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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의무 - 정의당 이정미 정치산문집
이정미 지음 / 북노마드 / 2019년 11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4.26.
까칠읽기 66
《정치의 의무》
이정미
북노마드
2019.11.11.
‘젊은순이’가 늘어나야 벼슬판(정치)이 바뀌지 않는다. 똑같이 젊은돌이가 늘어난들 벼슬판이 바로잡히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으로 돌본 아줌마’가 늘어나야 벼슬판이 바뀐다. ‘아이를 돌본 아줌마’ 곁에 ‘아이를 돌본 아저씨’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일을 해야 나라도 벼슬판도 바꿀 수 있다. 나이만 적은 사람이 아무리 늘어난들 새나라로 안 나아간다. 삶은 나이만으로 짓지 않는다. 삶은 오직 사랑으로 가꾸는 살림길로 짓는다. 그런데 보라, 이 나라 벼슬판은 ‘아이를 돌본 적 없는 꼰대 아저씨’만 우글거린다. 이 나라 벼슬판에는 아직 ‘아이를 돌본 아줌마’조차 없다시피 하다.
젊은이란 새롭게 나아가는 사람이기보다는, 새롭게 부딪히며 배우는 사람이다. 아줌마란, 새길을 모조리 부딪히며 하루하루 자빠지고 넘어지고 고꾸라지고 아프다가도 스스로 눈물웃음을 찾아내어 사랑을 일군 어른이다. 이른바 이 나라 벼슬판이 와장창 박살이 난 까닭이라면, ‘어질고 아름다운 아줌마’를 안 품는 탓이라고 해야 할 만하다.
이정미 씨가 쓴 《정치의 의무》를 읽다가 놀란다. 먼저, 이이가 부산에서 태어나서 인천에서 어린날을 보냈다는데, 내가 어린날을 보낸 마을하고 겹친다. 나는 도화동과 송림동과 숭의동과 송학동 언저리를 골목집 하나하나까지 발바닥에 담으면서 살았다. 다만 이 책에는 작은마을 작은집 이야기는 한 줄조차 없구나. 이정미 씨는 골목집에서 살아 본 일이 없을까? 다음으로, 이이는 1984년에 서울 한국외대에 들어갔다가 그만두었다는데, 나는 1994년에 서울 한국외대에 들어갔다가 그만두었다. 이이는 노동운동을 하려고 그만두었다면, 나는 사람답게 일하며 살고 싶어서 그만두었다.
서울에서 그냥그냥 대학교에 들어간 사람은 잘 모를 수 있는데, ‘인천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어서 다닌 일’이란 ‘개천에서 용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요사이는 좀 바뀌었을 만하지만, 2010년 무렵에도 이러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인천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으면 큰고장인데도 걸개천을 붙였다. 우리 아버지도 걸개천을 붙이고 싶어했기에 너무 창피해서 말렸지만, 인천에서 마친 고등학교에서는 붙였기에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268쪽짜리 책인데 빈자리가 너무 많다. 134쪽이나 70쪽으로 낼 만한 작은책을 두세 곱으로 부풀렸다. 바른길(정의당)을 밝힌다는 사람으로서 종이를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되나? 바른길이란 ‘그들’이나 ‘저들’하고 다르게, 푸른길을 헤아리면서 온누리를 고루 알뜰히 품는 삶길이어야 하지 않은가?
