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8.26. 서울잠
늦여름 끝자락에 부산과 서울에서 자다가 자꾸 일어나서 씻어야 했다. 들숲메를 품는 시골은 이미 늦여름 첫머리부터 밤이 서늘하거나 추웠다. 저녁에 씻고 누우면 아침까지 땀이 안 났다. 그러나 부산과 서울에서는 땀밤이었다.
우리나라는 푸른집(청와대)과 벼슬집(공공기관)부터 에어컨 없이 일하는 터전으로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쇠(자가용)를 몰며 바깥바람(창문바람)만 쐴 수 있을까? 푸른집이나 벼슬집이 아닌, 여느 가게와 일터도 에어컨 아닌 바깥바람을 맞아들이면서 다 다른 철을 느끼고 누리는 살림살이를 다시 바라볼 수 있을까?
‘혁명’이나 ‘개혁’을 하자는 말은 누구나 외치기 쉽다. 삶으로 갈아엎거나 뜯어고치려면 늘 집부터 할 노릇이다. 무슨 개혁이나 혁명을 하기 앞서 “대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조차 안 다니는” 혁명과 개혁부터 나설 노릇이다. 졸업장과 자격증을 불쏘시개로 삼는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 돈을 들여서 갈아엎은 다음에 돈을 끌어모으는 밭갈이가 아닌, 삶을 가꾸고 살림을 일구며 사랑을 품는 새길을 열어야지 싶다.
아이사랑은 졸업장으로 안 한다. 논밭살림은 자격증으로 안 한다. 사랑과 살림과 사람과 숲은 그저 집부터 돌보는 길을 걷는 하루에서 비롯한다. ‘가시버시’와 ‘어버이’라는 오래말을 떠올리자. ‘가시(갓) + 버시(벗)’인 ‘가시버시’인 얼개요, 순이(여성)가 앞이면서 돌이(남성)가 뒤를 받치는 이름이다. ‘어버이 = 어머니 + 아버지’이다. 어머니가 앞에서 이끌고 아버지가 뒤에서 받치면서 집살림을 맡는다는 뜻을 품은 오래말이다.
바람이 불기에 시원하지 않다. 모래바람이나 ‘서울 아파트 골바람’은 시원할 수 없다. 풀꽃나무를 스치는 바람일 적에 싱그럽고 시원하다. 들숲메바다를 가르던 바람이기에 맑고 푸르다.
풀꽃이 자라기에 풀벌레가 깃들며 노래한다. 나무가 서기에 새와 매미가 찾아들며 노래한다. 기름 먹는 쇠(자동차)이든, 전기 먹는 쇠(자동차)이든, 노래가 아닌 매캐한 시끌소리와 쓰레기만 내놓을 뿐 아니라, 쇳덩이가 달릴 길을 닦느라 들숲메를 죽인다. 하늘나루(공항)를 그만 지을 때에 참살림(민주정부)이다. 어설프고 어쭙잖은 겉옷(양복)을 벗어서 다 버리고서 낫을 쥐기에 푸른나라(민주공화국)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참살림하고 멀고, 푸른나라도 못 바라본다. 이제는 참살림을 품으면서, 푸른나라로 풀어갈 노릇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