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엄마 -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은 집에서
김미희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2.27.

인문책시렁 444


《세 엄마》

 김미희

 글항아리

 2021.11.12.



  《세 엄마》는 두 엄마랑 어린날을 보낸 글쓴이가 뒷날 ‘스스로 엄마’가 되어, 세 갈래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얼키고설키면서 마음을 맺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낳은엄마하고 돌본엄마가 있다면, 글쓴이는 ‘나도엄마’가 됩니다.


  먼 지난날에는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낳은아빠’하고 ‘돌본아빠’라는 몫을 함께했습니다만, 웃사내틀(가부장권력)을 세운 나라(정부)를 즈믄해 남짓 잇는 동안, ‘함께짓는집’이라는 숨빛을 감쪽같이 잊어버린 듯합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오지게 일하고 고단한 모습을 하나도 못 알아보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어떻게 일하는지 낱낱이 지켜볼 뿐 아니라, 쉴 틈이 없이 지내는 줄 하나하나 느끼며 생각합니다. 일하는 엄마를 못 알아보는 아이는 나중에 집일을 꺼리거나 싫어하거나 안 할 뿐 아니라, 으레 남한테 미루거나 넘깁니다. 일하는 엄마를 알아보면서 늘 돕거나 거들거나 함께하며 자라던 아이는 머잖아 집일을 어질게 하는 길을 살펴서 새 보금자리를 도란도란 가꿉니다.


  우리 어버이하고 스무 해를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가 집일을 티끌만큼이라도 도운 적은 아예 없습니다.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 떨어진다”는 헛말을 늘 읊던 아버지인데, 언제나 속으로 “부엌에 들어가면 ○○ 떨어진다면서, 밥먹을 적에는 왜 부엌에 가나요?” 하고 묻고 싶었습니다. 두 아들이 언제나 부엌에 머물면서 어머니 일손을 돕거나 나눌 적마다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나무라던 말씨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아들’이 왜 부엌에서 가시내처럼 부엌일을 하느냐고 나무라거나 윽박지를 힘이 있다면, 그런 힘이야말로 부엌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고 함께 나누는 살림으로 갈 노릇입니다.


  어릴적을 돌아보면, 저는 ‘아들’인 주제에 여러 이웃집에 ‘빌려다녔’습니다. 일손이 바쁘고 모자란 이웃집 아주머니가 으레 저를 빌려가서 일을 맡겼어요. 제가 어린날을 보낸 1980해무렵은 이제 막 아들뿐 아니라 딸한테도 집일을 잘 안 시키려고 하는 집이 늘기는 하되, 딸아들 모두 어버이 곁에서 집일을 엄청나게 맡던 때이기도 합니다. 모두 손으로 짓던 살림이지만, 어느새 틀(기계)이 하나씩 늘면서 틀한테 맡기는 집이 늘던 즈음이요, ‘집된장·집간장·집고추장’이라는 말이 생기면서 ‘사다먹기’가 차츰 늘던 무렵입니다.


  어머니가 된장이며 간장이며 고추장을 담그는 여러 날에는 밖에서 놀 수 없습니다. 장담그기에 일손이 얼마나 드는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나가놀겠습니까. 설이나 한가위를 앞두고 으레 보름 앞서부터 밑감을 하나씩 마련하고, 이레에 걸쳐 밤낮없이 몰아쳐야 비로소 밥살림을 겨우 마칩니다. 그러나 설날이나 한가위날 아침까지도 일이 안 끝나기 일쑤예요. 작은집 먹을거리까지 마련해야 하니까 뭐든지 여러 솥 해놓아야 하거든요. 만두를 1000알 빚어도 모자라기에 설을 쇤 밤에 어머니랑 언니랑 저랑 셋이 둘러앉아서 더 빚어 놓곤 했습니다.


