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3.18. 돌돌돌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이레쯤 앞서부터 ‘어릴적’처럼 붙여쓰기를 합니다. 여태까지 “어릴 적”이나 “어릴 때”처럼 띄어쓰기를 했는데, 굳이 띌 까닭을 더는 찾을 수 없습니다. 둘레를 보면, ‘소년기·유년기·유아기·성년기·노년기’처럼 한자 ‘-기’는 모조리 붙여쓰기를 하면서 새말을 엮는 얼거리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늘 쓰는 수수한 말씨를 차근차근 잇고 익혀서 일구려면 ‘어릴적·젊을적·늙을적·죽을적’처럼 가볍고 수수하게 붙여쓰기를 할 만합니다.


  이러구러 어릴적에 늘 앓고 드러눕고 뻗던 몸이라서, ‘차돌’이라는 이름을 얻은 동무를 늘 유난히 지켜보고 배우려고 했습니다. 차돌 같은 아이 가운데 저보다 키나 덩치가 큰 아이는 없더군요. 저도 어릴적에 조그맣고 여린 몸이었지만, ‘차돌이’는 참말로 작아요. 차돌이는 늘 참하고 차분히 지켜보고 헤아리는 매무새요 마음이고, 아무리 밉놈이나 막놈이 무슨 저지레를 일삼더라도 이놈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서 굵짧게 한마디를 하더군요.


  처음부터 다그치거나 막아세우지 않던 차돌이입니다. 누구나 왜 그런 짓이나 일을 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몽땅 듣고 나서 생각하더군요. 어떤 잘못이나 저지레를 일삼는 다른 아이도 까닭이 있게 마련이니, 먼저 말썽쟁이 마음부터 풀어내려고 하면서, 이다음에 말썽쟁이가 일으킨 말썽을 차근차근 다독이고 추슬러요.


  차돌이가 하는 말과 짓과 눈길을 늘 지켜보았습니다. 차돌이는 다른 뭇사람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배운다면, 저는 스스로 배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고 여겨서 차돌이를 오래오래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날 차돌이가 불쑥 묻더군요. “넌 왜 자꾸 날 보니?”


  차돌이한테 “나는 스스로 할 줄 아는 일이 너무 없는데, 넌 참 당차게 잘 하더라. 그래서 때와 곳마다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싶어서 가만히 보았어.” “그런데, 너는 너대로 해야 하는데, 내가 하듯이 네가 할 수 없잖아. 넌 너를 봐야 네 길을 찾을 수 있어.”


  아마 열한 살 무렵에 주고받은 말일 텐데, 그무렵에는 그저 벙뜬 채 듣기만 했다가, 쉰 살 언저리에 이 말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지난 흙닐(3.15.)에 부산으로 건너가서 이틀을 지내고서 어제 달날(월요일)에 고흥으로 돌아왔어요. 고흥집으로 돌아와서 어찌저찌 20시 무렵까지 큰아이랑 곁님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곯아떨어졌고, 04시 즈음에 느즈막이 일어났습니다. 저로서는 04시에 눈을 뜨는 하루는 ‘늦다’고 여깁니다. 으레 01시나 02시에 하루를 여니까요.


  어제와 그제와 그끄제 겪은 여러 일을 돌아보면서 오늘과 모레와 글피에 할 여러 일을 그리는 하루입니다. 저는 여태 “똑같은 길”을 걸은 바가 없습니다. 남이 본다면 “똑같은 길”만 다니는 듯 보일 테지만, 저는 “남이 보는 똑같은 길”이 아니라 “어느 길을 가든 늘 새롭게 빛나는 길”이라 여기며 걷습니다.


  스무 살부터 하던 손빨래를 쉰 살에도 하고, 여덜 살부터 한나절(4시간)쯤 가볍게 걸어다니는 살림인데, “똑같은 일”을 한다고 여기거나 느낀 적이 없어요. 얼핏 보면 “되풀이하는 몸짓”일 테지만, 언제나 처음으로 마주한다고 여기면서 합니다. 두 아이 천기저귀를 손빨래를 하고 삶고 다스려서 대던 나날도, 밥살림이건 집살림이건 도맡는 나날도, 읽고 쓰고 나누고 짓는 나날도, 어느 하나조차 똑같을 수 없습니다.


  돌돌돌 구르는 차돌로 살아가려는 살림새입니다. 누구나 돌이고, 누구나 돌아보고, 누구나 동무이고, 누구나 두레이고, 누구나 동그라미입니다. 쉬운말을 새롭게 알아차리려고 하면 누구나 깨어나는 빛이자 님입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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