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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30.
까칠읽기 63
《진보 집권 플랜》
오연호·조국
오마이북
2010.11.5.
‘진보·보수’와 ‘좌파·우파’라는 이름을 서로 삿대질을 하는 자리에 비아냥처럼 쓰는 요즈음 《진보 집권 플랜》을 읽어 보았다. 첫머리부터 깜짝 놀란다. ‘진보’라는 목소리를 낸다는 두 분이 처음부터 ‘잘생긴’ 얼굴과 ‘큰키’에다가 ‘섹시’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교수님을 보면 질투가 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직업 좋지, 글 잘 쓰지, 키 크지, 잘생겼지, 게다가 진보적이기까지 하잖아요. (웃음)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르는 누리꾼들이 이해찬 전 총리를 일컬어 ‘사상이 섹시한 남자’라고 했는데, 교수님도 비슷하십니다. (19쪽)
이래도 될까? 아니, 이래도 ‘새길(진보)’인가? 겉모습과 ‘돈 잘 버는 일자리’와 ‘글솜씨’를 추켜세우는 사람이라면 새길일 수 없다. 지키는(보수) 무리도 이런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을 텐데, 낯간지러울 뿐 아니라 창피하다.
그런데 당시 저는 일제강점기의 제암리학살사건은 실감이 잘 나지 않았어요. 단지 국사 교과서 한 쪽에 나오는 조그만 사건 정도로만 인식했던 것 같아요. (35쪽)
더 창피한 대목은 곳곳에 있는데, 이 가운데 ‘제암리학살’을 살갗으로 못 느꼈다는 대목에서 혀를 내두른다. 조그마한 시골 절집에 사람들을 잔뜩 가두고서 총을 쏘아대고 불을 질러서 모조리 떼죽음으로 내몬 일을 어떻게 “실감이 잘 나지 않았어요” 하고 밝힐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법학자’라는 길을 걷는지 아리송하다.
무상급식 같은 화두를 자꾸 개발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그 문제의식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66쪽)
‘무상급식’이 올바르거나 알맞은 길일까? ‘학교밖 아이들’한테는 그림떡인 무상급식이다. 더구나 모든 아이는 입맛이 다르고 못 먹는 밥이 많으며, 김치와 매운맛 탓에 속앓이를 하기도 한다. 아무리 모둠밥 차림새를 잘 짜더라도, 아이들이 손수 도시락을 싸는 밥살림보다 나을 수 없다. ‘무상급식’이 아닌 모든 아이가 손수 도시락을 쌀 밑돈을 댈 노릇이고, 도시락을 쌀 수 있도록 초중고등학교 배움틀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입시지옥’ 탓에 짬이 없다는 말은 핑계이다. 배움불굿 탓에 정작 배움길은 등진 채 밥만 먹이면 된다는 길이란, 조금도 새길로 삼기 어렵다.
헨리 조지가 쓴 《진보와 빈곤》을 최근 읽었는데, “최고의 능률은 정의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91쪽)
모든 책을 제때 읽어야 하지는 않다만, ‘헨리 조지’ 님이 쓴 책을 이제서야 읽고서 자랑처럼 말하니 낯간지럽다. 그런데 ‘헨리 조지’ 님이 ‘바른길(정의)’도 말하기는 했을 테지만, “누구나 손수 지을 땅을 고르게 누리는 바른길”을 말했을 텐데, 책을 잘못 읽지 않았는지 아리송하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저는 ‘서울대 폐지론’이 아니라 ‘서울대 분할론’을 고민하는 것이 타당하고, 또 실현도 쉬울 거라고 봅니다. (161쪽)
서울대는 옮기면 된다. 서울대는 전남 장흥쯤으로 옮기고, 연세대는 경북 영양쯤으로 옮기고, 고려대는 강원 태백쯤으로 옮기고, 이화여대는 충북 옥천쯤으로 옮길 만하다. 비좁은 서울에 너무 커다란 대학교는 골골샅샅 흩뜨릴 노릇이다. 이러면서 대학교가 있던 자리는 ‘부산 시민소리숲’처럼 ‘서울 책숲’으로 바꿀 만하다. ‘쉼터(공원) + 책숲(도서관)’으로 바꾸자는 목소리쯤 내어야 비로소 새길이요 왼길이지 않을까? 서울대를 없애지 못 하겠다면, 서울대를 시골로 옮기자는 목소리를 낼 뿐 아니라, 몸소 앞장서서 틀을 짤 줄 알아야 비로소 새길이라 할 수 있다.
