도는 누구네 아무개랑 만나고 아무보다도 아무도는 아무개네 누구한테 간다

20쪽


시선을 별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 눈길을 별이라 하던 때가 있다

→ 눈살을 별이라 하던 날이 있다

→ 눈매를 별이라 일컫기도 했다

→ 눈꽃을 별이라 이르기도 했다

22쪽


하지의 여름엔 짧게 동지의 겨울엔 길게 기울어진 별들의 시선이 밤비 혹은 밤눈처럼 쏟아진다

→ 긴낮 여름엔 짧게 긴밤 겨울엔 길게 기우는 별눈이 밤비나 밤눈처럼 쏟아진다

→ 짧밤 여름엔 짧게 깊밤 겨울엔 길게 기우는 별빛이 밤비나 밤눈처럼 쏟아진다

31쪽


모래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 모래도 따로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모래마다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 모래도 저마다 이름을 바라지 않을까

33쪽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 누구는 사랑이라 하고

40쪽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 너를 향한 나의

→ 끝내 안될 수밖에 없는 외곬로 믿은, 너를 보는 나는

→ 끝내 끝날 수밖에 없는 외곬로 믿은, 너한테 나는

41쪽


오전의 햇살은 쏜살처럼 바빠

→ 아침햇살은 쏜살처럼 바빠

42쪽


무언가를 묻고 온 밤에는 꼭 계절을 묻게 된다

→ 무엇을 묻고 온 밤에는 꼭 철을 묻는다

→ 묻고 온 밤마다 철을 묻는다

44쪽


사막에서 물을 잃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 모래벌에서 물을 잃으면 죽는다

→ 모래밭에서 물을 잃으면 끔찍하다

→ 모래땅에서 물을 잃으면 골로 간다

46쪽


모과 낙과를 생각하며 모과나무 아래를 서성이다

→ 떨린 모과를 헤아리며 모과나무 곁을 서성이다

→ 미끄덩 모과를 살피며 모과나무 곁을 서성이다

68쪽


출생의 비밀처럼 자루 속 누런 콩들이 쏟아진다

→ 태어난 뒷길처럼 자루에서 누런 콩이 쏟아진다

→ 슥 태어나듯 자루에서 누런 콩이 쏟아진다

72쪽


개가하는 며느리 품에 보낸 손자마저 소문에 묻고

→ 떠나는 며느리 품에 보낸 아이마저 뜬말에 묻고

→ 나가는 며니르 품에 보낸 아이마저 바람에 묻고

96쪽


정교한 적요, 우직한 궁지에 몰린 염소의 소명으로 속도의 독소를 겨눈 감정이라는 장검

→ 꼼꼼히 고요, 고지식히 구석에 몰린 염소가 살듯 고약한 걸음을 겨눈 마음이라는 긴칼

→ 살뜰히 비는, 꼿꼿이 벼랑에 몰린 염소 길눈으로 궂은 발걸음을 겨눈 마음이라는 큰칼

118쪽


몇몇 시는 정말로 다른 네가 되게 하고 결국은 너를 너이게 한다

→ 몇몇 글은 참말로 다른 네로 가고 마침내 너를 너로 세운다

→ 몇몇 노래는 참으로 다른 너로 서고 끝내 너를 너로 깨운다

120쪽


하나의 심장과 하나의 시선과 하나의 목소리만으로

→ 하나인 가슴과 하나인 눈길과 하나인 목소리만으로

→ 하나인 고동과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126쪽


날개 밖 풍파의 서사를 날갯짓의 리듬에 싣고 깃털까지 들썩이는 그 새에 대해

→ 날개 밖 구름밭 얘기를 날갯짓 가락에 싣고 깃털까지 들썩이는 새를

→ 날개 밖 된서리 수다를 날갯짓 물결에 싣고 깃털까지 들썩이는 새를

14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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