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플라워 창비시선 503
이소연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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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4.12.

노래책시렁 542


《콜리플라워》

 이소연

 창비

 2024.6.5.



  바람도 해도 비도 별도 언제나 우리한테 빛다발을 베풉니다. 씨앗도 나무도 풀도 벌레도 늘 우리한테 꽃다발을 안깁니다. 우리 하루는 빛다발과 꽃다발을 누리면서 새삼스레 노래다발을 모두한테 돌려주면서 즐거이 일구는 삶길이지 싶습니다. 《콜리플라워》를 읽으며 ‘봄동’을 자꾸 떠올립니다. 먼나라 먼말인 ‘콜리플라워’일 텐데, 우리는 배추하고 닮은 먼남새를 한자 ‘양(洋)’을 붙여 ‘양배추’라고도 하지만, 우리로서는 ‘동배추(동글배추)’입니다. 배추는 으레 포기로 묶어서 누린다면, 새봄에 맞이하는 봄동은 바닥에 또아리를 틀듯 동그랗게 퍼집니다. 동그랗게 돌아보고 돕는 사이인 ‘동무’요, 도시락과 같은 그릇인 ‘동고리’가 있고, 동무하듯 돌며 나누는 ‘도르리·도리기’가 있습니다. 굵게 하나로 묶은 덩이를 ‘동’이라 합니다. 장다리꽃을 올리는 배추나 무는 꽃대(꽃줄기)를 따로 ‘동’이라 합니다. 윷놀이를 하며 말이 나아가는 길을 ‘동’이라 하고, 이것과 저것을 잇는 마디를 ‘동’이라 합니다. ‘동아리’ 같은 말도 나란히 얽힙니다. ‘동’이 어떻게 온곳에 스미는지 돌아본다면, 늦겨울부터 봄빛으로 돋는 반가운 빛을 제대로 품을 만합니다. 먼나라 먹물꾼은 ‘시(詩)’라 했지만, 이곳에서 수수한 살림지기는 노래를 꽃으로 맺어 ‘노래꽃’을 짓고 피우고 누리고 나눕니다. 그러니까 ‘콜리플라워’란 우리말로 풀면 ‘꽃동배추’입니다. 꽃과 동무하면서 서로 돌아보고 돕는 길을 거닐면, 누구나 즐겁게 돋아나는 봄빛을 노래로 마주합니다.


ㅍㄹㄴ


내가 발을 닦은 수건으로 / 남편이 얼굴을 닦는다 / 발을 닦은 수건이 얼굴을 닦은 수건보다 더러울 것 같진 않은데 / 발이 알면 억울할 일 / 말하지 않기로 한다 (우리 집 수건/11쪽)


결혼하기 전에는 천경자의 그림을 봤고 / 아이 달고 와서는 / 미술관 바깥의 매미와 잠자리 / 구슬아이스크림와 아이스아메리카노 / 슬리퍼와 나른한 오후를 봐 (관람/16쪽)


아버지는 죽은 할머니의 옷가지를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마당 귀퉁이에서. 장롱에서 꺼내 온 스웨터. 할머니의 새옷. 가장 아끼던 피부. 오그라든다. 솟구친다. 연기가 넘친다. 독하다. 마스크도 없이 아버지는 할머니를 한번 더 태운다.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24쪽)


내가 사랑한 손들은 다 어디에 숨겼니? / 순수하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경건한 그림자/79쪽)


+


《콜리플라워》(이소연, 창비, 2024)


수건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침의 얼굴이 있는가 저녁의 육체가 있는가

→ 수건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침 얼굴이 있는가 저녁 몸뚱이가 있는가

→ 수건에는 무엇이 깃드나 아침빛이 있는가 저녁몸이 있는가

10쪽


바짝 마른 평면을 접는 일에 애착이 생긴다

→ 바짝 마른 판을 접는 일에 마음이 간다

→ 바짝 마른 들을 접는 일이 사랑스럽다

10쪽


수생식물처럼 떠 있던 집이 부서진다

→ 물풀처럼 뜬 집이 부서진다

→ 물살이풀처럼 뜬 집이 부서진다

→ 말처럼 뜬 집이 부서진다

18쪽


부상으로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 곁으로 저희 펴냄터에서 나온

→ 덤으로 저희가 낸

→ 덧으로 저희가 낸

29쪽


치통이 오듯

→ 이앓이 오듯

39쪽


아이스링크가 잘 보인다

→ 얼음마루가 잘 보인다

→ 얼음판이 잘 보인다

41쪽


계속 보게 만들죠

→ 자꾸 볼밖에 없죠

→ 다시다시 보죠

→ 또다시 쳐다보죠

→ 끝없이 바라보죠

65쪽


世界 펭귄의 날

→ 푸른별 눈밭새날

→ 온누리 얼음새날

70쪽


작고 반듯한 머그컵

→ 작고 반듯한 머금이

→ 작고 반듯한 잎그릇

→ 작고 반듯한 둥그릇

→ 작고 반듯한 대접

74쪽


내가 사랑한 손들은 다 어디에 숨겼니? 순수하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 내가 사랑한 손은 다 어디에 숨겼니? 곱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 내가 사랑한 손은 다 어디에 숨겼니? 밝고 맑은 손을 잡고 싶어

79쪽


수취인은 쓰여 있지 않았다

→ 받는이는 쓰지 않았다

→ 받는곳은 쓰지 않았다

82쪽


원고는 밀려도 써지지 않고

→ 글월은 밀려도 못 쓰고

→ 글은 밀려도 쓰지 못하고

90쪽


불평을 갖는다는 게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말 같다

→ 투덜거리니 지나치게 튼튼하다는 말 같다

→ 구시렁대니 지나치게 단단하다는 말 같다

→ 떼를 쓰면 지나치게 멀쩡하다는 말 같다

90쪽


오목은 사실 탱고 춤이야

→ 닷돌은 뭐 신바람춤이야

→ 다섯돌은 막상 신명춤이야

94쪽


그는 너무 쉽게 회개하네

→ 그는 너무 쉽게 고치네

→ 그는 너무 쉽게 바꾸네

→ 그는 너무 쉽게 뉘우치네

104쪽


실외기의 소음은 이렇게나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점점 차가워지는

→ 밖바람이는 이렇게나 시끌시끌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더 차갑고

→ 밖바람개비 소리는 이렇게나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더욱 차갑고

→ 바람빼개는 이렇게나 듣그럽고 뜨겁고 풀벌레 울음은 훨씬 차고

109쪽


당신과 나는 여전히 냉전 중이다

→ 그대와 나는 아직 차갑다

→ 너와 나는 여태 쌀쌀하다

→ 너와 나는 그대로 겨울이다

11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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