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책나래 책날글날



  1995해 ‘한봄 스물셋쨋날(4.23.)’에 ‘World Book Day·World Book and Copyright Day’라는 이름으로 잡는 날이 생겼다. 에스파냐 까딸루냐에서 “책을 사읽는 님한테 꽃 한 송이를 건네는” 잔치라는 ‘세인트 조지 날’이 있으면서, 1616해에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나란히 죽은 일을 기린다는 뜻이라지. 그무렵 나는 서울 이문동에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했다. 새벽에는 새뜸을 나르고서, 낮부터 밤까지 짐바리(배달자전거)를 몰면서 서울 곳곳에 있는 작은책집 나들이로 하루를 보내었다.


  그때 짐바리로 돌리던 〈한겨레〉에도 ‘책날글날’이 이야기가 실리기는 했을 테고, 이날 저녁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집 〈뿌리서점〉에서는 ‘책날글날’ 이야기로 북적북적했다. 책집지기 아저씨는 “어디 먼나라에서는 책을 사면 꽃을 한 송이 준다지? 허허. 그런데 우리는 여기(책집) 와서 책을 안 사도 커피를 한 잔씩 주는데. 허허.” 하고 말씀했다. 날마다 책집마실을 하시는 여러 책벌레 아재와 할배는 “유네스코에서 책날인지 뭔지 외치기 앞서, 먼저 〈뿌리서점〉에서는 날마다 ‘책날’을 했는데 말이지요.”라든지 “책을 얼마나 안 사고 안 읽으면 꽃까지 준다고 할까요?”라든지 “책을 사는 사람이 많으면 꽃이 남아나지 않겠는데?”라든지 “그런데 꽃은 누가 주지? 책집에서 주나? 출판사에서 주나? 지은이가 주나?” 같은 말이 나왔다.


  이런 말을 곁에서 한참 듣기만 하는데, 책집지기님이 불쑥 나한테 “여보게 최 선생, 자네도 한말씀 해보시지? 책은 뭐 늘 와서 보는데 오늘은 좀 그만 보고, 젊은이로서 책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 보시구려.” 하면서 팔뚝을 잡아끈다. “네? 저도요. 음, 무엇보다도 책을 오지게 안 읽으니까 굳이 ‘책날글날’을 삼는다고 느껴요. 사람들이 스스로 늘 책을 읽으면 한 해 내내 책날일 테니까 굳이 책날을 안 삼겠지요. 그렇지만 늘 책을 읽으면서 사랑한다면 ‘태어난날’을 기리고 즐기듯 책날을 삼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제가 태어난 날짜라고 해서 뭘 기리거나 즐길 마음도 없고, 난날잔치도 안 하니까, 책날은 쓸데없을 듯해요. 굳이 뭘 해야 하면 ‘책날’ 말고 ‘책집날’이나 ‘헌책집날’을 삼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애써서 책날을 하루 잡는다면, 책날에 책을 사는 사람한테 꽃을 한 송이 주기보다는, “자, 오늘 책을 산 만큼 나무를 심으십시오!” 하고 나무씨앗을 나눠주겠습니다. 책을 열 자락 샀으면 나무씨앗을 열 톨 받아서 심어야 한달까요. 책을 사읽는 만큼 나무를 벤다는 뜻이니까요.” 하고 좀 까칠하게 말했다. 책집지기님은 활짝 웃으면서 “그러게! 책을 샀으니 나무를 심어야지! 옳은 말이오. 아무래도 젊은이는 우리 같은 늙은이하고 생각이 달라. 하하.” 하셨다.


  이날 서울 용산까지 달린 짐바리를 다시 서울 이문동으로 달렸다. 이날 산 책은 짐받이에 묶었다. 늘 짐받이랑 바구니에 가득가득 책을 묶고 담으면서 달렸다. 땀을 빼어 일터(신문사지국)로 돌아왔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한 뒤에 일찍 누웠다. 이러고서 서른 해가 흐른다. 언제나처럼 저녁에는 일찍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저물녘에 소쩍새노래와 개구리노래를 들으면서 잠들고, 새벽에는 모두 잠드는 고즈넉한 밤빛으로 하루를 열다가 이윽고 동트면서 아침새가 베푸는 노래를 듣는다.


  흔히들 ‘세계 책의 날’이라는 일본말씨를 쓰는데, 우리는 그저 ‘책날’이다. 또한 ‘글날’이기도 하다. “저작권의 날”이라고 붙인 뜻이 있다. 그러니까 ‘책날글날’처럼 써야 맞다.