남성들은 얘기한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일반화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나는 남성들이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다. 그 불편함 속에서, 그동안 남성 중심적인 이데올로기에 내면화된 여성혐오를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이 불편하다는 태도로는 현재의 젠더위계에 눈을 감아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못 한다. (97쪽)
이정미 씨는 한참 잘못 본다.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가 아니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 때린놈이 때린놈(가해자)이고, 맞은이가 맞은이(피해자)이다. 아직 때리지도 맞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미(잠재적)’라고 붙여서는 안 될 노릇이다. 박정희는 온나라 사람한테 손그림(지문)을 받는 틀을 1962년에 세웠다. 모든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 군사독재 사슬이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른길(정의당)에 서려는 일꾼이라면, 사람을 갈라치기 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로 찍지 않는 눈을 틔울 노릇이다. 일본에 일본한겨레(재일조선인)한테 ‘외국인등록 지문강요’를 오래도록 일삼으며 괴롭혔듯, 이 나라가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며 괴롭히는 짓을 이제라도 멈추고 끝장내는 일부터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
어느 나라이든 돌이만 있으면 망가지고, 순이만 있어도 망가진다. 순이돌이가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일구는 작은살림을 누릴 때라야, 작은집이 작은마을로 잇고, 작은마을이 작은고을과 작은고장으로 뻗어서, 작은나라를 이룬다. 그저 사내라는 몸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넌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야!” 하고 못을 박으면 쌈박질만 일어난다. 거꾸로 “넌 태어날 때부터 눌려야 해!” 하고 바보짓을 해도 쌈박질일 뿐이다. 둘 다 걷어낼 적에 비로소 어깨동무(평등·평화)이다.
갈라치기로는 아무것도 못 바꾸면서, 늘 쌈박질만 불거지고, 이 쌈박질이 더 크다가는 끝내 서로 불(분노)에 휩싸여 다같이 죽는다.
한국 진보정치 1세대는 권영길, 강기갑, 고(故) 노회찬 전 의원, 심상정 의원으로 상징된다. (49쪽)
뭔 소리인가? 우리나라 ‘진보정치 1세대’는 조봉암이지 않은가? 진보정치 2세대는 ‘장준하’이고, 진보정치 3세대는 ‘백기완’이지 않은가? 이처럼 조봉암과 장준하와 백기완이 밑바닥에서 하나하나 몸을 바치다가 조봉암과 장준하는 이승만과 박정희한테 목숨을 빼앗겼고, 백기완이 늘그막까지 애쓴 땀방울이 씨앗이 되어서 권영길·강기갑·노회찬·심상정에 이르는 ‘진보정치 4세대’가 태어났다고 보아야 맞다. 앞선 진보정치 ‘1∼3세대’가 모조리 사내투성이라서 “아주 없던 일”로 지우려는 셈인지, 이 나라 바른길(정의당)을 안 배운 탓인지 그저 아리송하다.
지금까지 인천은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을 한 번도 배출한 적이 없다. 내가 첫 번째 지역구 여성의원이 되려고 한다 … 나는 이곳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정의당 대표 이정미가 지역구 당선으로 재선하는 건 한국정치사에 획을 긋는 일이다. 차세대 진보정치의 초석을 닦는 일이다. (46, 47쪽)
이정미 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순이라는 몸을 입었기에 “한국정치사에 획을 긋는 일”이라든지 “차세대 진보정치의 초석” 같은 허울을 스스로 씌우지 않기를 빈다. 《정치의 의무》에는 이정미 씨 스스로 어떤 바른길을 폈거나 펴려고 하는가 하는 뜻과 꿈과 길이 거의 안 보인다. 또는 아예 안 보인다. 너무 ‘자랑’으로 가득하다.
무엇을 새롭게 하려는지 바라보려는 눈을 찾기가 어렵고, 무엇을 새롭게 하겠노라는 마음을 느끼기가 어렵다. 날선 목소리로 이놈과 저놈을 나무라기만 하는 데에 조그마한 꾸러미를 채우고 마니, 그저 안타깝다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청년들은 광화문이나 서초동에서 과연 자신의 깃발을 찾을 수 있었을까? 국제 학술지 논문으로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과는 무관한 삶을 사는 52퍼센트 비정규직 청년들에게 조국 장관 딸의 입시 문제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청년세대의 가장 큰 좌절은 “진보건 보수건 특권층은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무력감이었다. 그것이 조국 장관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226쪽)
조국 씨는 ‘군대’도 안 나왔다. 이른바 ‘여섯 달짜리 석사장교’라는 떡고물을 날름 받아서 마치 ‘군복무’라도 했다는 듯이 감투를 얻었다. 조국 같은 사람은 그냥 ‘특권층’이다. 누가 ‘여섯 달짜리 석사장교’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몰래 마련해서 몰래 몇몇 ‘특권층’한테 베풀고는 몰래 없앤 ‘여섯 달짜리 석사장교’를 날름 받아먹은 사람한테 ‘진보’라는 허울을 입히려 한다면, 이 나라에는 그야말로 진보가 없는 셈이다.
