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4.10. 잎물 한 모금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둘레에서는 늘 건드립니다. 우리말 ‘건드리다’는 가볍게 대거나 살짝 닿는 몸짓도 가리키지만, 일부러 긁거나 할퀴려고 자꾸자꾸 부아를 일으키려는 몸짓도 가리킵니다. 한자말 ‘자극(刺戟)’도 매한가지입니다. 더구나 우리말 ‘건드리다’는 이웃이나 동무를 함부로 괴롭히는 짓까지 담아내요.
누가 우리를 ‘건드릴’ 적에는 반가울 수 있되, 서운하거나 싫거나 끔찍할 수 있습니다. ‘건드리’는 손짓은 좋거나 나쁘지 않아요. 그저 우리가 늘 새롭게 배우는 길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인 ‘건드리기’입니다.
저는 늘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노라니, 둘레에서 저를 일부러 건드리려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반갑게 다가와서 말을 섞거나 노래하려고 어깨를 톡톡 건드립니다. 그리고 “아무리 최종규 씨라고 해도, 이런 말까지는 못 고치고 못 바꾸겠지?” 하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건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네깟놈이 뭔데 내 글을 그렇게 고쳐쓰라고 해?” 하면서 건드리려는 분도 있고요.
열 해쯤 앞서 어느 날 어느 이웃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다른 말은 다 우리말로 바꾸더라도 ‘차·다(茶)’는 어쩌시렵니까? ‘차’와 ‘다’는 못 바꾸겠지요? 바꾸더라도 ‘차’와 ‘다’라 하는 맛을 못 살리겠지요?” 하고 한마디를 하시더군요. 이웃님 말을 가만히 듣고서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러고서 “저는 물을 그냥 물로 마실 뿐, 따로 끓이거나 달여서 마시기를 즐기지는 않습니다. 물부터 제대로 알고 느끼고 받아들여야 우리 몸을 이루는 수수께끼뿐 아니라, 온누리 모든 숨결을 이루는 몸에 깃든 실마리를 풀거든요. 사람은 따로 끓이거나 달여서 물을 마시기는 하지만, 사람을 뺀 어느 짐승도 물을 안 끓이고 안 달여요. 게다가 풀꽃나무한테 끓인 물을 조금이라도 주면 그만 타죽거나 시들거나 괴로워서 몸부림을 쳐요. 사람은 참 유난하지요. 그냥 마시면 될 물을 굳이 끓이니까요. 그런데 국이나 찌개는 끌인 물이고, 밥도 끓여서 먹는 낟알인데요, 임금님이나 벼슬아치나 나리는,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안 하는 채, 또 논밭을 일구지 않으면서, 심부름꾼이 바치는 ‘끓인물’과 ‘달인물’을 마셨을 텐데, 수수하게 논밭을 일구고 살림을 짓는 흙사람과 들숲사람이라면 ‘차·다’를 어떻게 여기고 풀어낼는지 헤아려 볼 만하구나 싶습니다.” 하고만 말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맺고서 여러 해 헤아렸어요. 이때 뒤로 곧잘 ‘끓인물·달인물·우린물’을 곰곰이 즐기고 돌아보았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쑥잎과 감잎을 그만 ‘덖’기로 하면서, 그냥 햇볕말림으로 ‘쑥내림물’과 ‘감잎우림물’을 마시기로 하면서 문득 눈을 반짝였습니다. “옳구나, 모든 ‘차·다(茶)’는 잎이로구나. 잎을 나물로 안 삼고 물로 삼는 ‘차·다(茶)’라면, ‘잎으로 내린 물’이야. 그러니까 ‘잎내림물’이고, 단출히 ‘잎물’이라 하면 어울리구나. ‘내림물’이나 ‘꽃물’이나 ‘꽃내림물’이라 할 때도 있을 테고.” 하고 혼잣말이 터졌습니다.
길은 하루아침에 찾아내어도 즐겁습니다. 삶길을 여러 해에 걸쳐서 찾아보아도 기쁩니다. 말길을 열 몇 해나 서른 몇 해 만에 풀어도 새롭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잎물’을 마시고, ‘잎물그릇’을 받아들입니다. ‘잎’을 떠올리면서 물을 끓이거나 달여서 우리거나 내리면, 나무 한 그루가 베푸는 푸른숨빛에 서리는 햇볕과 바람결을 살랑살랑 느끼고 누릴 수 있습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