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3.8. 도서협찬



  적잖은 찰칵꾼(사진가·사진작가)은 찰칵이(사진기)를 거저로 받는다. 예전에는 필름까지 거저로 받아서 찍기 일쑤였다. 이들은 으레 ‘CANON’이나 ‘NIKON’이나 ‘PENTAX’나 ‘FUJI’나 ‘KODAK’이나 ‘AGFA’ 같은 이름이 큼직하게 나오도록 끈이나 가방이나 이모저모 차리고서 다니더라. 그들(사진가)이 왜 그렇게 “사진기·필름 회사 이름”을 드러내면서 다니는지 아리송했다가, 아주 나중에야 이 뒷말을 듣고서 한숨이 나왔다.


  벌써 스무 해쯤 지난 일인데, 이른바 우리나라에서 ‘왼쪽(좌파·진보)’이라 일컫는 찰칵꾼이 “넌 왜 그렇게 낡고 싸구려 사진기를 쓰니? 내가 하나 줄까?” 하고 묻더라. “제 찰칵이가 틀림없이 낡고 싸구려이지만, 저는 이 낡고 싸구려인 찰칵이로 제가 담고 싶은 그림을 담아내는 데에 마음을 쏟습니다. 안 쓰는 찰칵이를 주신다면 고맙게 받긴 하겠는데, 안 쓰는 찰칵이가 있을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았다. “나는 사진기 협찬을 받거든. 그래서 주변에 너처럼 가난한 후배들한테 하나씩 나눠줘.” “네? 협찬이요? 사진기를 그냥 받는다고요? 사진기를 그냥 받으면서 사진을 사진답게 찍을 수 있어요? 그런 사진기라면 안 받겠습니다.”


  나는 그토록 글을 많이 쓰기에 붓이며 종이를 허벌나게 쓴다. 그러나 여태껏 ‘연필회사·종이회사·수첩회사’한테서 한 자루나 한 자락이라도 받은 적이 없고, 받아보겠다는 마음조차 없었다.


  머잖아 ‘책마을 일꾼’으로 지낸 지 서른돌을 맞을 텐데, 책마을에서 서른 해 즈음 일하는 동안 ‘도서협찬’을 아예 안 받았다. 책이웃이나 책동무로서 베푼다면 받는다. 이러고서 내 책과 낱말책을 드리기도 하고, 누리책집에서 그곳 책을 사서 다른 책이웃이나 책동무한테 베풀기도 한다. 나는 여태까지 책을 거저로 받은 일이란 없고, 앞으로도 거저로 받을 마음이 없다. 받는 자리에서는 절을 하면서 받되, 반드시 나중에 그 책을 다른 책집에서 산 뒤에 다른 이웃과 동무한테 살그머니 건넨다.


  책글(서평)을 쓰는 자리에 있다면, 100원짜리 책이라 하더라도 거저로 받지 않아야 한다. 거저로 받는 책을 놓고서 어떻게 “책글을 책글답게 쓸” 수 있겠는가?


  책글을 쓰려면, 글쓴이와 펴냄터 이름은 싹 지울 노릇이다. 그저 이 책 하나만 놓고서 옳고 바르고 알맞게 쓸 일이요, 잘잘못과 빈틈과 구멍까지도 낱낱이 다룰 일이다. 거저책(증정본·도서협찬)이란, ‘주례사비평’을 부추기는 막장이라고 여긴다. 책글꾼(도서평론가)이 아니더라도 섣불리 거저책을 안 받아야 마땅하다.


  책 한 자락이 얼마나 된다고 거저책을 안 받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이미 거짓말쟁이에 눈속임꾼에 장사꾼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옛말은 그냥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라 여길 책 한 자락부터 거저로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뭐야? 나한테 책을 안 준다고? 저 글쓴이와 펴냄터는 이제 배부른가 보군?” 하고 거들먹거리기까지 한다. 맞다. 적잖은 책글꾼은 아예 책을 돈 주고 안 산다. ‘신문기자’ 가운데 책을 주머니 털어서 사읽는 이가 몇이나 될까?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까? 아니 한두 손가락으로도 못 꼽지 않을까?


  더 생각해 보자. 책숲지기(도서관 사서)는 책을 사읽을까? 책숲에서 일하는 동안 만나는 아름책을 “이 아름책은 우리 집에 모셔야겠어!” 하고 여기면서 기꺼이 온돈(정가)을 다 치러서 사읽는 버릇이 있을까? 책집지기(책방주인)는 어떨까? 요즈음은 큰펴냄터에서 온나라 마을책집(독립서점)에 ‘드림책(증정본)’을 뿌린다. 큰펴냄터는 ‘드림책’만 1000∼3000자락을 뿌릴 만큼 돈이 많다. 어느 큰펴냄터는 드림책을 5000자락쯤 거뜬히 뿌리기도 한다. 5%는 ‘드림책(홍보용)’으로 돌릴 수 있는 줄 아는가? 작은펴냄터로서는 5%도 빠듯하지만, 큰펴냄터로서는 5%라면 어마어마하게 많다. 어느 큰펴냄터는 ‘주례사서평을 하는 서평단’에 꼬박꼬박 500자락씩 보내는 줄 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 책 한 자락을 거저로 받는 버릇이란, 바로 나라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여태까지 책을 거저로 받아왔다면, 모든 거저책을 헌책집에 그냥 맡기기를 빈다. 이러면서 앞으로는 거저책을 안 받기를 빈다.


  거저책을 ‘알라든중고샵’에 팔지 마라. 거저책을 ‘알라딘중교샵’에 팔면서 돈벌이를 하는 분이 제법 많은 줄 안다. 바늘도둑과 윤씨가 뭐가 다른가? 거저책으로 주례사서평을 써대는 짓과 이씨·박씨가 뭐가 다른가? 다 한통속이다. 부피나 크기가 다르더라도 밑동은 똑같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알라딘서재에

어쩐지

도서협찬 홍보글이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올라온다.


보다 못해서

이런 글을

하나 적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