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신값
우리 나라지기가 일본에 가서 발에 꿴 신 한 켤레가 ‘75만 원’짜리라고 한다. 신 한 켤레가 75만 원뿐 아니라 750만 원도 할 수 있지. 나라지기쯤 되는 자리이니 75만 원짜리 신을 꿸 수 있겠지. 그런데 푸른집(청와대)에서 밝히기로는, 나라지기 아닌 옆사람(보좌관)이 꿰는 신을 빌려신었다고 한다. 옆사람은 한달벌이가 얼마이기에 75만 원짜리 신을 꿸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는 신을 못 만드나? 이웃나라로 건너가서 일본 나라지기를 만나는 자리라면 되도록 ‘우리나라 옷·신·살림’을 챙길 노릇 아닐까? 웬 뜬금없는 ‘이탈리아 75만 원짜리 신’을 챙겨야 할까?
나는 2003년부터 고무신을 꿴다. 고무신 한 켤레는 2003년에 2500원이었다. 이 값은 꾸준히 올라서 2026년에는 한 켤레에 5000원(또는 6000원)을 한다. 고무신 한 켤레는 10∼12달을 꿰면 바닥이 닳아 구멍이 난다. 2026년 값으로 친다면, 75만 원으로 고무신을 150켤레를 장만할 수 있는 셈인가. 신값 75만 원이라면 앞으로 온쉰(150) 해를 신나게 달리고 거닐고 일할 수 있구나.
발을 아끼려는 마음으로 75만 원이건 750만 원이건 7500만 원이건 얼마든지 쓸 일이다. 나라지기이건 옆사람이건 신값이 대수롭지 않다. 다만 하나는 곰곰이 헤아려 본다. 신 한 켤레가 값이 얼마인지 왁자지껄한 마당을 감추거나 둘러대기보다는 “다달이 책값 75만 원쯤 가볍게 씁니다” 하고 말할 줄 알면 될 텐데. 한 달 책값 75만 원이라 해도 책을 그리 많이 사읽는 셈은 아니다. 나라지기를 모시는 도움일꾼이라면 이레에 75만 원쯤 책값으로 쓰면서 온갈래 온살림을 더 힘써 배운다고 밝힐 노릇이지 싶다.
아직 책값으로 이레에 75만 원조차 못 쓰는 나라지기나 도움일꾼이라면 이제부터 하루에 10만 원씩 책값을 쓸 수 있기를 빈다. 이미 하루 책값 10만 원을 쓰는 나라지기나 도움일꾼이라면, 이제부터 하루 책값 20만 원을 쓰면서 더 깊고 넓게 배우고 살피는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빈다. 나라지기를 비롯해서 고을지기와 벼슬아치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오늘 읽은 책입니다.”라든지 “오늘 읽으려는 책입니다.” 하고 책수다를 들려줄 수 있는 나라를 그린다. 널리 이름난 책이 아닌, 누구나 스스로 삶과 살림을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수수하고 아름다운 책을 나라일꾼이 저마다 수다꽃으로 지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면 된다. 신값은 안 대수롭다. 옷값과 집값도 안 대단하다. 날마다 책값으로 20만 원을 기꺼이 신나게 쓸 줄 아는 사람만 나라지기를 비롯한 나라일꾼 자리에 앉기를 빈다. 2026.1.1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