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꾸지람
나더러 ‘꾸지람(비판)’을 늘 한다고 여기는 분이 많다만, 나는 언제나 나를 스스로 꾸짖을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남을 못 꾸짖는다. 남한테는 그저 “왜?” 하고 물어볼 뿐이다. “왜 그 마음을 그 낱말을 골라서 그 얼거리로 짜서 들려주려 하느냐?” 하고 물어보기만 한다. 언뜻 보면 “그 마음은 그 낱말이 아니고서는 못 나타낸다”고 여기기 쉽지만, 우리가 말을 하는 뜻을 곰곰이 짚는다면 ‘말이란 마음을 나타내는 소리’로 그치지 않는다. 기쁘거나 슬플 적에 우리는 ‘기쁘다·슬프다’라 하지만, 중국과 일본은 중국말과 일본말로 다르게 나타내고, 영국과 미국은 영국말과 미국말로 다르게 나타낸다. 우리는 ‘나타내기’만 할 일이 아니라, “왜 나타내려 하느냐?”를 스스로 돌아보면서, “스스로 나타낸 마음을 스스로 풀려고 하느냐?”를 더 물어봐야지 싶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마음’을 그리는 소리이기는 하되, “마음을 눈여겨보면서 가꾸는 사람 스스로 그리는 소리”일 뿐이다.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겉으로 꾸미거나 치레하는 사람은 그저 꾸미거나 치레하는 시늉”이다. 이제 누구나 말을 글로 담아서 책을 묶을 수 있는 즐거운 나날이되, 넘치도록 숱한 사람들은 ‘말나래 책나래’라기보다는 ‘많이 팔아서 이름을 날리고 돈을 잔뜩 거머쥐고 힘을 뽐내려는 늪’으로 쉽게 치닫는다. 그러니까 ‘한글로 적었’기에 글(우리글)이지 않다. ‘무늬만 한글’이라면 ‘무늬글(시늉글)’이다. 옷을 갖춰입기에 사람이 바뀌지 않고, 까맣거나 커다랗거나 비싼 달구지를 몰아야 사람이 드높지 않다. ‘마음을 그리는 소리’인 말로 나부터 스스로 드러내면서, 나랑 마주하는 너를 바라보고 이야기로 잇고 일으키는 빛을 씨앗으로 심을 적에 비로소 ‘말하기·글쓰기’라고 본다.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말을 듣고서 말을 들려줄” 적에는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눈을 거쳐서 빛줄기가 흐른다. 글이나 책을 읽을 적에는, 몸이 옆에 없거나 이미 떠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서로 나란히 앉아서 두런두런 말을 나누면서 이야기로 잇는다. 이야기란, “‘좋은말’ 나누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며 ‘하루’를 살림하는 마음”을 주고받는 일일 테지. 책으로 마주하는 두 사람은 언제나 ‘오늘·하루’하고 ‘삶·살림’을 가만히 주고받으면서, 저마다 스스로 지필 새길을 곱씹을 테고. 이웃이 편 뜻을 읽기에, 이웃으로서 곰곰이 익히며 깜냥껏 일구는 마음을 글쓴이한테 들려주는 길이 ‘빗글(비평)’이라고 본다.
나는 국이나 찌개를 안 짜게 끓인다. 우리집에 놀러와서 국이나 찌개를 한 그릇 받는 이웃님은 “뭐래? 왜 이렇게 싱거워? 이 집은 가난해서 소금도 못 쓰나?” 같은 핀잔을 한다. 더욱이 곁님과 살아오며, 또 두 아이를 낳아 함께 돌보며, 굵은 돌소금을 따로 먹기는 하지만, 밥살림은 되도록 심심하게 가눈다. 오늘(2026.4.28.) 곁님이 쑥미역국을 먹다가 “이제 슬슬 날이 더울 듯한데 국은 좀더 짜게 해야 할 텐데.” 하고 들려준다. 그래, 더위로 가는 길목이라면 조금은 짜게 해야지. 낮에 올린 쑥미역국을 저녁에 덥힐 적에 소금을 더해서 살짝 짠맛이 도는 국으로 바꾼다.
우리는 스스로 꾸짖으면서 나아간다. 스스로 안 꾸짖으면 쳇바퀴로 맴돌다가 어느새 뒷걸음질이나 샛걸음으로 빠진다. 꾸짖는 말은 “널 나쁘게 본다”는 뜻이 아니라 “너랑 오래오래 함께 놀고 어울리면서 얘기하고 싶어”라는 뜻이라고 느낀다. 앞으로도 즐겁게 나아가고 싶기에 즐겁게 “나를 스스로 꾸짖으면서 네 매무새와 말씨를 놓고서 한마디 거들며 들려주”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글빗·빗글(비평)은 “어느 글과 책을 쓴 이를 꾸짖거나 호통하는 글”이 아니라 “빗질을 하듯 찬찬히 가다듬는 길을 보여주는 글”이라고 본다. 우리는 추킴글(주례사비평)이 아닌 글빗·빗글(비평)을 서로 즐겁게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일으킬 때일 텐데 싶다. 2026.4.2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