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이다음으로 2025.3.14.쇠.
꽃으로 피지 않고서 맺는 열매란 없어. 씨앗을 품지 않는 열매도 없어. 꽃과 잎이 살찌우고, 가지와 줄기가 북돋우고, 뿌리가 받치면서 곱게 영그는 열매야. 꽃은 스스럼없이 피어나고서 기꺼이 져. 씨앗은 열매 한켠에 알맞게 자리를 잡지. 이다음으로 땅에 드리워서 자라려면, 땅한테도 고맙다고 여쭈려고 달며 푸진 물빛(속살)을 품는 씨앗이야. 땅은 나무와 풀을 반기면서 언제나 까무잡잡 구수하게 살림터를 이뤄. 나무와 풀은 즐겁게 땅에 깃들면서 푸릇푸릇 싱그럽게 살림빛을 맺어. 사람은 속으로 무슨 씨를 품을까? 사람은 이다음으로 무엇을 할 셈일까? ‘씨앗’이란, 아기를 낳는 몸빛만 가리키지 않아. 씨앗이란, 손으로 일구는 솜씨에, 마음으로 담는 마음씨가 늘 어울린단다. 오늘을 살면서 이다음으로 내딛을 길을 헤아리렴. 오늘을 마무리하는 밤에 스스로 “고마워.” 하고 속삭이며 눈을 감으렴. 오늘을 여는 새벽에 스스로 “반가워.” 하고 속살이며 눈을 뜨렴. 이다음으로 할 일이 잔뜩 있지? 아무리 많구나 싶은 일이어도 한꺼번에 못 해치워. 다 하나하나 하지. 아무리 실컷 먹더라도 하나하나 집어서 따로따로 먹는단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 할 만큼 즐겁게 하고서 닫으렴. 폭 닫고서 푹 쉬고, 활짝 열고서 환하게 하렴. 미처 매듭을 못 지었으니 이제부터 매듭을 지어. 아직 덜익었으니 이제부터 찬찬히 익어. 오늘은 어제와 모레를 이으면서, 이다음을 기쁘게 맞이하려는 길목이야. 길목 한복판에서 온곳을 둘러봐.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