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미운놈 (2025.1.19.)
― 부산 〈책과 아이들〉
미운놈은 그야말로 밉고 끔찍하게 밉습니다. 믿음을 저버리는 미운놈이니 이곳에서 밀쳐내기를 바라고, 저곳에서도 밀어내기를 꾀합니다. 우리는 미운놈을 죽여서 없애더라도 밉마음을 못 떨치거나 안 삭이게 마련입니다. 싫은놈은 참으로 시시하기에, 싫은놈이 뭔 말이나 짓을 벌이기만 하면 심드렁하게 콧방귀를 뀌거나 등집니다. 우리한테 싫은놈이라면, 이이가 아무리 훌륭하거나 아름답게 보람을 일구어도 콧등으로 안 쳐다봅니다. 그저 다 시들시들하다면서 손사래를 칩니다.
어디까지 ‘바른돌봄(정당방위)’일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저놈이 칼을 휘두르거나 총을 쏘는데, 맨몸으로 고스란히 맞아야 할는지, 저놈은 틀림없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 테니 저놈을 먼저 고꾸라뜨려야 할는지 생각할 일입니다.
내 목소리가 바르고 네 목소리가 틀렸기에, 나 혼자 말하고 너는 입다물어야 할는지 곱씹을 노릇입니다. 붓나래(언론자유)는 어느 한쪽만 붓을 쥘 나래이지 않습니다. 모든 곳 누구나 붓을 쥘 나래를 누릴 적에 붓나래입니다. ㅈㅈㄷ이 아무리 썩어문드러진 뻘짓을 하더라도 ㅈㅈㄷ 입을 틀어막거나 주리를 틀지 않을 줄 아는 매무새와 마음이지 않다면 붓나래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했던 짓을 우리가 고스란히 한다면, 우리도 나란히 주먹질(폭력)일 수밖에 없어요.
이달에 〈책과 아이들〉에서 펴는 ‘바보눈(바라보고 보살피는 눈) 모임 9걸음’에서는 《이 세상의 한 구석에》라는 그림꽃을 놓고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도 이웃나라도 으레 ‘발자취(역사)’라고 하면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나 싸울아비가벌인 주먹질(전쟁·폭력)을 한복판에 두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싸움질만 발자취일 수 없고, 싸움질은 그만 들출 일입니다. 저마다 어떻게 하루를 짓고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나누면서 아이를 돌본 나날이었는지 그리는 이야기야말로 발자취라고 느낍니다. 여태까지 나온 모든 ‘역사책’은 모두 내려놓고서, 오늘부터 ‘살림자취’를 새롭게 써서 우리 스스로 되읽고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지 싶습니다.
미운놈을 자꾸 떠올리기에 미움씨를 심습니다. 아이 곁에 서면서 아이하고 짓는 살림을 헤아리기에 살림씨를 심습니다. 네가 나를 괴롭혔기에 내가 너를 괴롭히거나 따돌려도 되지 않습니다. 네가 나를 괴롭히건 말건, 나는 이 삶에서 배울 살림길을 차분히 일구면서 사랑씨를 심으면 넉넉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오래도록 날마다 얻어맞고 시달리고 따돌림받는 나날을 보냈습니다만, 누가 저를 때렸기에 저도 똑같이 때릴 마음이 없습니다. 새길을 그립니다. 사랑받지 못 했다고 여기는 이들이 주먹을 휘두르기에 사랑꽃과 사랑숲을 그려요.
ㅍㄹㄴ
《전설의 초콜릿》(미야니시 타츠야/고향옥 옮김, 달리, 2024.1.26.)
#みやにしたつや #でんせつのチョコレト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이혜미, 톰캣, 2024.12.30.)
《황새알마을 아이들》(안미란 글·공동환 그림, 부산 연제구 거제1동, 2020.11.30.)
《09:47》(이기훈, 글로연, 2021.10.25.)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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