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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아이들 - 아이들 시 모음, 새로 고침판 ㅣ 이오덕의 글쓰기 교육 7
이오덕 엮음 / 양철북 / 2018년 2월
평점 :
이오덕 읽는 하루
― 사랑으로 말하고 쓴다
《일하는 아이들》
이오덕 엮음
청년사
1978.2.15.
글이란 언제나 그림입니다. ‘글’이라는 낱말은 ‘그리다’에서 비롯했습니다. 모름지기 ‘글·그림’은 같지만 다른 말입니다. ‘글’은 노래·놀이가 물처럼 언제나 즐겁게 흐르듯이 피어나는 결을 그린다면, ‘그림’은 눈으로 넉넉히 담아내는 결을 그립니다.
그려서 글인데, 글이란 늘 말을 그립니다. ‘말’을 옮기기에 글이라고도 하지만, 제대로 들여다보면 모든 글은 “말을 눈으로 그림처럼 보도록 그린 모습”이라고 여겨야 알맞습니다. 우리는 말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리는 ‘글’을 펴면서 서로 말을 나누는 셈입니다. 글을 남긴 분이 이미 즈믄해쯤 앞서 이 땅을 떠났어도 글을 읽는 사이에 ‘떠난 글님’하고 말을 섞을 수 있습니다.
이제 말이 무엇인지 살펴야 할 테지요.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입니다. 말을 안 하더라도 눈짓이나 몸짓에도 마음이 묻어나기에, 눈짓과 몸짓으로 마음을 알아보기도 합니다. 다만 숱한 사람들은 한 마디를 하지요. “말을 안 하는데 네 마음을 어떻게 알아?” 하고요.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바로 “마음을 담은 소리인 말을 다시 눈으로 쉽게 바로 그때그때 언제까지나 알아보려는 뜻으로 그린다”고 할 만합니다. 이 얼거리를 읽어낸다면 ‘글쓰기 = 말그림 = 마음쓰기’인 줄 알아채면서 어떤 마음을 어떤 말로 담아서 어떤 글로 그릴 적에 스스로 빛나는 줄 깨달을 만합니다. 이 얼거리를 읽지 않는다면, 꾸밈글과 치레글과 허울글과 겉글에서 맴돌고요.
잘 쓴 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쓴 글”만 있습니다. 때로는 “마음을 안 쓰고서 꾸미는 글”만 있을 테지요. 이를테면 보람(상·당첨)을 노리며 쓰는 글이라면 마음이 아니라 딴청을 하면서 허울을 드러내는 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잘 쓴 글 = 그저 꾸며서 속이는 글”입니다. “마음을 쓴 글 = 마음을 나누려는 글”입니다. 마음을 나누려는 말이나 글은 “잘하다 못하다”가 아닌 오롯이 “마음을 나누려는 빛”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지 짚어야 할 테지요. 마음이란 바로 ‘삶’입니다. “좋은 삶”도 “나쁜 삶”도 “기쁜 삶”도 “슬픈 삶”도 아닌, 그저 내가 나로서 오늘을 누리는 삶이 고스란히 깃드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말로 나타낸다”고 할 적에는, 내가 스스로 오늘이라는 삶을 보낸 모든 이야기를 가리거나 숨기거나 보태거나 꾸미지 않으면서 “그저 그대로 담아서 편다”는 얼거리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보고 짚는다면, ‘글쓰기 = 말그림 = 마음쓰기 = 삶쓰기’라는 길을 환하게 맞아들일 테고, 이 글결을 읽기에 낱말을 하나하나 깊고 넓게 짚고 다루면서 ‘글쓰기’라는 하루를 짓는다고 느낍니다.
《일하는 아이들》이 책으로 태어난 1978년에 깜짝 놀란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1978년까지도, 또 이해 뒤로도 우리나라는 여태 ‘꾸밈글’을 “잘 쓴 글”로 삼습니다. 스스로 보낸 삶을 쓰는 ‘삶글’을 눈여겨보지 않은 글밭(문학계)입니다. 스스로 짓는 살림을 담는 ‘살림글’은 새봄글(신춘문예)로 안 뽑은 글밭(문학단체)입니다. 어린이가 읽는 책도 어른이 읽는 책도 온통 ‘꾸밈글’이 흘러넘쳤습니다.
이오덕 님은 《일하는 아이들》을 묶어내기 앞서 ‘어린이가 스스로 삶과 살림과 사랑을 담은 글’을 꾸준히 여미었고, 이렇게 길잡이(교사)가 아이 곁에서 길동무에 삶동무로 지내면서 북돋우자고 가르쳤습니다. 이오덕 님한테서 배운 분으로서는 이 책이 그리 대수롭지 않았어요. 진작에 나올 만한 책이 이제서야 겨우 나올 수 있었다고 여길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 곁에서 함께 일했습니다. 굳이 ‘아동노동’ 같은 일본말을 빌지 않더라도, 아이도 언제나 일꾼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쉬잖고 일하는 어버이를 지켜보는 아이들은 먼저 스스럼없이 “어무이, 나가 뭐 도울 일 없나?” 하고 여쭙니다. “아부지, 나가 좀 도울랑게.” 하면서 소매를 걷어요. 아이들은 어버이 일감을 조금 나누어 받으면서 온몸으로 깨닫고 온마음으로 배웁니다. “아, 나는 고작 요 조그마한 일감일 뿐인데 얼마나 손이 시리고 힘들고 등허리가 결리는가! 울 엄마아빠는 날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이 보금자리를 일구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숱한 시골 엄마아빠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22시간을 일하더라도 가난했습니다. 낛꾼(소작인)은 땅이 없어서 땅을 빌리는데, 땅지기는 굳이 일을 안 하더라도 낛꾼한테서 받는 몫으로 배부를 뿐 아니라 해가 갈수록 살림이 불어납니다. 시골 엄마아빠는 눈을 붙일 짬조차 없이 바쁘고 고되기도 하지만, 배움터에 나갈 일도 없고, 글을 읽거나 배울 짬도 없습니다. 이 나라 멧골자락 가난한 집 시골아이도 거의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배움터 없던 시골과 멧골”에 작은곳(분교)이 생겼고, 이 작은곳을 다니는 아이들은 비로소 ‘글구경’을 합니다. 적잖은 ‘작은길잡이(분교장)’는 아이들을 팽개쳤지만, 이오덕 님처럼 뜻있는 작은길잡이도 드문드문 있었어요. 그리고 이오덕 님은 작은길잡이로서 일군 열매를 둘레에 널리 나누었습니다. 멧골아이가 처음으로 쥐는 글붓으로 처음으로 적은 쪽글을 알뜰히 여미어 하나씩 베풀었어요. 1950∼70해무렵 멧골아이는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내가 쓴 글을 실은 책”을 누렸습니다.
