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시간에 뭐 하니? - 구자행 샘 시간에는 내 이야기가 글이 되고 시가 되지
구자행 지음 / 양철북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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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4.1.

까칠읽기 123


《국어시간에 뭐 하니》

 구자행

 양철북

 2016.6.2.



  모든 말과 삶과 마음은 늘 한 끗이 달라서 끝으로 가는구나 싶다. 한 끗을 바꾸면서 마음을 가꾸는 길을 간다. 한 끗을 안 바꾸기에 마음을 안 가꾸는 늪으로 간다. 한 끗을 가꾸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말과 마음과 삶을 나란히 돌보는 길에 선다. 한 끗을 굳이 왜 바꾸느냐고 손사래치느라 말과 마음과 삶이 나란히 시드는 벌판에 선다.


  어른이라는 이름이라면 아이를 돌보게 마련이다. 허울만 어른이라고 앞세운다면 아이를 안 돌본다. ‘돌보다’는 ‘돌아보다’를 줄인 낱말이다. 눈빛을 사랑으로 펴는 마음이라서 ‘돌봄’이라고 한다. 사랑눈으로 돌아보는 마음이 아닌, 이렇게 가르치고 저렇게 이끌려 할 적에는 ‘돌봄’하고 멀다.


  《국어시간에 뭐 하니》를 읽다가 자꾸 멈칫했다. 글쓴이는 푸른배움터에서 우리말(국어)을 가르쳤는데, 지나치게 ‘옳은’ 쪽으로 아이들을 몰아가는구나 싶다. 이를테면 밥멀이(거식증)로 고단한 아이더러 무턱대고 “그래도 먹어야 힘이 나지” 같은 말을 자꾸 하더라. 마음이 와장창 깨지고 다쳐서 몸이 무너질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은 ‘밥먹기 = 불늪’이다. 고기를 못 먹는 사람한테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 짓이나, 먹으면 다 게우는 아이더러 억지로 먹이라 시키는 짓은 똑같이 끔찍하다.


  나는 우리나라 어느 멧골을 오르든 맨발이나 고무신으로 다닌다. 벌써 스무 해가 넘었다. 나뿐 아니라 적잖은 사람은 맨발로 더 사뿐히 다닌다. 지난날에 누가 신을 꿰고서 멧골을 오르내렸는가. ‘등산화·등산배낭·등산장비’가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겨야 할 까닭이 없다. 또한, 어린이나 푸름이가 쓴 글을 헤아리기 앞서 어린이나 푸름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보내는지부터 들여다볼 노릇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인지 아닌지 따지는 일은 안 나쁘지만 부질없다. 태어나는 날부터 어버이나 둘레에서 미움만 받느라 몽땅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불벼락을 쏟아낼 수 있다. 글에는 ‘마음’만 담지 않는다. ‘오늘까지 살아낸 마음’을 담는다. 그래서 ‘마음만 읽기’로는 어린마음과 푸른마음에 못 다가선다. ‘삶읽기’부터 할 노릇이다.


  노래(시)는 “순간의 느낌을 붙잡아 쓰는 것”이 아니다. 도무지 아니다. 노래는, 노을처럼 언제나 새롭게 빛나는 높하늘빛처럼 너울거리고 나울거리고 남실거리고 넘실거리는 온삶을 바탕으로 놀이하고 노느듯 들려주는 마음소리이다. 문득(순간) 담기만 하면 말장난과 말재주이다. 곰곰이 담기도 하고, 천천히 담기도 하며, 이따금 불현듯 담기도 한다. 여러 해 지난 일이어도 눈앞에 생생하기에 노래로 담는다. 아직 이루지 않은 일이어도 스스로 되새기고 싶으니 노래로 담는다.


  말글을 다루는 자리에 있는 분이라면, 남이 아닌 나로서 즐겁게 일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배우기를 바란다. 글쓴이한테 ‘옳다’고 하더라도 모든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옳’을 수 없다. ‘옳음(사실·정의)’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 다른 옳음은 그만 붙잡을 노릇이다. 모든 사람한테 나란할 ‘참(진실)’을 헤아릴 노릇이다. 참하게 철들면서 새롭게 어른으로 설 어린이와 푸름이한테서 배우는 매무새일 때에 비로소 길잡이라고 느낀다.


