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10 서로 길잡이

책벌레수다 : 보임꽃 〈모아나〉를 읽기



  길만 잡는다고 해서 ‘길잡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길을 잡거나 알리는 몫이라면 ‘길알림’이다. ‘길찾기’처럼 길을 돕는 연장에서 그치면 ‘길알림’이다. ‘길잡이’는 꼭 길만 찾거나 알리지 않을 뿐 아니라, 길을 못 찾거나 함께 헤매거나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못 알릴 수 있다. 길잡이라는 이름일 적에는 언제나 스스럼없이 먼저 나서서 이슬을 받는 몫이다. ‘길잡이 = 이슬받이·이슬떨이’인데, 제아무리 먼저 이슬을 받으면서 어두운 새벽길을 앞장선다고 하더라도 뜬금없거나 엉뚱한 샛길에 빠질 수 있다. 길잡이란 옹근 사람이지 않다. 길잡이는 어수룩하거나 모자란 사람이게 마련이다. 함께 헤매고 함께 살피고 함께 걸으면서 함께 배울 줄 알되, 걱정하거나 두려운 사람들 앞에서 빙그레 웃으며 먼저 가시밭에 발을 내딛기에 길잡이라고 한다.


“우리 지금은 이렇게 서로 얘기하고 있지만, 반도 다르고 해서, 이런 일이 없었다면 평생 서로 얘기할 일도 없었을 것 같아.” 《조난입니까? 2》 152쪽


  우리는 일본말씨를 받아들여서 ‘교사·선생’ 같은 이름을 쓰는데, ‘가르침이’나 ‘앞사람(먼저 태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만으로는 어린이와 푸름이를 이끌기 어렵다고 느낀다. 배움터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라면 ‘길잡이’일 노릇이라고 본다. 길잡이 스스로 늘 헤매게 마련이고, 참으로 아직 잘 모르기 일쑤이기에,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되묻고 스스로 돌아보면서 길풀이를 여미는 몫이면 된다. 이리하여 길잡이는 어느 쪽에도 안 서는 사람이다. 길은 하나가 아닌 터라, “이쪽 길잡이”나 “저쪽 길잡이”가 아닌, “어린이 길잡이”나 “푸름이 길잡이”이면 된다. 예부터 모든 어버이는 처음부터 “빈틈없으면서 다 깨달은 사람”이지 않다. 어버이는 아기를 밸 무렵부터 삶을 배우고, 아기를 낳을 즈음부터 살림을 익히고, 아기가 자라나는 동안 사랑을 나누고 누리는 하루를 짓는다. 어른과 어버이와 길잡이는 나란하다. 셋 모두 ‘빈틈있는’ 사람이요 자리에 삶길이다. 빈틈이 있기에 허술하거나 모자라고, 허술하기에 차분히 가다듬으며, 모자라기에 차근차근 북돋운다.


“더 이상은 무리야. 이제 끝이구나.” “괜찮아. 그 어떤 상황에서든 뭔가 방법은 있는 거니까, 시온.” 《조난입니까? 3》 87쪽


  보임꽃 〈모아나〉가 있다. 대단히 잘 나온 보임꽃이다. 모아나 할머니는 이미 다 알지만 굳이 다 물려주지 않는다. 모아나 할머니는 넌지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할머니 꿈’을 아이한테 밝힌다. 그리고 할머니 스스로 이룬 꿈을 너른바다에서 몸소 보여주면서 다시 길잡이 노릇을 하는데, 귀띔만 할 뿐 실마리를 다 알려주지 않는다. 모아나 어버이는 이미 바닷길을 잊고 잃었다. 모아나뿐 아니라 모아나 어버이나 섬사람 모두 바닷살림을 못 한다. 그렇지만 모아나는 목숨을 걸고서 바닷길을 열려고 나선다. 다만 바닷길로 나서는 첫고비부터 못 넘고서 끝없이 자빠지고 넘어지고 부딪히는데, 마침내 스스로 부딪혀서 온몸으로 배운 끝에 너른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모르기에 배우려고 하는 아이가 모아나요, 모르는데 모르는 줄 잊어버린 어른이 ‘모아나 엄마아빠’이며, 이미 알지만 ‘아이 스스로 몸으로 부딪히고 마음으로 익히기를 바라는 뜻’을 꿈씨앗으로 물려준 할머니이다. 옛날 옛적에 바닷길을 연 먼먼 어버이도 처음에는 자빠지고 부딪히면서 바닷길을 익혔기에, 모아나도 옛사람과 나란히 ‘자빠지고 부딪히는 온몸과 온마음’으로 처음부터 새로 익혀야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아나〉라고 하겠다.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모아나는 내가 기대하던 그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그 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섬을 구하겠다며 뛰쳐나온 주제에 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게 말이나 되는가?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98쪽


