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날리면



  사흘 앞서 거의 다 쓴 글을 단추 하나 잘못 눌러서 날렸다. 늘 글을 쓰노라면 즐겁게 맺기도 하지만 뜬금없이 날리기도 한다. 날린 글을 문득 돌아본다. 처음부터 아예 새롭게 쓰라는 뜻이지 싶다. 어찌저찌 살리려고 용쓰지 말고, 새마음 새눈 새손길로 차분히 쓰라는 뜻일 테지.


  모두가 반기는 글이 있을 테고, 웬만하면 안 반기는 글이 있다. 숱한 사람이 챙겨읽는다지만 누구한테 이바지하는지 모를 글이 있고, 찾아읽는 사람이 적으나 더없이 알찬 글이 있다. 누구는 ㅈㅈㄷ에 실린 글이라며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누구는 ㅎㄱㅇ에 실렸으니 그냥 젖히고, 누구는 어느 종이에도 안 실렸으니 값어치없다고 여긴다.


  어제아침에 텃노랑(토종노랑민들레) 씨공을 하나 끊고서 집 곳곳에 새로 심었다. 오늘도 씨공 하나를 끊으려다가 그대로 놓았다. 아이들한테도 맡겨야지. 혼자 다하지 말자. 혼자 씨묻기를 누리지 말자. 동그란 민들레씨공을 손바닥으로 살며시 감싸면 몹시 따뜻하다. 흰공을 이룬 민들레씨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손바닥을 거쳐서 온몸으로 훅 퍼뜨린다. 민들레씨를 한 톨씩 톡 뽑아서 흙바닥에 살살 놓으면 “아! 아! 이곳이 내가 깃들어서 새롭게 살아갈 터전인가!” 하면서 기뻐한다.


  오늘은 고흥읍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16:40 버스가 없는 줄 엊그제 ‘읍내 버스나루 종이 알림쪽 잔글씨’로 보았다. 이런 일이야말로 마을알림을 할 노릇이지만, 버스길을 알리는 마을알림은 지난 열여섯 해 동안 아예 없다. 이 알림글을 못 봤으면 오늘 14:05나 15:05 시골버스로 읍내마실을 갔다가 “왜 또 버스가 안 와?” 하다가 하염없이 기다리며 지칠 뻔했다. 아무튼 오늘은 옆마을로 달려가서 12:20 시골버스를 잡는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는다. 돌아올 버스는 14:40이다.


  숨돌리고서, 거닐면서, 볼일을 마치고서, 저잣마실을 보고서, 스웨덴 어린이책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험》 한 자락을 다 읽는다. 아름답네. 아름다워. 이렇게 아름다이 이야기를 여미는 손끝이 반갑고, 퍽 깔끔이 한글로 옮긴 손길이 고맙다. 이다음으로 읽을 책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당신을 위한 기후 학교》도 손에 쥔다. 이야기꽃(인문강의)을 편 글인데, ‘나라한테 외칠 일거리’가 아닌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몸소 할 작은일’이 무엇인지 짚는다면 한결 나으리라고 본다.


  바람이 싱그럽다.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칠 듯하지만 좀처럼 얼굴을 안 내민다. 읍내에서 제비를 세 마리 만난다. 아직 세 마리뿐이지만, 올해에 읍내제비를 세 마리 보았으니 고마운 노릇이다. 묵직한 등짐을 이고서 뚜벅뚜벅 걷는다. 버스를 탄다. 마을앞에 내린다. 새바람과 새소리를 맞이한다. 박새가 꽁지를 까딱이며 노래한다. 직박구리가 후두둑 크게 소리내며 날아간다. 슬슬 논삶이에 모내기를 하는 철인데, 사람소리는 하나도 없이 흙수레(농기계)하고 삽차 소리만 커다랗다. 2026.4.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