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어느 아이 2025.4.24.나무.
어느 곳에나 틈이 있기에 바람이 스며서 기운을 바꿔. 틈이 없이 막거나 가두거나 조이거나 얽으면, 바람조차 못 스미거나 못 드나들면, 이때에는 그만 아무 기운도 빛도 숨도 없이 고이다가 곪는데, 어느새 썩고 터져서 죽어. 틈을 낼 줄 알기에 싹을 틔우고 움을 틔우고 눈을 틔우고, 이내 마음과 생각을 틔워서 하늘이 탁 트인단다. 틈을 낼 줄 모르기에 싹이 안 트고 움이 안 트고 눈이 안 트니까, 내내 마음이 갇혀서 생각이 없으면서 그저 꽉 막힌 채 숨을 거두고 말아. 아이가 어떻게 태어날까? 아이는 서로 숨을 틔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 혼자서는 아이를 깨울 수 없는 몸이야. 아무리 잘나거나 뛰어나거나 훌륭해도 혼자서는 아이를 못 깨우고 못 낳지. 아이를 깨우려면, 다른 모든 솜씨와 재주를 멈추고서, 오로지 사랑이라는 빛과 숨과 기운을 틔울 노릇이야. 사랑은 솜씨가 아니거든. 사랑은 재주가 아니야. 사랑은 이름도 돈도 힘도 아니야. 사랑은 굴레도 재갈도 허물도 껍데기도 몽땅 털어내는 ‘숨길’이자 ‘빛길’이면서 ‘기운’을 일으키는 눈망울이란다. 어느 아이라도 사랑일 적에 태어나. “태어난 아이”는 이미 사랑을 받았어. 자라는 길은 가시밭과 자갈밭일 수 있고, 불수렁이나 갖은 고비일 수 있는데, 이러한 나날이란 ‘삶’이야. 어느 아이라도 ‘사랑받은 몸’에 ‘살아가는 마음’을 담아서, 이제까지 없던 눈길을 틔우는 몫이자 넋이란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자라나며 이 터전을 바꾸지.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아늑하게, 때로는 미움으로, 꾸준히 틈을 내거나 막으면서, 함께 배우고 스스로 익히는 길이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