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 숲노래 우리말 2025.5.31.
말꽃삶 47 ‘로그아웃’ 안 합니다
― “기호 9·10·11”를 찍는 마음
ㄱ 로그아웃과 나가기
우리는 ‘인터넷’이 처음 퍼지던 무렵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저는 또렷이 떠올립니다. 싸움터(군대)를 다녀오고 보니 ‘피시통신’에서 느슨히 ‘인터넷’으로 넘어가려는 길목이었고, 이무렵 풀그림(프로그램)을 짜는 젊은일꾼은 “사람들이 낯설다고 여길 영어”를 되도록 쉽고 수수하면서 또렷하게 풀어내려고 몹시 애썼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즐겨찾기’ 같은 낱말을 널리 쓰는데, 이 새말은 “‘인터넷’이란 영어를 ‘누리’라는 낱말을 바탕으로 풀어내려던 젊은일꾼”이 처음 지어서 퍼뜨렸습니다. 이런 말씨를 지켜보면서 저는 제 나름대로 ‘즐겨먹기·즐겨읽기·즐겨보기·즐겨듣기·즐겨쓰기·즐겨가기·즐겨걷기’처럼 즐겁게 새말을 더 헤아려서 여밀 만하겠다고 느꼈어요.
이렁저렁 쓸 수 있는 영어 ‘프로그램’이지만, 이 영어도 지난날 젊은일꾼이 ‘풀그림’이라는 새말로 나타냈습니다. “풀어서 품는 그림”이라는 밑뜻입니다. 영어로는 ‘로그인·로그아웃’일 테지만, 1994년 앞뒤로 이미 ‘들어가다·나가다’나 ‘들어오다·나오다’로 담아낼 만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쉽게 풀거나 담거나 엮는 매무새나 눈길이 차츰 옅거나 흐린 듯합니다. ‘들어오다·나오다’라 안 하고 ‘로그인·로그아웃’이라 하는 분이 꽤 많아요. 이만 한 낱말쯤 그냥 영어를 써도 되지 않겠느냐고 여기는 셈일 텐데, 이처럼 흔하고 수수한 말씨부터 더 마음을 기울일 적에, 저마다 마음을 말로 담는 길을 즐거우면서 새롭고 넉넉하고 알뜰하게 펼 만하다고 느낍니다.
ㄴ 기호 9·10·11
다른 고장은 어떠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전라남도에서는 둘레에서 저한테 자꾸 “자네는 누구를 찍을랑가?” 하고 묻습니다. 아무래도 전라남도에서는 어느 쪽을 몰아서 찍는 물결이다 보니까, 더구나 전남 고흥은 우리나라에서 어느 쪽을 가장 몰아서 찍는 곳이다 보니까, 고흥에서 나고자라지는 않았어도 2011년부터 벌써 열다섯 해째 고흥내기로 살아가는 저더러 “자네는 우리가? 아님 남이가?” 하고 따지는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대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는 기호 9번을 찍습니다.” “기호 9번? 9번이 누구지?” “기호 10번도 찍을 수 있습니다.” “10번? 10번이 어딨나?” “기호 11번도 찍을 마음이 있습니다.” “허허, 이 사람 장난하나?” “기호 9번은 어린이입니다. 기호 10번은 푸름이입니다. 기호 11번은 들숲메바다입니다. 기호 12번은 해바람비흙입니다. 기호 13번은 시골입니다. 기호 14번은 책과 책집과 책숲입니다. 기호 15번은 작은집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기호 16번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어른과 어버이입니다. 기호 17번은 씨앗과 나비입니다. 기호 18번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호 9번부터 18번을 모두 찍으려고 합니다.” “…… 자네하고는 뭔 말을 못 하겠네. 그럼 누구를 찍는단 말인가?” “조금 앞서 여쭈었듯이, 어린이와 푸름이와 들숲메바다와 해바람비흙과 시골과 책과 가난이웃과 어른·어버이와 씨앗과 나비와 사랑을 헤아리는 분이 있으면 누구라도 찍을 텐데, 기호 1번부터 8번까지 죽 보노라니, 어느 누구도 어린이는커녕 나비도 숲도 책도 사랑도 안 쳐다보고 안 들여다보셔서, 저는 기호 9번이나 기호 17번을 찍으려고 합니다. 투표용지에 기호 9번이나 17번이 없으면 제가 투표용지에 ‘기호 9번 어린이’라 적고서 나오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숱한 나라는 ‘으뜸하나(승자독식)’입니다. 이러다 보니 47.1 : 47.0으로 갈리더라도 47.1이 모두 차지하는 얄궂은 얼거리입니다. 그러면, 이런 얼거리를 갈아엎을 뿐 아니라, 누가 나라지기나 벼슬자리를 차지하더라도 아름답게 일하는 터전으로 바꿀 때라고 느껴요.