  《세 엄마》에 흐르는 이야기란, 사랑받지 못 했다고 여겼으나 늘 사랑받는 삶인 줄 알아채며 눈물과 웃음을 씨앗처럼 품으려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겉얼굴이 아닌 속마음을 바라보면 늘 사랑으로 피어나는 길인 줄 알아차립니다. 속마음이 아닌 겉얼굴을 쳐다보느라 늘 사랑을 잊은 채 헤맵니다. ‘낳은아빠’도 ‘돌본아빠’도 못 된 숱한 사내는 ‘나도아빠’라는 이름을 까맣게 잊어요. 즐겁게 만날 사이를 잊어버리니 스스로 잃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여름이 다가오면 봄이 차분히 저뭅니다. 가을이 찾아오면 여름이 차분히 저뭅니다. 겨울이 코앞이면 가을이 차분히 저뭅니다. 바야흐로 봄이면 겨울이 차분히 저뭅니다. 네 철은 차분히 돌고돕니다. 우리는 네 철을 고스란히 맞아들이면서 ‘철드는’ 사람으로 섭니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서 보금자리를 짓는 손길을 잊을 적에는 ‘어버이’도 ‘엄마아빠’도 아닌 ‘남’이나 ‘놈’이게 마련입니다. 이제는 함께 살림짓는 손빛을 밝히는 철든 사람으로서 눈빛을 반짝이는 하루를 걸어갈 노릇입니다.


ㅍㄹㄴ


(낳은엄마는) 새어머니와 친아버지에게 나와 동생을 내팽개쳐놓고 떠났다. 네 아버지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이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는, 자식들을 그런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클지 신경도 안 쓴 채 나 몰라라 하고 가버렸다. 돈을 벌어 2년 뒤에 데리러 온다고 하고서는 바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아이 둘을 더 낳았다. (13쪽)


나는 이불 속에서 동생의 손을 잡았는데 그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잡는 걸 보면 동생도 깼나 보다. 동생 손을 잡으면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껴져 조금 안심된다. (71쪽)


내가 누나가 맞긴 하지만 설거지를 돕거나 음식을 나르는 일은 나에게 시켰다. “여자는 음식을 잘해야 돼. 그래야 시집을 잘 간다.” 어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사촌이 부럽지는 않았던 것이 큰아빠는 자기 아들이 맘에 들지 않을 때면 위협을 하거나 때렸기 때문이다. (86쪽)


나는 새어머니가 나를 믿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려고 학원비를 줬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믿고 있었다니. 나는 나 자신만 생각하기에 바빠서 새어머니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127쪽)


그동안 어머니(돌본엄마)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우리 말고 자식은 안 낳으셨어요?” “너네 키우느라고 그랬지.” (159쪽)


나이 들어도 다정한 아버지와 애교 많은 딸의 모습이다. 내 앞에서 꼭 저렇게 다정한 모녀라는 걸 뽐내고 싶은 걸까? 아니 이모의 평소 자연스러운 행동이겠지. 나의 자격지심일 뿐이다. (179쪽)


하면 할 수 있구나. 돈이 없어서, 여자니까,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니까 할 수 없다고 여긴 일이 많았구나. (202쪽)


나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글로 적고 보니 대체 어떤 부분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의문이 든다. 부모가 나를 심하게 때린 것도 아니고 굶긴 것도 아니고 공부를 못하게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이혼을 했고 친어머니는 연락이 없고 아버지는 백수에 알코올 중독이었던 것뿐이다. (217쪽)


+


《세 엄마》(김미희, 글항아리, 2021)


봉와직염이라면서 영양분이 부족하면 생기는 병이라고 했다

→ 고름꽃이라면서 못 먹으면 생긴다고 한다

→ 멍울꽃이라면서 깡마르면 생긴다고 한다

127쪽


빈자리는 있어야 할 누군가가 없다는 표시다

→ 빈자리는 있어야 할 누가 없다는 뜻이다

→ 있어야 할 사람이 없기에 빈자리이다

→ 있을 사람이 없으니 빈자리이다

196쪽


나는 이불 위에 뻗어버렸다

→ 나는 이불에 뻗어버렸다

→ 나는 바로 뻗어버렸다

19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