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5.3.11.
오늘말. 좀먹다
나무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벌레가 좀먹든 후비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파먹히거나 쓸린 자리를 천천히 다독여서 아물어요. 사람도 매한가지입니다. 움푹 파일 만큼 다치거나 찢어지거나 부러지더라도, 우리 몸은 안 망가져요. 맛가는 일이 없습니다. 한때 피가 나고 아프고 끙끙댈 테지만, 어느새 멍울도 생채기도 사라집니다. 나무도 사람도 새살이 돋으면서 모든 응어리가 없어요. 누구나 잘못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조각날 까닭이 없습니다. 얼핏 폭삭 쓰러지거나 아작나는구나 싶더라도, 우리 삶은 끝나지 않아요. 모름지기 처음부터 새롭게 지으면서 즐거운 삶입니다. 거덜났으면 밑바닥부터 다시 하지요. 와르르 엎질렀으니 차근차근 새삼스레 담아요. 누가 짓이기거나 짓찧기에 아프지 않습니다. 매몰차게 밟는 각다귀가 있으면 스스럼없이 내어줍니다. 넘어지기에 일어섭니다. 자빠지기에 일어납니다. 허물어 놓으면 느긋이 올립니다. 깨지니 맞추고, 깎으니 붙여요.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는 가시밭도 나오고 꽃밭도 나와요. 수렁도 나오고 진구렁도 잇달 만하면서, 무지개와 구름이 너울거려요. 미워하니 박살날 뿐이에요. 그저 이 길을 걷습니다.
부수다·박살내다·바수다·쳐부수다·깨뜨리다·깨다·깎다·결딴나다·거덜나다·헐다·허물다·흐무러지다·무너뜨리다·무너지다·망가지다·망치다·맛가다·죽다·사라지다·없다·없애다·쓰러뜨리다·동강나다·묵사발·수렁·진구렁·나가다·넘어지다·자빠뜨리다·쓸리다·휩쓸리다·씨를 말리다·아작·악살·엎다·엎지르다·와르르·우르르·잘못되다·조각나다·좀먹다·폭삭·후비다·할퀴다·콩가루·터지다·토막내다·파먹다·밟다·뭉개다·이기다·찧다·짓밟다·짓뭉개다·짓이기다·짓찧다 ← 파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