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합천 가는 길 (2025.5.22.)

― 진주 〈동훈서점〉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면서 벼슬자리와 나리가 으르렁거리던 무렵에는 ‘아무’나 ‘이름’을 얻지 못 했습니다. 임금을 비롯한 수컷은 하나같이 중국말로 이름을 여럿 붙이면서 우쭐거렸고, 이들을 우러르면서 조아려야 하는 논밭지기나 하님이나 ‘밑사람’한테는 이름이 없기 일쑤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이놈·이년’으로 가리켰을 뿐입니다.


  지난날 배움터는 아이들을 ‘이름’이 아닌 ‘셈값(번호)’으로 불렀습니다. 사람으로 안 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셈값 부르기’는 먼저 싸움터(군대)에서 일삼습니다. 이른바 ‘군번’입니다. 싸움터에 끌려가는 힘없는 사내는 목줄(군번줄)을 차고서 셈값으로 불립니다.


  합천으로 가는 길목이기에 진주 〈동훈서점〉을 들러서 다리를 쉽니다. 고흥에서는 순천을 거치고 진주를 찍어야 합천으로 갑니다. 문득 ‘동훈’이라는 책집 이름을 생각합니다. ‘동훈·서훈·남훈·북훈’처럼 ‘새하늬마높’을 가만히 곱씹습니다. 진주라는 고을은 이 땅에서 어떠한 해바람비를 품는 터전일까요? 진주에서 책집 한 곳은 마을사람과 이웃사람한테 어떤 책빛을 베푸는 이음터일까요?


  우리말 곳이름 ‘새하늬마높’에는 ‘사이·새롭다·사람·사랑’에 ‘하다·한·하양·함께’에 ‘맏·많·마음·말·머리’에 ‘높다·노을·노랑·노래·놀이’ 같은 밑뜻이 도사립니다. 다만, 우리는 밑뜻이며 속뜻이며 말뜻을 배움터에서 제대로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말부터 모르는 나날입니다.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지은이가 여태 배운 살림을 함께 나누면서 같이 새롭게 눈뜨는 길을 걷는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책지음이가 나누는 씨앗 한 톨을 기쁘게 받아들여서 늘 어린이 곁에서 어깨동무하는 어진 하루를 일군다”는 뜻이라고도 느낍니다. 어른이라면 여린이(약자) 앞에서 우쭐댈(거만) 까닭이 없어요. 어른이라면 늘 온갖 책을 들추면서 여린이하고 주고받는 마음을 가꾼다고 봅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어린이와 여린이 앞에서 노래하는 노을빛으로 물들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뭇숨결과 손잡고서 들숲메바다를 가꾸는 사랑에 눈떠요. 스스로 살림하는 사람이기에 너나없이 하늘빛으로 물듭니다.


  한봄도 한여름도 한가을도 한겨울도 가장 눈부신 철빛입니다. 해는 높다가도 낮고, 눕다가도 섭니다. 멧자락에 걸치는 햇길을 어림하면서 걷습니다. 책메를 넘고 책밭을 돌아보고 책마을을 헤아립니다. 착하게 참하고 찬찬히 하루를 짓고 가꾸고 일구는 길이 아름다이 나누는 하루입니다. 살림길을 나란히 지피며 오늘을 가꿉니다.


ㅍㄹㄴ


《全天恒星圖 2000》(廣瀨秀雄·中野繁, 誠文堂新光社, 1984.9.25.1벌/1991.3.25.5벌)

《建築設計資料集成 1 環境》(서울공대건축과 교수 이건 감수, 건우사, 1979.2.15.)

《훅인영가, 성경에서 민요로》(크리스타 K.딕슨/정선봉·양승애 옮김, 분도출판사, 1981.12.20.1벌.1987.2.25.재판)

#NegroSpirituals #ChristaKDixon

《獄中書簡》(디이트리트 폰회퍼/고범서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67.4.15.첫/1983.12.30.14벌)

-《옥중서신, 저항과 복종》(디트리히 본회퍼/김순현 옮김, 복있는사람, 2016.9.19.)

- #WiderstandundErgebung #DietrichBonhoeffer

《옛 거장들》(토마스 베른하르트/김연순·박희석 옮김, 현암사, 1997.11.30.)

- 필로소픽

#AlteMeister #ThomasBernhard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마이아 에켈뢰브/이유진 옮김, 교유서가, 2022.8.1.)

#Rapport fran en skurhink (1970년) #MajaEkelof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제임스 설터/최민우 옮김, 마음산책, 2020.2.10.)

#DontSaveAnything #JamesSalter

《흰, 한강 소설》(한강 글·차미혜 사진, 난다, 2016.5.25.1벌/2016.6.1.3벌)

《소로와 함께한 나날들》(에드워드 월도 에머슨/서강목 옮김, 책읽는오두막, 2013.9.27.)

#HenryThoreauasrememberedbyayoungfriend #EmersonEdwardWaldo

《새로운 나여, 안녕》(앨리스 워커/이옥진 옮김, 마음산책, 2005.4.25.)

#NowistheTimetoOpenYourHeart #AliceWalker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숲노래·최종규, 철수와영희, 2025.3.28.)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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