그래서 ‘나라지기 뽑기(대통령 선거)’에서 ‘45 : 44 : 10 : 1’처럼 나온다면, 45로 뽑힌 나라지기는 ‘장관·기관장’을 45%만 뽑고, 44로 떨어진 사람은 ‘장관·기관장’을 44%를 뽑고, 10으로 떨어진 사람은 ‘장관·기관장’을 10%를 뽑고, 1로 떨어진 사람은 ‘장관·기관장’을 1%를 뽑는 얼거리를 세울 만합니다. 이때에 ‘장관·기관장’은 구슬뽑기로 가리면 됩니다. 이른바 ‘대선득표율’에 따라서 ‘장관·기관장 지명 권리’를 고르게 나누면 되어요.
이런 얼거리를 짠다면 ‘총선득표율’에 따라서 국회의원과 군의원과 구의원 같은 자리도 구슬뽑기로 나눌 만합니다. 또한 총선에서는 구슬뽑기로 ‘고을나눔(지역구 배정)’을 할 노릇입니다. 광주에서 나온 사람이더라도 구슬뽑기를 해서 부산에서 일해야 할 수 있고, 강원도에서 나온 사람이더라도 구슬뽑기에 따라서 인천에서 일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역구 배정’을 구슬뽑기로 돌려야 뒷돈이나 뒷짓을 걷어낼 만합니다.
그리고 ‘선거운동 금지’를 해야 합니다. ‘투표소’ 앞에만 ‘후보자 이름과 얼굴을 적은 종이’를 붙이되, 다른 어느 곳에도 아무런 걸개천을 못 걸어야 합니다. ‘유세 차량 금지’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선거비용 보전’을 안 해야 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자 공약집과 선언문’을 모든 후보한테 똑같은 쪽만큼 잡아놓고서, 이레마다 ‘후보자 공약책’을 찍어서 온나라 모두한테 한 자락씩 돌려야 합니다. 어떤 공약과 선언을 하는지 누구나 낱낱이 알도록 돌려야 하고, ‘대통령·국회의원·군의원 당선자’가 공약과 선언에 따라서 지키는가 안 지키는가 살피는 길을 세울 노릇이며, 공약과 선언을 안 지키면 ‘끌어내리기(탄핵)’를 해야지요. 우리나라는 ‘선거비용 보전’뿐 아니라 엉뚱한 데에 애먼 돈을 너무 많이 쏟아붓습니다. ‘선거비용 보전’만 안 하더라도, 이 돈으로 온나라 사람한테 밑살림돈(기본소득)을 해마다 고르게 펼 수 있습니다.
ㄷ 가끔 이따금 하나둘
‘가끔’과 ‘이따금’뿐 아니라 ‘하나둘’에도 ‘-씩’을 안 붙입니다. 이러한 우리말씨를 제대로 모르는 분이라면, 아무래도 처음에는 어쩐지 낯설거나 힘들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우리말씨가 왜 이러한 얼거리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뜻을 새기고 살피고 짚노라면, 어느새 눈과 손과 입에 익으면서 알맞게 쓸 수 있습니다.
