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22. 되읽기 새로읽기 다시읽기



  2025년을 살지만, 언제나 2015년과 2005년과 1995년과 1985년과 1975년까지 아우르면서 나란히 놓고서 살핀다. 이른바 ‘떠올림(복고·추억·회상)’이지는 않다. 언제나 ‘새로보기·새로읽기·새로익힘·새로잇기’를 하려는 뜻이다. 지난날에 스스로 얼마나 어리석거나 멍청하거나 바보스러웠는지 열 해를 하나치로 끊으며 돌아보고는, 오늘날에 이르도록 무엇을 어떻게 왜 누구하고 어디에서 배우고 익히고 가다듬고 추스르면서 새하루를 살아내려 하는지 생각해 본다.


  그냥 본다면 ‘되읽기’이다. 되풀이하듯 읽는 셈이다. 곰곰이 본다면 ‘새로읽기’이다. 나는 여태 ‘똑같은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그냥 보면 ‘똑같은 책’이라지만, 늘 ‘오늘 처음 만나는 책’으로 바라보면서 펼친다. 오늘 아침에 다 읽은 책을 낮이나 저녁에 다시 들춘다고 할 적에도 ‘낮이나 저녁에 처음으로 만나서 처음으로 읽는 책’으로 삼는다.


  알아보려 하지 않는 눈으로 쳐다보면, 나는 그야말로 ‘다시읽기’를 하는 엉성한 매무새이다. 그런데 참말로 엉성하니까 다시읽기를 하고, 엉성한 대목을 늘 새삼스레 짚고 살피고 가다듬으려고 다시읽기를 한다. 나는 어릴적부터 말더듬이에 혀짤배기에 고삭부리로 끝없이 시달리고 놀림받고 얻어맞고 앓아눕고 돈을 빼앗기고 손가락질까지 받으며 자랐다. 지난날에는, 말더듬는 나를 놀리고 때리고 괴롭히는 길잡이(교사)와 또래를 지켜보면서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왜 힘없고 여리고 모자라고 엉성한 작은사람을 괴롭히고 때리고 손가락질할까? 이 사람들은 힘있고 튼튼하고 잘 알고 빈틈없는 큰사람이라면서, 큰사람이 어떻게 왜 작은사람인 아이를 마구 밟고 걷어차고 두들겨팰 수 있을까?”


  아이를 때리는 사람은 ‘어른’일 수 없다. 또래를 괴롭히는 사람은 ‘동무’나 ‘이웃’일 수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를 때리고 괴롭히는 이들이 ‘나 아닌 다른 사람한테는 상냥하고 나긋나긋하고 웃고 노래하고 잘하는’ 모습을 익히 지켜보았다. 그들이 ‘나를 괴롭혔’기에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여긴 적은 아예 없다. 그들이 나이건 다른 사람이건, 누구한테나 고르게 나란히 두루 사랑으로 마주할 때에만 비로소 그들은 ‘사람’이라는 이름이 걸맞다고만 여겼다.


  누가 모자라거나 잘못하거나 틀렸다면, 똑똑히 또박또박 반듯하게 올바로 제대로 하나하나 짚고 살피고 알려주고 가르치면 된다. 그런데 모자라거나 잘못하거나 틀린 사람은, 누가 아주 부드럽거나 상냥하게 짚더라도 벌컥벌컥 골을 내고 부아를 내게 마련이더라. 부끄럽거나 창피하다고 여기더라. 맞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그런데 부끄럼이나 창피는 우리 삶에서 아주 짧게 지나간다. 부끄럼을 받아들이면 어느새 부끄럼은 사라진다. 창피를 기꺼이 품으면 창피는 우리 스스로 사랑으로 피어날 밑거름으로 스민다.


  굳이 권정생 할아버지 《강아지똥》을 들지 않아도 된다만, 애써 이야기를 보태고자 한다. 어린 민들레싹은 강아지똥을 거름으로 삼아서 받아들이고 따갑게 내린다고 여기는 비에 온몸을 맡겼기에, 어느새 꽃대를 올려서 소담스레 노랗게 물결치는 아름꽃을 피워냈고, 이윽고 잠들면서 하얀 씨공을 이루더니, 눈물과 웃음이 나란히 어우러진 새길로 나아갔다.


  되읽기에 되새긴다. 새로읽기를 하기에 새로 일어선다. 다시읽기를 품기에 다시서기에 다시짓기에 다시살기라는 하루를 스스로 맞이한다.


  우리는 ‘잘’ 읽을 까닭이 없다. 우리는 ‘좋은책(베스트셀러·추천도서·명작도서·고전)’을 읽거나 읽힐 까닭조차 없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 되고, 되읽기와 새로읽기와 다시읽기라는 매무새로 다가서면 된다. 우리는 ‘살림책·사랑책·삶책·푸른책·숲책·풀꽃책·바람책·하늘책·별빛책·이야기책’을 읽으면 즐겁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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