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찬비 찬바람 찬꽃 (2024.10.19.)

― 부산 〈스테레오북스〉



  몸을 입기에 몸으로 삶을 누립니다. 몸을 잊고서 꿈길로 가는 밤에는 오롯이 마음으로 잠기면서 새빛을 마주합니다. 몸으로는 느끼고 받아들이고 내보냅니다. 마음으로는 생각이라는 씨앗을 틔우고 숨빛이라는 자리를 돌아봅니다.


  왜 몸이 있어야 하는지, 왜 순이돌이라는 몸이 다른지, 왜 아이어른이라는 길을 걷는지, 어릴적부터 늘 궁금했어요. 그러나 둘레에서는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왜 마음은 손으로 못 잡는지, 왜 마음은 눈으로 못 본다고 여기는지, 왜 마음이 다쳐도 몸이 아픈지, 왜 마음은 모두 풀고 품을 수 있는지, 어릴때부터 내내 궁금했어요. 그렇지만 마음길을 들려주는 어른을 못 만났습니다.


  어느 날 문득 ‘몸 없는 소리’를 듣습니다. “네가 궁금하면 네가 풀어. 남이 풀지 않아. 남은 궁금하지 않거든.” 적잖은 이웃은 절집에 다닙니다. 절집에 다니는 이웃은 이님한테도 저님한테도 비나리를 하면서 이모저모 묻는 듯하지만, 막상 이웃 스스로 넋에 대고 묻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고서 줄거리를 누구한테 물어야 할까요? 책에 깃든 이야기는 누구한테 묻지요? 책으로 무엇을 배울 만한지 누가 알려주어야 하나요? 책쓴이한테 물어보면 뽀족하게 길을 찾나요? 책쓴이가 이미 죽고 없으면 책을 읽어낼 수 없는가요?


  부산에 닿은 한가을 한낮이 우중충합니다. 구름이 짙게 덮습니다. 〈스테레오북스〉로 찾아갑니다. 골목은 시끌시끌하고 책집은 고즈넉합니다. 골목가게에는 손님이 붐비고 책집은 조용합니다. 찻집과 멋집과 밥집을 찾는 여러 이웃은 이곳에 책집이 있는지 모를 만합니다. 책집을 바라보는 책벌레는 이 골목에 다른 무슨 가게가 있는지 아예 안 쳐다봅니다. 서로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셈입니다.


  몸을 내려놓은 살붙이를 그리며 눈물에 젖는 이웃이 많습니다. 비록 몸은 내려놓더라도 마음은 늘 우리 곁에 있어요. 너나들이로 어울릴 적에는, 서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서 살아도 한마음입니다. 몸을 내려놓고서 하늘로 떠난 분이라면,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신나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빙그레 노래하면서 지켜보리라 느낍니다.


  모든 하루는 나를 나로서 나답게 바라보고 찾아보고 알아보는 길이지 싶습니다. 맑고 밝게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여는 생각씨앗을 마음밭에 심는 오늘이지 싶어요. 늦가을이 코앞인 오늘은 찬비에 찬바람이 곧 밀려들 듯합니다. 가을꽃은 찬꽃마냥 오들오들 떨 테고요. 차가우니 찬날씨일 테고, 차분하면서 찬찬하고 참하니 찬빛이라고 느낍니다. 책 몇 자락을 주섬주섬 읽고 살피고서 일어납니다.


ㅍㄹㄴ


《고을 goeul vol.6 : 부산》(편집부, 로우프레스, 2024.8.16.)

《즐거운 육아를 추구합니다》(배소현, 오늘의기록, 2024.5.8.)

《북성로 맵시》(이준식 사진, 더폴락, 2018.10.20.)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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