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1 마음을 담는다

글벌레수다 : 날마다 살림하는 글



  누구나 말로 마음을 나타내지만, 선뜻 말꼬를 못 터는 아이와 어른이 있게 마련이다. 뭇사람이 지켜보는 자리가 아닌, 혼자 있는 자리에서조차 혼잣말을 스스럼없이 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붓을 쥐고서 종이를 펴면 어쩐지 “하고 싶던 말”을 슥슥 쓰기도 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말을 썩 잘하지 않는 사람 누구나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다. 수줍거나 창피하다고 여기는 사람이기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수줍어하지 않고 창피한 줄 모르면서 말이 번드레한 사람이 글을 잘 쓰지 않는다. 스스로 밝히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일 적에 ‘글쓰기’를 하고, 이 글쓰기는 “잘 쓴 글”이나 “못 쓴 글”이 아닌 “오직 마음을 담은 글”이다.


  말을 잘 해야 하거나 글을 잘 써야 하지 않는다. 마음을 말로 담을 노릇이고, 마음을 글로 옮길 일이다. 마음이 없는 채 줄줄줄 흘러나오는 말글이라면 그저 덧없다. 마음을 숨기거나 가린 채 겉으로 치레하는 말글이라면 그냥 부질없다. 제 마음을 밝히는 시늉에 그친다든지, 보기좋게 꾸미려는 마음이라면, “마음을 담은 척하는 글”일 뿐이다.


  처음부터 책을 내려고 노리면서 쓰는 글이라면 으레 알맹이가 없다고 느낀다. 처음부터 남한테 보이려고 쓰는 글월이라면 껍데기를 덧씌우는 글치레에 얽매인다고 느낀다. 서로 마음을 나누려고 쓴 글을 모은 책이라면, 많이 팔리건 적게 팔리건 아름책이다. 저마다 마음을 밝히려고 주고받은 글월을 엮은 책이라면, 글쓴이 이름값이 있건 없건 사랑스럽다.


  집은 어떤 곳인가?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곳인 집이고, 자기도 하고 먹기도 하는 곳인 집이다. 살림을 지으면서 살아가는 집이고, 느긋이 지내면서 삶을 즐기려는 집이다. 우리집은 나와 네가 저마다 나름대로 가꾸는 손길이 흐르는 터전이다. 이웃집은 나와 다른 누가 스스로 일구는 손빛이 밝은 터전이다. 오늘날에는 다 다른 사람이 저마다 손수 가꾸고 짓고 다듬는 살림집이 거의 사라진다. 오늘날에는 서울이나 시골 모두 ‘잿더미(대규모 아파트단지 또는 오피스텔 또는 빌라)’가 가득하다. 몸소 마음을 담아서 지내는 집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뚝딱뚝딱 똑같이 짜맞춘 잿더미를 ‘부동산’으로 목돈을 들여서 얻어서 몸을 둔다면, 이런 잿더미에서 살아가는 마음이란 무엇이겠는가?


  다 다른 집이 모여서 어느새 이루는 마을이 아닌, 하루아침에 똑같은 잿더미가 잔뜩 쌓인 데에서는 ‘마음’도 ‘손길’도 ‘눈빛’도 없게 마련이다. 이제는 누구나 글쓰기를 누리거나 즐길 수 있는데, 정작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마음을 다 다른 말씨·글씨로 지피는 이야기”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거나 드물다. 다 다른 마음을 담아내는 말이나 글이라면, 꾸미지 않고 치레하지 않고 덧바르지 않는다. 이따금 띄어쓰기나 맞춤길이 틀릴 수 있되, 어렵거나 뒤트는 옮김말씨나 일본말씨가 안 춤춘다.


  글을 쓰려고 한다면, 우리 스스로 먼저 무엇을 어떻게 가꿀 노릇인지 헤아릴 노릇이다. 이 삶에서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가꿀는지 살필 노릇이다. 오늘 이곳에서 어떻게 사랑이라는 씨앗을 말과 글에 얹어서 ‘말씨·글씨’를 이루려 하는지 짚어야겠지. 우리는 아직 말을 말로 못 듣고, 글을 글로 못 읽기 일쑤이다. 제대로 못 보는 ‘닫힌눈’이거나 ‘감은눈’이다. 이제는 봄눈처럼 싹을 틔우고 활짝 열어젖히는 마음빛을 말글에 담을 때이지 않은가.


ㅍㄹㄴ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황효진·윤이나, 세미콜론, 2021)


MBTI로 따지자면 첫 자가 E인 인간이구나

→ 열여섯을 따지자면 처음이 ㅂ이구나

→ 마음을 따지자면 첫글이 ㅂ이구나

→ 밑꽃을 따지자면 첫글씨가 ㅂ이구나

→ 바탕을 따지자면 ㅂ인 사람이구나

10쪽


여러 가지 이유로 그때는 편지를 주고받지도, 결국 책을 만들지도 못했지만요

→ 여러 탓에 그때는 글월을 주고받지도, 끝내 책을 내지도 못했지만요

→ 여러 일이 있어 그때는 글을 주고받지도, 책을 내지도 못했지만요

12쪽


이것이 저를 둘러싼 현실이고 일상이며, 오늘의 삶입니다

→ 저를 둘러싼 삶이 이렇습니다

→ 제가 살아가는 나날이 이러합니다

→ 제 삶은 이렇습니다

→ 저는 오늘을 이렇게 삽니다

36쪽


이제야 다음 챕터로 갈 수 있겠네요

→ 이제야 다음으로 갈 수 있네요

→ 이제야 다음길로 갈 수 있네요

→ 이제 넘어갈 수 있네요

68쪽


내게 품위를 부여하는 일은 비극 속에서도 코미디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믿는 제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방법은, 이것이겠지요

→ 나는 서글퍼도 웃음씨를 생각하자고 여기기에 멋스럽겠지요

→ 아프더라도 하하 웃자고 생각하기에 빛나겠지요

→ 괴롭지만 넌덕을 부리자고 생각하니 사람이겠지요

86쪽


몇 가지 형용사로 수식되는 추상적인 노년의 여성이 되고 싶다는 말 대신에, 우리가 이름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이야기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 몇 가지 그림씨로 가리키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말이 아닌, 우리가 이곳에 이름으로 있는 이야기로 낱낱이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 몇 가지 어떻씨로 나타내는 할매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우리가 서로 이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로 차근차근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10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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