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
변한다 지음 / 느린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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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7.19.

까칠읽기 80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

 변한다

 느린서재

 2023.9.18.



장마비가 더위를 씻는 한여름 한복판을 지나간다. “인생이 변하는 독서일기”라 하고, “도망칠 곳이 필요할 때마다 책 속으로 숨었다”고 하는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를 읽었다. 굶주렸기에 살아남으려고 책을 읽는다면, 달아날 곳을 찾아서 책을 판다면, 오히려 더 굶주리고 더 달아나게 마련이라고 느낀다. 굶주릴 적에는 오히려 더 조금 훨씬 천천히 밥술을 들어야 몸을 천천히 살린다. 오래 굶주린 몸에 허겁지겁 밥을 몰아넣으면 그만 배앓이를 하다가 죽기까지 하고, 외려 모두 게우게 마련이다. 달아나고 싶어서 숨을 곳을 찾으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두게 마련이니, 살아나거나 피어날 길을 스스로 가리고 만다.


배고플 적에는 우리 몸마음을 새로 돌아볼 수 있다. 여러 날을 굶거나 열흘을 굶어 보았다면, 보름이나 달포를 굶어 보았다면 알리라. 배가 고플수록 오히려 넋이 또렷하게 살아난다. 몸에 밥을 덜 넣거나 안 넣을 적에 뜻밖에 마음이 맑게 트이면서 생각이 차분하게 자라난다.


남보다 배고프다고 여기는 바람에 이 책 저 책을 찾아서 게걸스레 먹어치우듯 읽으려고 할 적에는, 줄거리부터 제대로 못 삭인다. 삭일 틈이 없이 다음 책을 읽어치우려는 매무새이니, 줄거리에 흐르는 이야기나 속뜻은 으레 놓칠 수밖에 없다. 남하고 나를 안 견준다면 배고플 일도 까닭도 없다. 남하고 나를 견주느라 자꾸 배고프고 더욱 외롭다고 여긴다.


밥살림이건 책살림이건 같다. 스스로 살리는 길이란 ‘빨리·많이·크게’가 아니다. ‘느긋이·너르게·알맞게’이다. 굳이 천천히 안 읽어도 된다. 굳이 조금 읽어야 하지 않고, 애써 작게작게 줄여야 하지 않다. 느긋이 헤아리다 보면, 하루에 열 자락이나 스무 자락에 이르는 책도 술술 읽어낸다. 너르게 돌아보노라면, 한 달에 즈믄 자락 책을 가볍게 읽고서 속을 꿰뚫는다. 알맞게 가다듬는다면, 한 해에 사읽는 책이 꽤 빛날 만하다.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는 스스로 막바지나 벼랑에 몰렸다는 마음으로 얼마나 불꽃튀며 책을 읽었는가 하는 하루를 들려준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 푸른별에는 구석도 가장자리도 한가운데도 없다. 모든 곳은 ‘이곳’이면서 ‘내가 살아가는 오늘’이다. 글쓴이는 “우린 신이 아니다(70쪽)”처럼 말하는데, 그냥 틀렸다. 우리는 모두 하늘(신)이다. 우리는 하늘(바람)을 마시기에 목숨을 잇는다. 한자말 ‘공기’라는 낱말에 얽매이기에, 우리가 늘 무엇을 마시면서 숨결을 잇는지 까마득히 모르기 일쑤이다. 우리는 바람을 먹으면서 누구나 하늘이다. 하늘을 머금으며 숨빛을 읽는 사람이 하늘(신)이 아닐 수 있을까?


한 해 가운데 여름에 꽃이 가장 많이 핀다(144쪽)는 대목도 아리송하다. 여름꽃도 많기는 하지만, 봄꽃이 훨씬 많을 텐데? 그러나 어느 철이나 어느 달에 꽃이 더 많이 핀들 대수롭지는 않다. 사람은 모두 하늘일 뿐 아니라, 사람은 저마다 꽃인 줄 알아보아야 할 노릇이다. 어느 사람은 봄꽃이고, 어느 사람은 여름꽃이고, 어느 사람은 가을꽃이고, 어느 사람은 겨울꽃이다. 우리는 다 다른 하늘이자 꽃이면서, 모두 나란한 하늘이자 꽃이다.


