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삶꽃
수다꽃, 내멋대로 63 한국말 잘하네
2025년 3월 15일, 부산나루 건너에 있는 〈창비부산〉에서 《혼란 기쁨》이라는 책을 놓고서 두런두런 마음을 나누는 책모임이 있다. 이날 마침 부산에 일을 하러 간 터라, 더욱이 부산 사상나루에 내려서 만나는 이웃님이 보수동에 있기에 시내버스를 타고서 사뿐히 찾아갔다.
이날까지 까맣게 잊었는데,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김비, 삼인, 2011)를 진작에 읽었고, 2012년 1월 5일에 느낌글을 쓰기도 했다. 어느새 열 몇 해 지난 묵은글인 터라 잔뜩 손질하고 뜯어고쳐야 할 텐데, 김비 님은 ‘어지럽’거나 ‘힘든’ 일이 없이 여태 살아냈다고 느낀다. ‘어지러운’ 사람은 김비가 아닌 “김비를 보는 남”일 뿐이고, ‘힘든’ 사람도 김비가 아닌 “김비를 보며 쫑알거리는 남”일 뿐이다.
처음 들어서는 〈창비부산〉이라서 예가 맞나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들어갔고, 책모임 자리에 가려면 뒷간에 갈 수 없으니 기다려서 뒷간에 들른다. 이러느라 책모임 자리에는 좀 늦게 닿는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내 글꾸러미(수첩)를 하나씩 꺼내고서 숨을 돌리는데, 이 자리에 앉은 분마다 ‘나말하기(자기소개)’를 한다. 아직 숨도 덜 돌렸으나 벌써 ‘나말하기’를 해야 한다. “국어사전을 쓰는 사람”이라고 밝히면서, “오늘 부산에서 이오덕읽기모임을 꾸리려고 왔다”가 이 책모임이 있는 줄 듣고서, 마침 때와 곳이 맞아서 이야기를 들으며 쉬려고 찾아왔다고 짧게 말한다.
그런데 나랑 마주보는 앞에 있는 어느 분이 “한국말 잘하네?” 하고 한마디 불쑥 한다. 이러면서 이 자리에 앉은 분들이 다들 하하하 웃는다.
다만, 나는 어릴적부터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하고 묻는 말을 들었다. 어린이일 적에도, 그러니까 예닐곱 살이나 여덟아홉 살일 적에도, 열 살이나 열세 살일 적에도, 열너덧 살이나 열예닐곱 살에도, 스무 살에도, 스물두어 살에도, 스물다섯 살이나 서른 살에도, 서른다섯 살이나 마흔 살에도, 마흔다섯 살이나 쉰 살에도 으레 듣는다. 벌써 마흔 해 넘게 들은 말이라서 시큰둥하고 대수롭지 않다. 곰곰이 손가락을 헤아리니, “한국말 잘하네?”나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하고 묻는 말을 즈믄(1000) 넘게 들었다.
그렇지만 마흔 살에 이를 즈음까지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한국인 맞아? 외국인이 왜 이렇게 한국말을 잘해?” 같은 그야말로 알쏭달쏭하고 엉뚱하고 뜬금없고 어처구니없는 핀잔인지 추킴말인지 비아냥인지 궁금(순수한 의도)인지, 그야말로 “너 한국사람이야?” 하고 따지듯이 송곳으로 후벼파는 이런 말을 그저 흘러넘기지 못 했다. 큰아이가 제법 자란 열 살 즈음에 “우리 아버지 괴롭히지 마요!” 하고 갑자기 외치는 말을 듣고서 번쩍 눈을 떴다.
그래, 나는 누가 나더러 “한국말 잘하네?”나 “한국말 할 줄 아네?” 하고 내 얼굴과 몸을 위부터 밑까지 훑어보면서 불쑥 뱉는 말에 늘 괴로웠나 보더라. 큰아이가 외친 말은 그때에 나를 깨웠고, 우리나라 ‘진보좌파’조차도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줄, “성소수자 인권을 지키고 돕자”고 외치는 이들조차도 ‘마음’이 없는 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나 말을 하는데, 나는 우리말(한국말)을 못 한다. 나는 우리말을 못 하는 몸으로 태어났기에 어릴적부터 핀잔과 손가락질과 따돌림에다가 매질까지 받았다. 그래서 나는 “죽기살기로 살아남으려”고 ‘우리말(한국말)’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해내려고 용을 썼다. 열세 살까지 “모든 날마다 한두 시간쯤 맞으면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죽기(자살)를 안 하면서 살아남았겠는가.