  사람은 누구나 처음 태어날 적에 아름답다. 아름다운데 참으로 조그마한 몸을 입고서 아기부터 다시 삶을 연다. 우리가 아름다운 빛이 아니라면 아기로 안 태어난다고 느낀다. 우리가 아름다운 빛살인 터라 언제나 처음으로 돌아가서 차근차근 새롭게 한다. 한겨레는 열둘쨋달인 첫겨울을 ‘섣달’이라고 이름을 따로 붙인다. 열두달 가운데 끝달한테만 이름이 따로 있다. 새해로 접어드는 한겨울은 첫쨋달 가운데 첫날에는 따로 ‘설날’이라는 이름이 있다. 그리고 가을걷이를 하고서 갈무리까지 마친 한복판에 ‘한가위’라는 이름이 있다. 한겨레는 한 해 가운데 꼭 두 날에만 이름을 따로 붙이는데, ‘섣달·설날’은 끝이자 처음인 얼개요, 즐겁게 맞물리면서 새롭게 잇는 길목을 나타낸다. 서기에(멈춰서기에) 선다(일어선다)는 뜻을 담고, ‘선’을 보인다고 하듯 새롭게 보이는 봄으로 나아간다는 수수께끼를 들려준다.


그럼 산소나 질소를 포함한 많은 원자들은 왜 혼자 고독을 즐기지 않고 다른 원자들과 만나 결합하여 분자나 고체를 만드는 걸까? 그건 바로 서로 연결되어 결합을 해야만 더 안정적인 상태로 바뀌기 때문이지. 《양자역학 쫌 아는 10대》 108쪽


  섣불리 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느끼니, ‘값있’거나 ‘뜻있’다고 여기는 일만큼은 안 해야지 싶다. 값있거나 뜻있다고 여기면 그만 금(계급·등수)을 긋고 만다. 더 값있고 뜻있는 일부터 해야 마땅하다고 여기느라 그만 덜 값있거나 그리 뜻없다고 여기는 일은 꼬랑지로 밀리거나 아예 잊히거나 팽개치고 만다. 작은뜻(소수의견·소수자)을 아끼고 북돋우려면 ‘값·뜻·금’이 아닌 ‘빛·씨·말’을 바라볼 노릇이다. 이쪽에서 작은뜻이 값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저쪽에서 큰뜻이야말로 값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싸운다. 죽도록 피튀기며 싸우지. 이쪽에서 작은목소리를 아끼자고 외치면, 저쪽에서 큰목소리를 왜 안 듣느냐며 다툰다. 물어뜯고 치고받고야 만다. 함께 나설 일이 아니라, 먼저 해야 한다고 금을 긋는 터라, 줄줄이 밀리는 일이 수두룩한데, 끝으로 밀리는 일이란 으레 ‘들숲메바다’를 푸르게 돌보는 길이기 일쑤이다. ‘어린이 목소리’를 나라지기가 받아들이는 일은 아주 못 본다. ‘푸름이 목소리’를 고을지기나 벼슬아치가 먼저 찾아가서 챙기는 일도 아주 못 본다.


얘들아, 많이 먹고 똥 누거라. 그래도 돼. 그게 너희 일이니까. 내일도 모레도 밥 줄게. 나는 소치기니까.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여기 있을 거란다.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희망의 목장》 32쪽


  우리는 서로 길잡이로 설 노릇이다. 아이어른이 함께 배우면서 함께 자라듯, 우리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어깨동무를 하면 된다. 이를테면 ‘차별금지법’이 아닌 ‘아름길’과 ‘사랑길’을 이야기하면 된다. “이렇게 하니까 따돌림짓이고, 이때에는 값을 톡톡히 치르시오!” 하고 윽박지르면 불싸움이 붙는다. 이와 달리 “이렇게 하기에 아름답고 사랑입니다. 이렇게 하면 서로 즐겁게 어울립니다.” 하고 들려주고 북돋우면 어느새 모든 ‘불씨’가 누그러들면서 ‘풀씨’로 바뀐다.


《조난입니까? 2》(사가라 리리·오카모토 켄타로/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19.1.17.)

《조난입니까? 3》(사가라 리리·오카모토 켄타로/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19.3.12.)

#ソウナンですか? #岡本健太郞 #さがら梨?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홍혜은과 아홉 사람, 동녘, 2017.12.20.)

《양자역학 쫌 아는 10대》(고재현, 풀빛, 2023.5.10.)

《희망의 목장》(모리 에토 글·요시다 히사노리 그림/고향옥 옮김, 해와나무, 2016.2.24.)

#希望の牧場 #森繪都 #吉田尙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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