《일하는 아이들》에 실은 어린이글을 보면, “아이 목소리를 담은 글”일 뿐 아니라, “엄마아빠는 말할 틈도 글쓸 짬도 없으나, 아이가 엄마아빠 일살림을 고스란히 담아낸 글”이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이 일한 삶과 살림과 사랑을 옮긴 글이란, 이 아이들 엄마아빠가 어릴 적에 똑같이 하던 일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느 글바치도 삶글과 살림글과 사랑글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문학’뿐 아니라 ‘역사’와 ‘철학’과 ‘종교’와 ‘예술’도 ‘삶글·살림글·사랑글’은 시시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멋글’을 쓰기에 바빴습니다. 그들은 멧골도 시골도 아닌 ‘서울’에서 꾸밈글만 써대었습니다.
《일하는 아이들》은 온몸과 온마음으로 온삶을 일군 땀방울도 담아내지만, 사투리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스스로 지은 삶을 스스로 적으면서, 스스로 빛나고 스스로 노래하는 말글을 선보여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살린 꾸러미를 꼽는다면 바로 《일하는 아이들》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말을 고스란히 담은 글이요,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말이요, 삶을 고스란히 담은 마음입니다.
ㅍㄹㄴ
이 시집을 펴내는 뜻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시를 알고 시를 씀으로써 인간답게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음 또 하나는 교사와 부모들이 순진하고 정직한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그들과 함께 시의 세계에서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교과서를 가지고 시험 점수 따기 공부만을 하기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는 데다가, 글짓기까지도 상타고 이름 내기 위해 하는 거짓스런 말재주놀이가 되고 있다. 특히 괴상한 동시란 것을 쓰면서 저도 몰래 꾀부리고 거짓을 꾸미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3쪽/이오덕)
봄아, 봄아, 오너라. / 나는 봄이 오면 / 따뜻한 곳으로 지게 지고 / 나무하러 간다. / 나무를 가득 지고 / 집에 갖다 놓고 / 또 나무하러 간다. / 봄이 오면 나는 날마다 나무하고 / 보리밭도 멘다. (12쪽/안동 대곡분교 2년 이용옥 71.2.6.)
퇴비를 이고 / 재까지 오니 / 고개도 아프고 / 학교가 보여서 / 가지고 가기 싫어졌다. / 이것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 선생님한테 혼이 난다. / 또 머리에 이고 / 걷기 시작했다. / 학교에 다다랐다. / 퇴비를 가지고 온 여자아이는 / 보이지 않는다. / 교문을 들어설 때 /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 그래도 꾹 참고 / 교문 앞에 두고 …… (39쪽/문경 김룡 6년 최영순 72.)
아버지는 소를 몰고 나와 막 때린다. / 소는 들로 뛰어다닌다. / 아버지는 소 뒤를 따라가다가 소 고삐를 밟는다. / 소는 확 돌아서 눈물을 흘린다. (64쪽/문경 김룡 5년 송원호 72.4.)
우리는 촌에서 마로 사노? / 도시에 가서 살지. / 라디오에서 노래하는 것 들으면 참 슬프다. / 그런 사람들은 도시에 가서 / 돈도 많이 벌일 게다. / 우리는 이런 데 마로 사노? (101쪽/안동 대곡분교 2년 김종철 69.10.6.)
파랑새야, 어얘 사노? / 사람이 총으로 쏘기도 하고 / 약도 놓고 하면 어얘 사노? / 파랑새야, 너는 약을 놓으면 / 밥이라고 먹다가 죽는다. / 파랑새야, 약을 먹지 말아라. (128쪽/안동 대곡분교 3년 김해자 68.12.11.)
언니가 / 아침에 일어나서 / 밥을 하는데 / 손이 발발 떤다. / 그래 나는 불쌍하다 / 할라 항깨 그렇고 / 안 할라 항깨 안 됐다. (146쪽/상주 청리 2년 전윤희 62.12.4.)
땅을 파니 / 새싹이 돋아나느라고 / 노랗게 올라옵니다. / 따뜻한 니가 / 올라옵니다. (232쪽/상주 공검 2년 김진순 59.3.25.)
논물에 / 하늘이 보인다. / 하늘이 기쁘다. / 그 논길에 걸어가니 / 어리어리하네. / 곧 빠질라 한다. / 고이 고이 갔다. (266쪽/안동 대곡분교 3년 홍옥분 69.6.1.)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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