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3.15. 난 돼 넌 안 돼
이른아침에 길을 나선다. 비가 뿌린다. 옆마을에 닿아 시골버스를 기다린다. 새봄 찬비가 내리니 손가락이 언다. 언손을 녹이면서 노래를 한 자락 쓴다. 한참 기다려서 탄다. 버스에서 노래를 옮겨적는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늙은아재가 손을 흔든다. 버스일꾼은 기꺼이 멈추어서 기다려 준다. 그런데 늙은아재가 타니 냄새가 훅 끼친다. 불술(소주)에 절디전 이곳 시골 아재들 냄새이다.
고흥읍내에 닿는다. 부산 가는 버스를 한참 기다리며 노래 한 자락 쓰고서, 지난달 부산마실길부터 쓰던 꽃글(동화)을 마저 쓴다.
그런데 읍내 늙은아재가 아주 걸쭉하게 막말바가지를 푼다. 척 보아도 늙아재 어매뻘 되는 할매더러, 예가 어딘데 좌판을 펴느냐고, 니들 방구석이냐고 새로 걸쭉하게 막말바가지를 푼다. 할매는 잘못했다고 빌며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부산버스를 기다리며 한창 꽃글을 여미는데, 어디서 매캐하고 뿌연 김이 퍼진다. 담배내음이구나. 고흥읍 버스나루에 “금연” 딱종이가 서른쯤 붙었으나 늙아재는 아랑곳않고서 뻑뻑 피위댄다.
막말바가지를 푸던 늙아재는 뭐 하는 분이려나 헤아려 본다. “난 돼 넌 안 돼”를 몸소 보이는 이 매무새를 어찌 읽어야 할까 곱씹는다. 시골 읍내 버스나루에서 담배를 태우는 분을 보면, 일곱은 늙아재에 둘은 할배에 하나는 앳된 젊은사내이다. 이들은 가끔 서울 아가씨가 이곳에 내려서 담배를 물면 오지게 막말바가지를 푸더라.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다. 시골 늙아재한테 책을 쥐어주고서 100점 맞을 때까지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런 시골은 모조리 사라져도 된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