바른길(정의당)이 왜 무너졌는지 뼛속 깊이 뉘우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바른길은 뿌리를 못 내린다. 바른길이 그야말로 바르게 서려면, 서울에서 나가야 한다. 인천과 부산에서도 나가야 한다. 시골로 가야 한다. 전라남도 시골과 경상북도 시골과 강원도 시골과 충청북도 시골로 갈 노릇이다. 시골에서 먼저 ‘군의원’부터 맡을 노릇이다. 시골 아줌마를 일으켜세워서 시골 아줌마가 ‘흙살림을 하던 손’으로 시골 군의회부터 바르게 갈아엎는 밑동을 닦을 노릇이다.
먼저 시골 군의회부터 갈아엎은 뒤에, 서울과 부산과 인천에서 ‘아줌마 구의원’이 태어나도록 힘쓸 노릇이다. 국회의원이라는 떡밥은 잊기를 빈다. 먼저 군의원과 구의원부터 온나라 곳곳에서 천천히 다스리는 길을 펼 노릇인데, 가장 낮은 곳인 시골부터 헤아리지 않는 곳(대도시)에서는 아무런 바른길(정의당)이건 참길(진보)이건 싹트지 않는다.
누구보다 바른길과 참길이 서울과 큰고장을 몽땅 떠나서 시골에서 새길을 열려고 소매를 걷어붙일 때라야 이 나라가 바르고 참다우면서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본다. 이정미 씨, 제발 서울과 인천에서 떠나십시다. 아니면 인천에서 구의원부터 하시기를 빈다. 적어도 아파트밭인 인천 연수구부터 떠나서 인천 동구 골목마을 작은집에 달삯으로 들어가서 ‘동구 구의원’부터 하시기 바란다. 모든 바른길은 밑바닥부터 튼튼해야 할 노릇인데, 밑바닥이 없이 무슨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겠습니까?
모든 ‘바름·참(진보·정의)’은 목소리가 아닌 손바닥과 발바닥이다. 손바닥으로 일을 하고, 발바닥으로 마을을 두루 걸을 때라야 바르고 참답다. 이정미 씨가 낸 《정치의 의무》(2019)도 《정치하는 마음》(2021)도, ‘자랑’에서 맴돌다가 그친다. 부디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작은마을에서 작은일을 하는 땀방울을 천천히 글로 남긴 뒤에 책을 내시기를 빈다.
ㅍㄹㄴ
《정치의 의무》(이정미, 북노마드, 2019)
모든 게 술술 풀린다고
→ 모두 술술 풀린다고
23쪽
서울에 올라와
→ 서울에 와서
→ 서울로 와
24쪽
행복과 정치의 물음에 답을 준 사람은 언니였다
→ 즐겁게 다스리는 길을 알려준 사람은 언니이다
→ 즐겁게 일구는 길을 언니가 알려주었다
27쪽
독배를 마시는 걸 많이 보아왔다
→ 고약한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 추레한 짓을 으레 보아왔다
34쪽
그다음의 정의당, 또 그다음의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고 준비하고 있다
→ 그다음 바른길, 또 그다음 더 나은 새길을 바라고 추스른다
41쪽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을 뚫고 나온 사람으로
→ 우리나라 윗굴레를 뚫고 나온 사람으로
→ 우리 삶터 하얀담을 뚫고 나온 사람으로
42쪽
경제라는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사자성어를 줄인 말이다
→ 살림이란 말은 살리며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261쪽
국가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요
→ 나라는 왜 있는가요
→ 나라는 뭘 하는가요
→ 무엇을 하는 나라인가요
26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