나는 우리말을 못 하니까, 늘 우리말을 배운다. 우리말을 못 하는 사람이니까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쓴다. 우리말을 못 하는 줄 알기 때문에, 날마다 모든 낱말을 다시 처음부터 뒤적이고 찾아보고 생각하면서 쓴다. 나는 우리말을 못 하는 사람이기에 새벽 1∼2시 무렵에 하루를 열면서 모든 말소리를 처음부터 가다듬고 제대로 내려고 해본다.
나는 우리말을 못 하니까, 언제나 우리말을 다시 익히고 새로 가다듬는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언제나 꼬치꼬치 짚고 돌아보면서 고치고 손질하고 바로잡는다. 나는 어릴적부터 고삭부리라서 숨을 거의 못 쉬었다. 이른바 코머거리라서, 코로 숨을 아예 못 쉬다시피 했다. 나로서는 굶기가 오히려 쉽고, 숨쉬기가 가장 힘들었다. 마흔 살까지 숨쉬기가 괴로워서 늘 숨막힌 몸으로 살았고, 마흔 살에 ‘숨쉬기’를 비로소 배웠기에, 코머거리를 하루아침에 털어냈다.
내가 튼튼몸으로 태어났다면, 아마 다른 일을 했을 수 있지만, 내가 튼튼몸으로 안 태어났기에, 나는 나부터 들여다보고서 사랑해야 하는 길을 걸었다. 늘 주저앉고, 늘 놀림받고 따돌림받고 괴롭고 아파야 한 어릴적을 보냈고, 숨을 못 쉬어서 숨막혀 죽는 몸을 버티어내야 했기에, 혀가 짧고 말을 더듬느라 마음을 제대로 말로 못 담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기에, “우리나라에서 한국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말소리를 쉽게 못 내는 모든 이웃을 헤아리는 국어사전 쓰기”라는 일을 스스로 맡고 찾아서 짓는다고 느낀다.
나더러 어떻게 글을 그렇게 잔뜩 쓰느냐고, 안 지치느냐고 묻는 이웃님이 많다만, 나는 글을 입으로 쓴다. 나는 ‘말더듬이’인 내 몸을 스스로 갈아엎고 싶어서 늘 “말을 하면서 글을 쓴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나는 내 말소리를 가다듬고 추스르려고 글을 쓰는 셈이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내가 말을 하는 그대로”이다.
그래서 내 글쓰기를 잘 모르는 분은 “어쩜 최종규 씨는 책에 적힌 글하고, 입으로 하는 말이 똑같네요! 다른 작가님은 글과 말이 다르던데요!” 하고 놀라더라.
놀랄 수 있지만, 놀랄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소리를 낼 수 있는 낱말만 골라서 글을 쓴다. 나는 내가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소리만 가려서 글을 쓴다. 나는 1992년에 첫글을 쓰던 그날부터 오늘 2025년에 이르기까지, 늘 말하면서 글로 옮긴다. 아니, 나는 내가 입으로 하는 말을, 나 스스로 내 손을 써서 옮겨적을 뿐이다. 나는 내 글과 내 말이 다를 수 없고, 내 말이란 내 삶이고, 내 살림이자 내 사랑이다. 그리고 내 글이란 내 숲이다.
김비 님이 쓴 《혼란 기쁨》이라는 책을 놓고서 즐겁게 도란도란 책모임을 하려고 모인 분이라면, 어느 누구도 ‘수구 꼴통’이 아니리라 본다. 그러나 ‘수구 꼴통’이 아닌 분이 말더듬이 아저씨한테 “한국말 잘하네?” 하고 한마디를 했고, 아무도 이 말을 그자리에서 안 바로잡았고, 아무도 뉘우치지 않았고, 아무도 뭐가 잘못인지 느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러려니 하면서 웃었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