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3.16.
《제비심장》
김숨 글, 문학과지성사, 2021.9.23.
아침글을 여미며 촛불보기를 한다. 10:00부터 〈책과 아이들〉에서 ‘바보눈 11걸음’을 편다. ‘바보 = 밥벌레’인 말밑이다. 아직 철이 덜 들었기에 ‘밥만 먹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름이고, 철이 덜 들었어도 ‘애벌레’처럼 귀엽게 돌아보면서 느긋이 기다려 주는 마음으로 붙인 오랜 우리말인 ‘바보·밥벌레’일 텐데, 오늘날에는 영 엉뚱하게 쓰기 일쑤이다. 12:00부터는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이라는 낱말책을 놓고서 조촐히 책잔치를 꾸린다. 말에는 늘 마음을 담게 마련이라, 우리가 늘 쓰는 가장 수수하고 흔한 낱말부터 제대로 잇고 익힐 적에 서로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마주한다는 뜻을 풀어놓는다. ‘좋은말’을 가려쓰려 하면 ‘좁은말’에 갇힌다. ‘삶말’을 드러내고 ‘살림말’로 가꾸어서 ‘사랑말’을 그릴 적에 ‘숲말’이 깨어난다. 《제비심장》을 읽는 동안 목소리가 몹시 아쉬웠다.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다 보니 줄거리가 줄어들고, 이야기를 잃더라. 굳이 목소리를 앞세우면서 안 엮더라도, 그저 배 곁에서 온몸과 맨손으로 일하는 작은이웃 삶을 그저 담는다면, 또 날마다 밥하고 빨래하고 살림하는 하루를 옮긴다면, 걸어서 집과 일터를 오가는 길을 그린다면, 저절로 글꽃(문학)이 된다.
요즈음 ‘한국 현대문학’을 보면 ‘삶·살림’이 안 보인다. 밥하는 얘기도 없고, 밥하는 삶도 없다. 빨래하는 얘기도 없고, 빨래하는 삶도 없다. 아이를 낳았다지만 정작 아이하고 보내는 하루가 아닌,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이나 유치원이나 학교에 맡길 뿐이라, 정작 어버이와 아이가 사랑을 나누면서 살림하는 보금자리 이야기조차 안 보인다. 게다가 다들 자가용을 몰기만 할 뿐이나, 집과 일터와 배움터 사이를 오가면서 마주하는 마을이 어떤 삶인지 적을 수조차 없다. 본 바도 겪은 바도 살은 바도 없으니 글로 못 담을 테지.
억지로 문학을 만들기에 오히려 한국문학은 벼랑끝이라고 본다. 노벨문학상이며 여러 문학상을 받는다지만, 한국문학을 일구는 분들 스스로 삶자리하고 너무 멀다고 느낀다. 글과 책에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야 하는데, 삶을 안 쓰고 ‘삶 비슷한 모습’만 옮긴다고 느낀다.
생각해 보자. ‘성추행 늙은이 고은’이 집안일을 해본 적 있겠는가. 삶을 짓는 이웃인 ‘민중·백성’과 어깨동무하는 글을 쓰려면, 날마다 어떻게 밥을 해먹고, 어떻게 저잣마실을 하고, 어떻게 걸어다니고, 어떻게 지옥철이나 출퇴근시간에 시달리고, 어떻게 지치고 고되면서도, 어떻게 꿈을 마음에 심는지 적어야 비로소 문학이지 않은가. 목소리만 담을 적에는 ‘문학’이 아닌 ‘목소리’일 뿐이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