  책은 펴냄터 손길만으로 못 태어난다. 책은 책집지기 손끝만으로 빛나지 않는다. 먼저 “이야기를 갈무리해서 글로 남기는 일꾼”이 있을 노릇이다. 말로 주고받으면서 입에서 입으로 잇는 이야기가 흐를 적에는 따로 ‘책’이 있을 까닭이 없다. 우리가 “살아가며 살림하는 모든 사랑”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숲을 거쳐”서 종이에 앉힌 책이 태어나자면, ‘지은이’가 첫째이기에 “책날과 글날(책과 저작권의 날)”이라는 이름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첫째라서 가장 대수롭다는 뜻이 아니다. 지은이가 처음 있고, 펴낸이가 나란히 있고, 책집지기가 함께 있기에, 하나와 둘과 셋이 서로 살갑게 ‘세모’를 이루어서 선다(일어선다). 처음 글을 짓는 사람은 꼭지(점)이다. 글을 짓는 사람을 눈여겨보는 펴냄터는 꼭지하고 꼭지를 잇는 줄(선)이다. 지은이와 펴냄이를 세울(일으켜세울) 몫이 바로 책집지기이니, 셋은 ‘사이’를 ‘새’로 가꾸는 빛살이다.


  책과 나무는 언제나 한몸이다. 책에 담는 이야기는 사람이 살아온 나날과 늘 함께 흐른다. 책을 이루는 나무는 해마다 새롭게 꽃을 피운다. 책 한 자락 곁에 꽃 한 송이란, 언제나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뜻과 길이 무엇인지 넌지시 비추는 향긋내음이다.


  ‘ㅅㅅㅅ’이 모여서 ‘책’이다. ‘ㅅㅅㅅ = 삶 살림 사랑 + 사람 사이 숲’이다. 두 가지 ‘ㅅㅅㅅ’으로 이루는 책이란, ‘채우다 + 차다 + 챙기다 + 채 + 참 + 착하다 + 차곡 + 차분 + 찬찬 + 천천 + 첫 + 처럼’이기도 하다. 책은 빨리 태어날 수 없다. 펴냄터에서 후다닥 뚝딱 하고 만질 수도 있겠지만, 지은이가 책을 한 자락 써내기까지 온삶을 들인다. 지은이가 서둘러서 글을 맺으면, 이런 서투른 글로는 ‘책’이 아닌 ‘책시늉’에 그친다.

 

  ‘책날글날’이 선 지 서른 해가 지난 2026해에, 종이값을 짬짜미로 껑충 올려서 장사를 한 여러 곳이 이제 들통났다지. 낛(세금)을 잔뜩 물어야 한다더라. 짬짜미로 종이값을 마구 부풀린 곳에서 뱉어야 할 낛이 3000억 원이 넘는단다. 이 엄청난 낛은 어디로 가려나? 종이값을 올릴 적에 ‘큰펴냄터(대형출판사)’는 그리 힘들지 않다. 큰펴냄터는 워낙 책을 많이 찍기에 ‘더 에누리’를 해주니까. 종이값을 올릴 적에는 ‘작은펴냄터’가 온통 덤터기를 쓴다. 큰펴냄터하고 굳이 책을 내지 않고서 작은펴냄터하고 더 작고 조촐히 이야기를 여미어 내놓는 ‘작은글꾼(재야작가)’이 나란히 덤터기를 쓴다. 이다음으로 책집과 책손이 덤터기를 쓴다.


  책을 사읽는 사람도 덤터기를 쓰지만, “책값이 오르면 안 산다”는 분이 많은 터라, 누구보다도 작은펴냄터와 작은글꾼이 가장 크게 고단한 나날을 보내야 했을 텐데, “제지업계가 내야 하는 과징금”을 나라에서 어떻게 쓸는지 궁금하구나. 껑충 오른 종이값 탓에 휘청휘청 힘들지만 꿋꿋하게 견디면서 애쓴 작은펴냄터하고 작은글꾼한테 힘내라고 하는 길(정책)이 있을까? 적어도 ‘책날글날’에는 ‘잘난책(베스트셀러)’이 아닌, ‘작은책’을 눈여겨보면서 널리 알리고 이야기하는 책집과 책집지기과 책글꾼(서평가·MD)이 있기를 빌 뿐이다. 2026.4.2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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