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말넋 2025.3.6.
오늘말. 즈믄빛
열예닐곱 살 즈음에 처음 ‘즈믄’이라는 낱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뭔 이런 낱말이 다 있나 싶었습니다. 그저 죽어버린 우리 옛말인가 하고 어림해 보면서도, 우리 나름대로 하나둘셋넷 즐겁게 세던 길이 넉넉했다고 느꼈어요. 이러다가 새즈믄을 넘어서면서 한동안 적잖은 사람들이 즈믄길에 즈믄빛을 혀에 얹더군요. 새즈믄을 넘어선 지 스물 몇 해가 지나니, 이제는 즈믄길을 떠올리는 사람도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누가 빗장을 걸거나 채우지 않습니다. 묶는 사람도 묶지 않는 사람도 바로 우리 스스로입니다. 쉰어깨란 무엇일까요? 마흔어깨나 예순어깨가 있어야 할까요? 길턱을 치우지 않는다면 서른어깨나 스물어깨도 있을 테지요. 힘자랑이 아닌, 꼭 기운차게 해야 할 일이 아닌, 우렁차게 선보여야 할 짐이 아닌, 눈꽃 한 송이처럼 보드라운 결로 맞아들일 오늘입니다. 대단해야 하거나 커다랗게 내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이름을 드날려야 하거나 큰돈을 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 끌러요. 그냥 다 풀어요. 마음을 열고 생각을 틔우고 기쁨꽃씨를 한 톨씩 심는 매무새이면 넉넉합니다. 즈믄사람이 나서지 않아도 돼요. 한 사람부터 하면 다 바꿉니다.
ㅍㄹㄴ
즈믄·즈믄길·즈믄꽃·즈믄빛 ← 천(千), 일천(一千)
열다·풀다·가두지 않다·묶지 않다·안 가두다·안 묶다·길턱 없애기·길턱 치우기·끄르다·끌르다·빗장열기·빗장풀기 ← 봉인해제
쉰어깨·쉰살어깨·어깨앓이 ← 오십견(五十肩)
기운차다·기운있다·힘차다·힘있다·힘자랑·힘으로·우렁차다·우람하다·드날리다·드세다·세다·세차다·크다·커다랗다·대단하다 ← 발산개세(拔山蓋世), 역발산기개세
결·푼·금·줄·씨·눈·눈꽃·눈깔·눈금·마디·칸·자리 ← 도(度)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