  ‘국어교사’라는 이름으로 애쓰기 앞서, ‘이웃아재’로 아이들 곁에 설 줄 알아야 한다. 섣불리 넘겨짚으면서 ‘국어교사 정의주장’이 아니라 ‘마을이웃’으로서 아이들 하루하루를 천천히 지켜보고 오래오래 마주하면서 ‘아이한테서 먼저 배우는’ 눈망울이어야 비로소 말글을 함께 나누고 펴는 길을 연다.


ㅍㄹㄴ


“오늘 상찬이 밥 한 그릇 비우는 거 보니 고맙더라.” “네, 저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점심을 조금씩이라도 먹어 봐.” “안 넘어가요. 억지로 먹으면 다시 토합니다.” “그래도 먹어야 힘이 나지. 그렇게 안 먹어서 어쩌나.” “노력해 볼게요.” “오늘 좋았지?” “예. 집에 있었으면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 있었을 낀데 좋았어요.” 76쪽


“저 애가 가방을 들고 천왕봉을 오르겠대요. 내 말은 안 들으니 말 좀 해 줘요.” 96쪽


아이들 시가 참된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인지, 어른들 시를 흉내 내는 글쓰기 훈련에서 나온 글인지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125쪽


시는 순간의 느낌을 붙잡아 쓰는 것인데, 그 느낌이란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게 마련이다 … 그래서 나는 오래전에 겪은 일을 글감으로 삼지 말라고 한다. 133쪽


시를 잘 쓰려면 느낌을 잘 붙잡아야 된다고 말하지만, 느낌을 붙잡아 내기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시를 지도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꼈을 터이다. 160쪽


문예부 아이들이나 문예창작과를 지망하는 아이들은 한사코 ‘꾸며낸 이야기’를 고집한다. 그런 글을 읽어 보면 이야기에 아이들 삶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어른들 소설을 모방해서 글을 쓴다. 238쪽


+


《국어시간에 뭐 하니》(구자행, 양철북, 2016)


내가 간섭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세계려니 하면서도, 준엽이의 정직함에 마음이 끌린다

→ 내가 넘보기 어려운 아이들 삶이려니 하면서도 준엽이가 착해서 마음이 끌린다

→ 내가 끼기 어려운 아이들 자리이려니 하면서도 준엽이가 참해서 마음이 끌린다

36쪽


사건은 어젯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어젯밤을 거슬러 본다

→ 어젯밤 일이다

→ 어젯밤이었다

42쪽


그 인간 이중 인간이에요. 정말 가증스러워요

→ 그놈 거짓꾼이에요. 참말 꼴보기싫어요

→ 그 녀석 두얼굴이에요. 참 밉살맞아요

70쪽


표를 많이 얻은 두 시를 놓고 결선 투표를 했다

→ 손을 많이 든 노래로 매듭뽑기를 했다

→ 손길 많이 받은 두 글로 끝내기를 했다

→ 날개꽃 많이 얻은 두 글로 매조지를 했다

→ 이름쪽 많이 얻은 두 글로 마감꽃을 했다

121쪽


거기에 저절로 온갖 뜻이 겹쳐진다

→ 그러면 저절로 온갖 뜻이 스민다

→ 이러면 저절로 온갖 뜻이 깃든다

130쪽


시는 순간의 느낌을 붙잡아 쓰는 것인데, 그 느낌이란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게 마련이다

→ 노래는 문득 느껴서 쓰는데, 오래 지나갈수록 흐릴 수 있다

→ 노래는 그때 느끼며 쓰는데, 한참 지나면 흐릿할 수 있다

133쪽


진희는 대상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 진희는 넌지시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 진희는 스스로 가만히 보았다

→ 진희는 무엇이든 들여다보았다

→ 진희는 늘 곰곰이 보았다

159쪽


가끔 던지는 물음이 있어요

→ 가끔 물어봐요

→ 가끔 물어요

32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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