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
김춘수 지음 / 민음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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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4.29.

노래책시렁 545


《處容》

 김춘수

 민음사

 1974.9.25.



  바다가 있는 곳에서는 바다가 품고, 메가 있는 곳에서는 메가 풀고, 숲이 있는 곳에서는 숲이 속삭입니다. 그렇다면 서울은 품거나 풀거나 속삭이는 노릇 가운데 하나라도 하려나요? 서울은 못 품거나 안 풀거나 시끄럽기만 하지 않을까요? 《處容》을 1988해에 처음 읽고, 1991∼1993해에 거듭 읽은 뒤로는 다시 안 펼쳤습니다. 불늪(입시지옥)에서 허덕여야 할 무렵에는 들여다보았습니다. 서른 해 남짓 지나 문득 되읽자니, 우리나라 숱한 글이 김춘수를 흉내내거나 따라하는구나 싶습니다. 김춘수 글에 ‘꽃’이 나온다지만, 들꽃도 숲꽃도 멧꽃도 바다꽃도 아닌 ‘머리로 꾸며낸’ 모습일 텐데 싶습니다. 글이며 말이 발돋움하려면 글담(문단권력) 안쪽에 있는 사람을 우러르거나 섬기거나 받들거나 높일 노릇이 아닌, 저마다 제 삶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차근차근 풀고 품고 속삭이는 길을 갈 일이지 싶습니다. 한때 ㄱ 아무개가 있었다고 떠올리기는 하더라도, 이제는 ‘머리로 꾸며내는 글’이 아닌 ‘온몸으로 살아내고 온마음으로 사랑하는 하루를 고스란히 그리는 글’을 쓸 때라고 봅니다. 어느 노래님이 문득 외친 “껍데기는 가라” 같은 말마디마냥, 겉으로 꾸며내는 모든 글치레는 이제 흘려보내야지요.


ㅍㄹㄴ


소금쟁이 같은 것, 물장군 같은 것, / 거머리 같은 것, / 개밥 순채 물달개비 같은 것에도 / 저마다 하나씩 / 슬픈 이야기가 있다. (늪/30쪽)


꽃이슬에 젖은 / 새벽 길 위에 서서 / 그 많은 少女들은 아직도 / 기다리고 있을까 (昆蟲의 눈/36쪽)


바위는 몹시 심심하였다. 어느날, (그것은 偶然이었을까,) 바위는 제 손으로 제 몸에 가느다란 금을 한 가닥 그어 보았다. 오, 얼마나 몸저리는 一舜이었을까, (바위/57쪽)


바람은 / 냇가에 개나리를 피게 하지만, / 그리고 / 그 色身 고운 눈만 먹고 겨울을 살았다는 / 산발치의 붉은 열매, / 붉은 열매를 따먹는 산토끼의 눈에는 / 지금은 / 엷은 軟豆色의 하늘이 떨어져 있지만, (歸鄕/67쪽)


男子와 女子의 /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눈물/110쪽)


+


《處容》(김춘수, 민음사, 1974)


少年의 숨소리가

→ 아이 숨소리가

→ 머스마 숨소리가

28쪽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 부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맑은 목숨이 하나

→ 제발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말간 목숨이 하나

→ 그저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칠칠한 목숨 하나

→ 꼭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깨끗한 목숨이 하나

29쪽


새벽 길 위에 서서 그 많은 少女들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 새벽길에 그 많은 아이들은 아직도 기다릴까

→ 새벽길에 그 많은 가시내는 아직도 기다릴까

36쪽


碧空에 사과알 하나를 익게 하고 가장자리에 금빛 깃의 새들을 날린다

→ 파란하늘에 능금알 하나를 익히고 가장자리에 노란깃 새를 날린다

→ 하늘에 능금알 하나 익고 가장자리에 노란깃 새가 날아간다

37쪽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그 이름을 부를 때 그는 나한테 와서 꽃이 된다

→ 그대 이름을 부를 때 그대는 나한테 와서 꽃이다

→ 그이 이름을 부르니 그는 꽃으로 피어난다

→ 그대 이름을 부르자 그대는 꽃으로 핀다

40쪽


나의 追憶 위에는 꽃이여

→ 지난날에는 꽃이여

→ 어제에는 꽃이여

45쪽


이슬의 한 방울이 떨어진다

→ 이슬 한 방울이 떨어진다

→ 이슬방울이 떨어진다

→ 이슬이 한 방울 떨어진다

45쪽


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이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삶이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숨결이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빛이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내가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48쪽


겨울하늘은 어떤 不可思議의 깊이에로 사라져 가고

→ 겨울하늘은 낯설게 깊이 사라져 가고

→ 겨울하늘은 들은 바 없이 깊이 사라져 가고

→ 겨울하늘은 믿기지 않게 깊이 사라져 가고

→ 겨울하늘은 수수께기처럼 깊이 사라져 가고

50쪽


無花果나무를 裸體로 서게 하였는데 그 銳敏한 가지 끝에

→ 속꽃나무를 앙상하게 세웠는데 곤두선 가지 끝에

50쪽


三冬에도 익던 抒情의 果實들은 이제는 없다

→ 한겨울에도 익던 구수한 과일은 이제 없다

→ 겨울에도 익던 따스한 열매는 이제 없다

64쪽


플라타너스에는 微風이 있고

→ 방울나무에는 산들바람 있고

→ 버즘나무에는 선들바람 있고

77쪽


사과나무의 阡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이 떨어지고 있고

→ 능금나무 두렁에 능금알이 하늘로 깊이 떨어지고

→ 능금나무 두둑에 능금알이 하늘로 깊이 떨어지고

92쪽


石榴꽃이 滿發하고

→ 붉구슬꽃 가득하고

→ 붉은구슬꽃 넘치고

10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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