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3.15.


《유한양행, 미스 고》

 고성순 글, 부크크, 2024.8.1.



찬비 내리는 이른아침에 옆마을로 걷자니 손발가락이 다 언다. 맨발고무신에 깡똥바지차림이다. 오늘 등짐은 길을 나설 적부터 묵직하기에 가볍게 입는다. 옆마을로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찬비’라는 이름을 붙인 노래를 한 자락 쓴다. 누구나 스스로 모든 삶을 고스란히 옮기면 ‘글’로 피어난다. 09:10에 떠나는 부산버스를 고흥읍에서 한참 기다리며 노래를 몇 더 쓴다. 부산에서는 시내버스로 갈아타서 보수동으로 간다. 비를 반갑게 맞으면서 걷는다. 〈대영서점〉에 들러서 책을 읽고 산다. 부산나루 건너에 있다는 〈창비부산〉에 처음 가 본다. 《혼란 기쁨》이라는 책을 놓고서 조촐히 책모임이 있는데 소리막이(방음)가 하나도 안 되네. ‘창비’가 돈 없는 곳도 아니고, 참 알쏭하다. 저물녘에 〈카프카의 밤〉으로 건너가서 ‘이오덕·윤이상’ 두 분이 ‘부산’에서 만난 퍽 오래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다른 고장도 비슷하지만, 부산은 부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줄 모른다.


《유한양행, 미스 고》를 부천 마을책집 〈용서점〉에서 장만했다. 글을 쓴 고성순 님은 할머니라고 한다. 젊은날 일하던 발자취를 가만가만 더듬어서 남겼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어머니가 젊은날 일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글결은 투박하되 삶결이 반짝인다. 온나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렇게 이녁 삶을 손수 아로새기면 저절로 글꽃(문학·소설·시·수필)이다. 꼭 보람(문학상·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하지 않는다. 꽃보람을 받는 책도 읽을 만할 텐데, 꽃보람 어귀에 얼씬조차 않는 이렇게 수수한 들꽃 같은 책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저마다 꽃이다. 누구나 나무이다. 함께 숲이다. 저마다 씨앗이다. 누구나 열매를 맺는다. 함께 온누리를 이룬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