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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 김훈 문장 엽서(부록)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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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덧없이 지나간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삶도 덧없거나 부질없을 까닭이 없다. 그냥 흐르는 삶이 아닌, 저마다 다르게 배우는 삶이다. 쓸쓸하게 사라지는 삶이 아닌, 하루하루 새롭게 마주하면서 차분히 익히는 삶이다. 우두커니 지나가지 않는다. 멍하니 잊히지 않는다. 이 삶에는 꽃길과 가시밭길이 나란하다. 이 삶에는 눈물과 웃음이 함께 있다. 《허송세월》을 돌아본다. 2004년이나 1984년에는 ‘아무 글’이나 써도 덧없다고 못 느꼈을까? 예전처럼 술담배를 못 하기에 부질없다고 느끼는가? 어느 말이건 글이건 모름지기 ‘나’를 나로서 바라볼 적에, ‘나’란 누구인지 고스란히 느껴서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 내가 먼저 ‘나’를 안 바라보면서 돈과 이름과 힘이라는 허울에 얽매이기에 헛되구나 싶은 허튼말글로 허수아비 노릇을 오래오래 하게 마련이다. 삶이 덧없다면 붓은 꺾기를 빈다. 아니, 이제는 제발 호미와 낫 좀 쥐기를 빈다. 이 땅에 왜 태어나서 살아가는가 하고 느끼고 싶다면, 날마다 머금는 밥과 바람과 물이 어떻게 온누리를 돌고돌아서 이녁 몸으로 스미는지 배우기를 빈다. 그 나이에 이르도록 흙살림과 풀살림에 다가서려고 아무것도 안 하니 부질없다는 푸념만 늘어놓고 만다. 왜 이 나라 흙사람은 봄을 놓고서 첫봄과 한봄과 늦봄이라 했을까? 왜 여름을 굳이 첫여름과 한여름과 늦여름이라는 이름으로 살폈을까? 글도 책도 집어치워도 된다. 바람을 읽고 흙을 읽고 비를 읽을 줄 안다면, 바람을 쓰고 흙을 쓰고 비를 쓰겠지. 먹물로는 멍을 때리는 글에 갇힐 테지만, 멧숲에 깃들어 머루를 바라볼 수 있다면 ‘머물’다가 내려놓을 몸을 어떻게 건사할 적에 나답고 사람답고 사랑다운 길인 줄 알아차리리라.
《허송세월》(김훈, 나남출판, 2024.6.20.)
ㅍㄹㄴ
내가 살아서 읽은 책 몇 권이 나의 마음과 함께 무無로 돌아가고
→ 내가 살아서 읽은 책 몇이 내 마음과 함께 덧없이 돌아가고
→ 살아서 읽은 책 몇 자락이 마음과 함께 고요로 돌아가고
7쪽
나무들은 꽃 피고 잎 지는 때가 제가끔이어서 숲의 빛과 냄새는 수시로 바뀐다
→ 나무는 꽃피고 잎지는 때가 제가끔이어서 숲빛과 숲냄새는 곧잘 바뀐다
→ 나무는 꽃피고 잎지는 때가 제가끔이어서 숲은 빛과 냄새가 늘 바뀐다
8쪽
나는 와인 두 잔 이상을 마시면 힘들어진다
→ 나는 포도술 두 모금이 넘으면 힘들다
→ 나는 포도술 두 모금부터 힘들다
→ 나는 포도술을 두 입도 못 마신다
12쪽
병이 들어서 의사에게 몸을 맡기게 된 신세의 설움이 복받쳤다
→ 몸이 아파 돌봄이한테 몸을 맡기는 꼴이 서럽다
→ 몸이 아파 돌봄이한테 몸을 맡겨야 하니 복받친다
18쪽
가끔씩 술 마시던 날들의 어수선한 열정과 들뜸이 그립다
→ 술마시며 어수선히 뜨겁고 들뜨던 날이 가끔 그립다
→ 어수선히 들끓고 들뜨며 술마시던 날이 가끔 그립다
20쪽
늙은이들이 너무 많아져서
→ 늙은이가 너무 늘어서
34쪽
여덞 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 여덟 아이를 생각함
28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