차분히 배우면서 천천히 익히려고 하는 마음이라면, 하루이틀 흐르고 한 달 두 달 지나고 한 해 두 해 이르는 사이에 저절로 몸에 녹아들어요. 말이란, 하루아침에 달달 외우는 굴레가 아니거든요. 말이란, 즐겁게 이 삶을 누리는 동안에 저마다 마음에 싣는 새로운 소리이자 씨앗입니다. 열 살 어린이가 모든 말을 눈부시게 잘 해내야 하지 않습니다. 열 살 어린이는 열 살 어린이만큼 우리말을 하면 넉넉합니다. 다섯 살 아이가 모든 말을 엄청나게 펼쳐야 할까요? 아니지요. 다섯 살 아이는 다섯 살 아이만큼 딱 300∼500 낱말만 아는 얼거리에서 신나게 말꽃을 피우면 즐겁습니다.
말을 말답게 살리는 마음이 얕기에 스스로 얄궂게 쓰고 맙니다. 아니, 말을 말씨(말씨앗)로 알아차리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말을 살리고 말씨를 빛냅니다. 글을 쓸 적에 줄거리를 짜는 데에 마음을 다 쓰느라, 정작 “마음을 담는 말”을 어떻게 새롭게 배우면서 기쁘게 추스르면 스스로 빛나는 글씨를 이룰 만한지 거의 생각조차 못 하기에 ‘얄궂말씨’에 물들거나 길들거나 갇히고 말아요.
글을 왜 써야 할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말은 왜 하는지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말이란 “마음을 담거나 그린 소리”입니다.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만날 적에는 “눈빛으로 다 안다”고 여깁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으레 한몸으로 움직일 줄 알 뿐 아니라,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면서도 마음을 느끼고 읽어요. 이와 달리 바싹 붙더라도 마음을 안 읽으려고 하면, 기나길게 말을 하더라도 닫히거나 막히거나 갇힙니다.
글을 잘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글을 쓸 적에는 “말을 담으려고 하”면 됩니다. 말을 할 적에는 “마음을 나타내려고 하”면 됩니다. 저는 말더듬이에 혀짤배기인 몸으로 태어난 터라, 어릴적부터 늘 말을 더듬고 혀짤배기 소리가 샜습니다. 그런데 저를 동무나 이웃으로 여긴 분은 “더듬거나 새는 소리”에 마음을 기울여서 알아들어 주시더군요. 저를 동무나 이웃으로 안 여기는 분은 제가 “안 더듬고 안 새는 소리”로 말을 하더라도 제가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습니다.
ㄹ 글은 뭘까
글이란 뭘까요? 글힘이 있는 사람이 글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글이란, 스스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 마음 가득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려고 씁니다. 그래서 ‘글씨’입니다. 글씨란 ‘글씨앗’을 줄인 낱말입니다.
말이란 뭘까요? 말재주가 있는 사람이 말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말이란, 스스로 이 삶을 사랑으로 일구면서 이루는 작은사람 누구나 스스럼없이 사랑이라는 씨앗을 흩뿌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씨’예요. 말씨란 ‘말씨앗’을 줄인 낱말입니다.
말을 잘 하려고 하지 맙시다. 글을 잘 쓰려고 하지 말아요. 마음을 나타내고 나누면서 함께 이웃으로 지냅시다. 마음을 그리고 주고받으면서 서로 동무로 지내기로 해요.
우리는 우리 삶에 있는 이야기를 쓰기에 반갑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짓고 일구고 가꾸는 삶이 ‘조그맣든 크든 그저 이 삶’을 스스로 담아내기에 즐겁습니다. 굳이 ‘공모전·문학상’에 뽑힐 만한 글을 꾸미지 말아요. 그저 글을 그리고, 그대로 말을 물빛으로 펼쳐 봐요. 노래하는 말씨로 쓰는 글입니다. 사랑을 말과 글로 담는 사이로 만나는 우리이기에 서로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