천안함의 경우도 북한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죠.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이명박 정권의 대응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185쪽)
북녘을 떠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북녘에서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는 가난한 사람이 숱하다. 그러나 북녘사람을 한겨레로 여기는지 아닌지 아리송하다. 또한 북녘 우두머리가 저지르는 얄궂은 총싸움 탓에 남녘도 북녘도 앓는다. 그런데 새길과 왼길을 말하는 이 가운데 “시달리고 가난해서 북녘을 떠난 한겨레”는 거의 입에 안 담고, 북녘이 쏘아대는 허튼 총질을 놓고도 입을 다문다. 잘못은 그저 잘못이니,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맞지 않은가.
저는 대학 다닐 때 나경원이 정치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두환의 철권통치가 이루어지던 1980년대 전반기, 그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드러내지 않으며 모범생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저와는 생각이 다른 친구였지만 노트 필기를 잘했기 때문에 그 노트를 빌려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 앞으로 나경원이 보수정치인으로 더 커가려면 ‘얼짱 경원’이 아니라 콘텐츠와 일관성을 갖춘 ‘주어 있는 경원’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291∼292쪽)
나경원 씨한테서 ‘노트 필기’를 빌렸다면, 스스로 안 배우거나 게을렀다는 뜻이지 않나. ‘노트 필기’를 스스럼없이 빌려준 사람을 ‘모범생’이라면서 깎아내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경원 씨가 벼슬길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 모르겠으나, ‘얼짱’이라느니 ‘모범생’이라느니 깎아내리는 마음이란, 새길하고 멀어도 한참 멀다. “나와는 생각이 다른 친구”라고 한다면, “다른 생각”을 넉넉히 살피면서 더 이야기를 해야 할 사이라고 해야 한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준비 부족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대통령이 되었죠. (313쪽)
여태껏 ‘준비 부족’이 아닌 나라지기는 없다. 누구나 빈틈없이 살펴서 일을 해내지 못 한다. 아무리 빈틈없이 살피더라도 모든 일은 갑작스레 바뀌게 마련이다. 이때에 곁에서 얼마나 도와서 함께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느냐를 보아야 하는데, 노무현 한 사람만 탓하기에는, 이녁이 몸담은 두레(정당)가 거의 일을 못 하거나 안 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자리(장관 및 여러 높은벼슬)만 노리는 두레가 아닌, 궂은일을 맡아서 나눌 줄 아는 두레가 아니었기에 “실패한 대통령”이 쏟아지는 우리나라라고 느낀다.
《진보 집권 플랜》을 죽 읽는 내내 ‘알맹이’를 찾기 어려웠다. “속 빈 강정” 같다. 새길이라는 목소리는 높이되, 언제나 서울 한복판에 스스로 갇혀서 ‘서울밖’은 아예 모르고 안 볼 뿐 아니라, “서울을 뺀 아주 넓다란 우리나라를 두루” 바라보거나 살피는 눈이 없구나 싶다.
서울대학교라면 전남 장흥이나 보성쯤으로 옮기면, 이 나라가 참으로 아름답게 바뀔 수 있다고 느낀다. 연세대와 고려대라면 경남 함양이나 고령쯤으로 옮기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나라로 거듭나리라 본다. 서울은 1/10이 아닌 1/100로 나누어도 너무 크다. 잘 생각해 보자. 미국에서 흰집(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날마다 ‘기자회견’을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푸른집(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러 해 가운데 ‘기자회견’을 몇 판이나 했을까? 기자회견을 열 판이나마 한 대통령이 있는가?
기자회견조차 안 하는 채 푸른집에 스스로 갇히는 대통령만 잇달은 우리나라를 보노라면, 푸른집도 서울을 떠나야 맞다. 경북 김천이나 전북 무주쯤으로, 또는 충북 보은쯤으로 푸른집을 옮길 만하리라 본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할 적에 ‘인 서울 기자’들이 제발 좀 서울을 벗어나서 “서울밖 우리나라”를 조금이라도 둘러보고 느끼기를 바란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죄다 서울에 틀어박혀서 광화문 앞에만 모이느라, 막상 온나라가 어떤 얼거리로 숨막히거나 뒤틀리는지 하나도 모르는 듯싶다.
새길(진보)이라면 새길을 찾도록 서울을 떠나기를 빈다. 지킴길(보수)라면 제대로 나라를 지키도록 온나라 시골로 옮기기를 빈다. 둘 다 서울을 떠나야 서울도 나라도 온나라도 살아나리라 본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