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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 ㅣ 사계절 민주인권그림책
정진호 지음 / 사계절 / 2024년 5월
평점 :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11.10.
그림책시렁 1672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
정진호
사계절
2024.5.30.
모르는 분은 모를 테지만, 물고기살(생선회)을 싱싱하게 먹고 싶다면 ‘전남 고흥’ 같은 바닷마을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 가게를 갈 노릇입니다. 엉뚱하게 여길는지 모르나, 바닷마을에서는 “넘쳐나게 낚은 바닷고기를 먹을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이와 달리 서울 한복판은 “싱싱한 고깃살을 바라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고흥뿐 아니라 모든 뱃나루는 ‘새벽바람(새벽특송)’으로 서울에 씽씽 실어나릅니다.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은 ‘사계절 민주인권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누가 ‘새벽길(새벽배송)’을 시킬 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새벽에 쉬잖고 일해야 하는지 하나씩 짚는 듯한 얼거리입니다. 그런데 퍽 억지스럽습니다. 새벽길을 달리는 일꾼은 새벽에 기름을 안 넣어요. 이미 어제 일을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침나절에 기름을 넣습니다. 밤길(심야버스)을 달리는 일꾼은 낮에 느긋이 쉬고 잡니다. 밤일꾼과 새벽일꾼은 스스로 삶길을 밤과 새벽에 일하면서 아침과 낮에 쉬는 하루로 맞춰요. 밤에 일하니 몸을 망가뜨릴까요? 새벽일을 멈추거나 막아야 할까요? 그런데 누구나 먹는 밥살림을 거두는 시골에서는 논밭일을 새벽 3시부터 합니다. 바쁜 여름에는 새벽 2시부터 일하기도 합니다. 00시나 01시부터 08시까지 달리는 일철도 있습니다.
서로 아끼고 헤아릴 노릇입니다. 우리는 ‘아침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이라는 쳇바퀴에 갇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회사원·공무원’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지기(대통령)도 쉬어야 할 테지만 나라지기는 하루 내내 온나라를 살피는 길에 온마음을 쓰는 자리입니다. 나라지기를 그만둔 뒤에 꽃돈(연금)을 그렇게 잔뜩 주는걸요. 만듦터(공장)는 하루 내내 돌릴 수 있고, 하루에 알맞게 돌릴 수 있습니다. 아기를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는 말 그대로 하루 내내 아기 곁에 있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도 늘 곁에서 지켜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새벽일도 아침일도 낮일도 저녁일도 밤일도 스스로 알맞게 가누면서 헤아리는 나날입니다.
올바름(공정정의)이라는 눈을 함부로 들이밀지 않아야 할 노릇입니다. 무엇보다도 서울(도시)에 스스로 갇혀서 시골은 아예 안 쳐다보는 낡은 틀부터 버릴 노릇입니다. 온누리 모든 어버이가 어떻게 아이를 낳아서 돌보고 가르쳐 왔는지 제대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침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이라면 아침 9시 무렵과 저녁 6시 무렵은 그야말로 불바다입니다. 참말로 온나라는 두 무렵에 북새불늪(교통지옥)입니다. 서울부터 덩치를 줄이고, 시골로 골고루 돌아가서 살림을 지을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반드시 ‘학교’를 다니면서 ‘졸업장’을 따야 하지 않습니다. 들숲메바다야말로 모든 아이어른한테 빛나는 배움터에 살림터입니다.
‘고작 바나나’를 새벽길로 시킨다고 나무라면서 잘못(죄책감)을 심으려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나나까지’ 새벽길로 시킬 만큼 바쁘고 고단하고 지친 삶을 먼저 들여다볼 일이지 않을까요? 바쁘고 고단하고 지친 이웃을 도우면서 새벽일을 다부지게 하는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글과 그림으로 담을 수 있어야 아름답지 않을까요? ‘아름살림’과 ‘숲살림’과 ‘사랑살림’은 언제 어디나 참답게(민주진보) 마련입니다. 아름답게 살림을 짓고 숲빛으로 살림을 지으며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길을 담을 때에 비로소 ‘그림책’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