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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토
빅터 D. O. 산토스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6.4.7.
그림책시렁 1789
《피니토》
빅터 D.O.산토스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창비
2026.3.25.
처음부터 글이 있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말과 말씀과 말씨가 있습니다. 누구나 말과 말씀과 말씨가 어떻게 다른 줄 찬찬히 짚으면서 저마다 삶을 지어서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펴는 나날로 사이를 이었습니다. 이러다가 ‘사람빛’을 잊은 무리가 일어서서 ‘나라’를 세우고, 나라가 서면서 사람들이 사람빛을 잃기를 바라는 틀(법)을 세웁니다. 틀을 세우려고 태어난 ‘글’입니다. 글은 처음에 ‘굴레’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을 담는 그릇으로 글을 살립니다만, 우두머리·임금(권력자)은 사람들을 사로잡아 사납게 가두려고 글을 부렸습니다. 말·말씀·말씨로 삶·살림·사랑을 숲빛으로 돌보던 누구나 눈뜬 어른이었다면, 글만 쳐다보는 누구나 눈감은 철바보입니다.
《피니토》는 이탈리아말 ‘finito’를 우리말로 안 옮긴 채 내놓는군요. 우리말로는 ‘끝나다’라면 이렇게 옮겨야 맞습니다. 그런데 ‘끝’이 무엇인지 보아야지요. 우리는 열두 달 가운데 첫겨울은 열둘쨋달을 ‘섣달’로 삼고, 새해첫날을 ‘설날’로 삼습니다. ‘섣·설’은 ‘서’를 말밑으로 놓습니다. ‘서’는 ‘셋’을 가리키는 밑동이고, ‘셋’은 ‘세모’를 나타내는 뿌리입니다. 끗(점) 하나와 끗 둘이 있을 적에는 ‘끈(선)’이요, 두 끗이 서로 섞으면 새롭게 씨앗을 맺어서 ‘서는(일어서는)’ 길이라서 ‘셋(세모·사이에 선 길)’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섣달인 끝에 멈춰서야 새해인 설날에 일어섭니다. 서야 서는 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때(시간)를 ‘끝있다(유한)’고 잘못 여기는데, 때는 끝이 있거나 없지 않아요. 때는 비와 바다와 내와 샘과 같아서 늘 솟아서 흐릅니다. 그저 다르게 나아갈 뿐입니다. 이런 밑길을 이 그림책이 어느 만큼 담았는지 잘 모르겠고, 한글로 옮기면서 얼마나 읽어냈는지는 더 모르겠습니다. “세계적인 그림책 거장”이라든지 “대단한 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허울은 내려놓고서, ‘끝·끗·끈’을 잇는 수수께끼와 ‘서다’에 흐르는 삶노래부터 헤아릴 노릇 아닐까요?
#FINITO #VictorDOSantos #IwonaChmielewska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