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없어요



  마을앞에서 07:05 시골버스를 탄다. 옆에 앉은 푸름이가 손전화로 시끌그림(유튜브 쇼츠)을 본다. “이어폰 끼셔요.” 하고 말하는데 못 알아듣는다. “버스에서 소리 켜면서 보지 않아요.” 하고 보탠다. 이윽고 다른 푸름이가 타는데 이 아이도 시끌그림을 본다. 이 아이한테도 “이어폰 끼셔요.” 하고 말하는데, “없어요.” 한다. ‘귓소리 없어서 참 자랑이로구나’ 싶네. “다이소에 가면 5000원에 팔아요. 다이소 가서 사셔요. 공공장소에서는 소리 안 켭니다.” 하고 덧붙인다.


  전남 고흥 도화면 두 푸름이는 귓소리를 살까? 두 아이를 시골버스에서 벌써 열 해 가까이 보는데 여태 귓소리를 안 샀고, 나는 두 아이를 비롯한 숱한 아이어른한테 이 잔소리를 까마득히 했구나 싶다. 늘 타는 시골버스에서 늘 부딪히니, 지난 열여섯 해에 걸쳐서 1600벌 넘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대는 잔소리 아재가 된다.


  누가 “책읽을 짬이 없다”고 말하면, “책읽을 짬을 내셔요” 하고 여쭌다. “책살 돈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분한테는, “책살 돈을 벌면 됩니다” 하고 여쭌다. 아이를 돌볼 틈이 없으면 아이를 돌볼 틈을 낼 노릇이다. 바쁘니까 바쁜 일 사이에 움직이고 마음쓸 노릇이다. 힘드니까 새롭게 힘을 내고 차릴 노릇이다. 어려우니까 어려운 틈을 살펴서 다시 일어설 노릇이다.


  모르니까 배워야지. 배우고 나서는 익혀야지. 익혔으면 살아내고 가꾸고 돌보면서 새롭게 씨앗을 심어야지. 씨앗을 심었으면 지켜보고 살림해야지. 지켜보며 살림을 한다면 바야흐로 사랑을 해야지. 사랑으로 이르러야 사람이다. 사람에 이르지 않았으면 ‘한낱 살덩어리’일 뿐이다. 한낱 살덩어리로 그치니 안 배우고 안 익히느라 싸우고 다투고 시샘하고 골내고 꾀부리고 응큼하고 추레하게 뒹군다. 어린씨라고 해서 어리지 않다. 푸른씨라고 해서 철없지 않다. 나이가 많기에 어질지 않다. 배우려 하고, 배우면서 익히려 하며, 배워서 익힌 살림을 풀어내어 나누려 하기에, 비로소 반짝이고 빛나고 어질고 참하다.


  남이 간추려 주거나 추슬러 놓은 글이나 책에 기대면, 우리는 머리뿐 아니라 몸도 죽어간다. 글읽기나 책읽기를 할 적에는 간추림(축약본·요약본)을 아예 멀리해야 한다. 낱낱이 적은 글과 책이 길디길어 보여도 차근차근 짚으며 읽고 새길 일이다. 밥짓는 짬을 줄이면 밥이 설익는다. 잘 틈을 억지로 줄이면 꾸벅꾸벅 졸다가 자빠진다. 줄이거나 아끼고 싶다면, 목숨부터 줄이고 깎으면 된다.


  몸이 아프거나 앓으면 ‘약’을 안 써야 한다. 언제나 호되면서 신나게 아프고 앓으면 된다. 호되면서 신나게 아프고 앓아야 새몸으로 거듭나서 다 낫는다. 섣불리 ‘약’을 쓰는 탓에 얼핏 일찍 떨어져서 낫는 듯하지만, 우리 몸이 스스로 기운차릴 틈을 빼앗는 셈이라서, 거꾸로 ‘제살깎이’로 기울고 만다. 조금만 ‘생각’을 한다면, ‘백신’과 ‘약’은 “근심걱정으로 제살깎이 + 몸에 화학약품과 방부제 욱여넣기”인 줄 알아챈다.


  틈이 없으니 틈을 내면 된다. 돈이 없으니 돈을 벌면 된다. 사랑을 모르겠으니 사랑을 하고 나누고 그리면 된다. 아직 사람이 아닌 ‘사람시늉’인 ‘살덩어리’일 뿐이니 오늘부터 ‘사람되기’를 그리면서 ‘사랑하기’라는 새길에 한 발짝씩 떼면 된다. 2026.1.2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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