눈치(남눈)에 얽매인 채 허둥지둥 살아남으려고 굶주려서 읽어치우는 책으로는 나부터 못 살린다. ‘눈치’가 아닌 ‘눈(나눈)’을 뜰 노릇이다. 눈을 뜨면서 눈빛을 밝히고, 눈길을 펴서, 눈꽃을 피우고, 눈씨(눈길씨앗)를 심으면 된다.


ㅍㄹㄴ


들어가 보지 않고 겪지 않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요즘 질풍노도의 격변기를 겪고 있는 중학생 아들을 보며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의 마음속 한켠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1쪽)


근데 간과하는 게 있다. 우린 신이 아니다. (70쪽)


1년 중 꽃이 가장 많이 피는 계절이 여름이란다. (144쪽)


반면교사도 수시로 하면 지겹다. 주의해야 할 것은 나는 절대 아니라고 방심하거나 시건방을 떨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190쪽)


백날 나는 날세, 나여야만 하네, 외치면 뭐 하나.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보는 눈’이다. (217쪽)


+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변한다, 느린서재, 2023)


이 책을 쓰던 중 저는 배에 걸리적거리던 낭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고

→ 저는 이 책을 쓰다가 배에 걸리적거리던 혹을 잘라냈고

→ 이 책을 쓰다가 배에 걸리적거리던 주머니혹을 도려냈고

12쪽


독서의 세계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책누리에 오셔서 반갑습니다

→ 책밭에 오셔서 기쁩니다

13쪽


중고서점에 날름 팔아버렸다

→ 헌책집에 날름 팔아버렸다

→ 오래책집에 날름 팔아버렸다

20쪽


내 독서는 첫 회사 입사 이후 시작됐다

→ 나는 첫 일터에 들어가면서 읽었다

→ 나는 일터에 가던 날부터 책을 읽었다

22쪽


나의 아버지는 달랐다

→ 아버지는 달랐다

→ 우리 아버지는 다르다

42쪽


나는 일찌감치 배드 걸이 되었다

→ 나는 일찌감치 나쁜이가 되었다

→ 나는 일찌감치 놈이 되었다

→ 나는 일찌감치 막놈이 되었다

→ 나는 일찌감치 몹쓸것이 되었다

55쪽


쓸데없는 잡념과 걱정으로 귀한 시간을 낭비하려는 생각은 없다

→ 쓸데없이 걱정으로 하루를 버리고 싶지 않다

→ 걱정하며 쓸데없이 이 삶을 잃고 싶지 않다

60쪽


술 같은 젯밥에 치중된 것에 실망해 독수공방 나홀로 읽었던 그동안의 세월은 잠시 제쳐두고

→ 술 같은 고물에 기울기에 싫어 나홀로 읽던 그동안은 살짝 제쳐두고

→ 술 같은 뒷밥에 얽매이니 보기싫어 나홀로 읽던 그동안은 제쳐두고

94쪽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 가지런히 심은

→ 가지런한

101쪽


아마추어는 일희일비하고, 프로는 총욕약경, 즉 나와 관련된 총애나 욕됨에 얽매이지 않고 올바르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 풋내기는 들뜨고, 빛님은 차분하다는

→ 어리숙하니 출렁이고, 솜씨꾼은 참하다는

149쪽


내 주위의 일잘러들로부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무수히 많이 들어왔던 말

→ 둘레 일잘꾼한테서 오래오래 숱하게 들어온 말

→ 이곳저곳 일잘꾼이 오래오래 숱하게 들려준 말

155쪽


덜 영향을 받는 존재being가 되기 위해 행동doing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 덜 휘말리는 나로 살자면 온몸으로 나를 보여줘야 한다

→ 덜 물드면서 살자면 스스로 움직이며 나를 밝혀야 한다

178쪽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 배웁니다

→ 배워요

→ 한창 배워요

→ 요새 배워요

191쪽


막걸리 하나로 호형호제할 수 있는 걸걸함도 탑재되어 있었다

→ 막걸리 하나로 사귈 수 있을 만큼 걸걸했다

→ 막걸리 하나로 어울릴 수 있을 만큼 걸걸했다

→ 막걸리 하나로 서로하나일 만큼 걸걸했다

→ 막걸리 하나로 동무할 만큼 걸걸했다

213쪽


뽑아줬더니 민생은 들여다보지 않고

→ 뽑아줬더니 살림은 들여다보지 않고

→ 뽑아줬더니 삶은 들여다보지 않고

286쪽


한순간에 직장에서 직을 잃고

→ 갑자기 일터에서 자리 잃고

→ 느닷없이 일자리를 잃고

31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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