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첫봄 지는 빗길



  첫봄이 지면서 한봄으로 건너가는 길목을 빗방울로 적신다. 읍내 글붓집을 들르려고 시골버스를 탄다. 노래 한 자락부터 쓰고서 책을 두 자락 읽는다. 너머아기(해외입양)로 어버이 품을 일찌감치 잃거나 빼앗기는 이웃이 숱하다. 무엇이든 돈으로 움직이기에 삶과 사람을 안 보느라 생기는 일이다. 누구나 아기한테서 배우고, 아이하고 나란히 살림을 짓기에 비로소 어른으로 거듭난다. 몸소 낳는 아기나 이웃이 낳은 아기를 함께 품고 돌볼 수 있을 적에 마을이고 고을이며 나라이다.


  우리는 왜 아기를 팽개치거나 먼나라에 내다팔까? 지난날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왜 버젓이 아기팔이를 할까? 이미 우리는 ‘낳는아이’와 ‘이웃아이’ 모두 등지는 굴레이다. 몸소 낳고서도 배움늪(학교·학교)에 밀어넣은 채 말을 거의 안 섞는다. 배움늪에 밀어넣은 엄마아빠는 아이들하고 ‘살림얘기’는 아예 안 하다시피 하면서 ‘따먹기(점수획득)’를 놓고서 시시콜콜 따진다. 배움늪에 잠긴 우리나라 아이들은 집안일에 아예 손을 안 대기 일쑤이다. 요새 도시락을 쌀 줄 아는 어린이나 푸름이는 몇일까? 지난날에도 배움늪은 있었되, 지난날에는 어린이도 솥으로 밥을 지을 뿐 아니라, 땔감을 해올 줄 알고, 불을 피울 줄 알았다. 오늘날에는 밥살림뿐 아니라 쓸고닦기나 설거지조차 못 하는 푸름이가 수두룩하고, 손빨래는 그냥 모르기까지 한다.


  살림을 잊고 잃으니 삶을 나란히 잊고 잃으면서 값(점수·금전)에 얽매인다. 살림과 삶이 아니라 값·셈에 얽매이니 ‘돈값·이름값·힘값·얼굴값·몸값’이라는 겉모습에 기운다. 이러면서 수수하거나 쉽거나 숲빛으로 흐르는 말씨를 모두 버린다. 값을 톡톡히 거둘 만한 ‘틀말(제도권 전문용어)’을 외우는 늪으로 새삼스레 나아가는 얼개이다. 마음빛을 저버리고 말빛을 등지고 살림빛을 모르니, 어느새 사람빛을 아주 잃고 말아, 이 나라가 멀쩡히 아기팔이를 하든 말든 안 쳐다본다.


  총칼을 벼리느라 목돈을 쏟아부으며 ‘방위산업’이라 이름을 붙이는 나라이다. 이리하여 집과 마을과 고을과 나라가 휘청거리면서 주저앉는다. 배우려 하지 않기에 늙는다. 익히려 하지 않으니 낡는다. 배우려 하기에 자라고, 익히려 하기에 철드는데, 온나라가 배움길과 익힘길을 등돌리면서 ‘돈길’로 내달린다.


  반도체를 더 만들어도 되지만, 반도체를 더 뽑아내려고 애먼 땅을 까뒤집지 않아야 할 노릇이다. 아이들이 뛰놀 숲들메바다를 돌보고 지킬 노릇이다. 아이 곁에서 어진 어른으로 일하는 시골자리를 되살릴 노릇이다.


  문득 책을 덮고서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벌써 한봄이 코앞인데 고흥에서 아직 제비를 못 본다. 제비가 이렇게 늦은 해가 없는데, 바다 너머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곧 제비를 만나는 날을 기다린다. 2026.3.28.


(제비는 4월 1일 무렵부터 드디어 만났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