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모두 돌아가는 저녁에 (2024.12.21.)

― 부산 〈파도책방〉



  보수동책골목 책집지기가 하나둘 가게를 닫고서 들어갈 저녁입니다. 모두 닫으려나 싶어 두리번두리번하는데, 마침 〈파도책방〉은 아직 안 닫습니다. 고맙게 깃들어 얼른 책을 살핍니다. 오늘은 또 책을 얼마나 더 사읽어야 속을 채울 수 있나 모를 노릇입니다만, 아무리 잔뜩 사읽고 다시 사읽고 새로 사읽어도 속을 채울 길은 없다고 느껴요.


  이제 그만 사읽으면 되려나 하고 밤마다 곱씹습니다. 여태 장만한 책을 처음부터 하나씩 되읽기만 해도 넉넉하지 않느냐고 꿈자리에서 스스로 되묻습니다. 이러다가 아직 모르는 책이 끝없다고 떠올리고, 이미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이웃손길’을 거친 책으로 마주하면 늘 새로운 책이기도 하다고 되새깁니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서 앙상나무를 마주합니다. 겨울이 저물면 봄이 오면서 봄나무를 반깁니다. 봄이 떠나면서 여름나무에 짙푸른 잎빛을 만나고, 여름이 가면서 가을나무에 무지개처럼 물드는 빛살을 헤아립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같아요. 늘 ‘새로읽기’하고 ‘다시읽기’ 사이를 오갑니다. 날씨도 철도 하루도 모두 새롭습니다. 똑같은 1월 1일은 없고, 나란한 12월 31일도 없습니다. 같은 책을 되읽을 적마다 늘 새롭게 느끼고 배웁니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이 이야기할 적에도 다 다른 느낌과 마음을 듣고서 배웁니다.


  책을 읽는 틈을 낸다면, 스스로 속(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루를 쓴다는 뜻입니다. 글을 쓰는 짬을 낸다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스스로 속빛을 이웃하고 나누려고 마음을 쓴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과 오늘까지 걸어온 날을 되새기면서 읽고 씁니다. 책도 읽지만 하늘도 읽고, 글도 쓰지만 생각도 씁니다.


  책을 읽는 틈을 내는 오늘을 보낼 적에는 스스로 속(마음)부터 차리면서 새롭게 꿈을 그리는 씨앗을 살며시 심는 몸짓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글을 쓰는 짬을 내는 하루를 누릴 적에는 스스로 눈빛을 밝히면서 새록새록 사랑씨를 둘레에 흩는 매무새를 노래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한 해 끝자락에 저마다 마음을 돌아볼 책 한 자락을 그리면서 책집마실을 다닐 분이 늘어나면 기쁘지요. 즐겁게 노는 마음이라면, 어느 날 문득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큼 나아갑니다. 꿈같은 모습이 언제나 우리 곁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면서 서로 두런두런 지내기를 바랍니다. 다시금 책집마실을 하고, 더 묵직하게 등짐을 지고, 터덜터덜 길손집으로 갑니다. 책집마실은 보금자리를 떠나 먼먼 이웃고을에서 하니, 수북수북 책더미를 길손집에서 하나하나 풀며 읽다 보면 어느덧 동이 틉니다.


ㅍㄹㄴ


《한 스푼의 시간》(구병모, 위즈덤하우스, 2016.9.5.첫/2021.10.20.21벌)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와타나베 준이치/정세영 옮김, 다산초당, 2018.4.10.첫/2018.4.23.2벌)

#渡邊淳一 #鈍感力

《시골기행》(강신재, 갤리온, 2010.10.15.)

《꼬마 니콜라》(르네 고시니/이재형 옮김, 문예출판사, 1987.12.20.첫/1993.12.30.9벌)

《돼지책》(앤서니 브라운/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 2001.10.15.첫/2013.5.24.84벌)

#Piggybook #AnthonyBrowne

《La Mare au Diable》(George Sand, Librairie Hachette, 1935.)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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