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2.1. 맞춰주기
사람은 서로 맞춰줄 수 없다고 느낀다. 풀도 꽃도 나무도 서로 하나도 안 맞춰준니다. 덩굴은 큰나무한테 묻지도 않고서 친친 감아오르면서 살아남으려고 하고, 큰나무는 사람을 불러서 덩굴을 떨구려고 한다.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사랑할 수 있다. “사람을 고쳐쓰다”라는 말은 “내가 널 고쳐놓을 수 있어!” 하고 외치는 셈인데, 어느 누구나 남이 나를 고치지 못 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내가 널 고칠 마음은 없어. 나는 나를 사랑하면서 이 삶을 노래할게.” 하는 하루로 나아갈 적에, 내 곁에 있는 남도 어느새 스르르 풀리고 녹으면서 그이가 스스로 바꾸고 달라지고 거듭나는 길을 가게 마련이라고 본다.
우리가 입밖으로 내놓거나 내거나 내뱉은 모든 말은 언제나 ‘내가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모든 말은 언제나 나한테 돌아오는데, 우리가 읊는 모든 말은 ‘멀거나 가까운 앞날에 내가 스스로 들어야 할 말’을 읊는 셈이라고 느낀다.
그러니까 ‘내가 읽는 책’이란 ‘내가 배워야 할 책’인데, ‘내가 배워야 할 책’은 ‘내가 좋아하려는 책’이 아니라, 샅샅이 뜯고 헤쳐서 새롭게 엮어야 할 밑조각이지 싶다. 먹은 밥과 술이 똥과 오줌으로 나오듯, 읽은 모든 책과 이야기와 줄거리는, 다시금 ‘내 말’로 흘러나오게 마련이지. 그래서 내 입에서 “난 너를 고쳐쓰겠어!” 하는 말이 나온다면, 여태까지 읽은 책과 이야기와 줄거리를 그대로 따른 말인 셈이고, 이제부터 내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온다면, 그동안 내가 읽은 책을 ‘스스로 바꾸었다’는 뜻이다.
나하고 다르기에 만나다. 나하고 같으면 만날 수 없다. 나하고 같은데 억지로 붙여서 만나려고 하면, 둘은 그만 펑 하고 터지고, 더 불같이 싸운다.
나랑 맞거나,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랑 짝을 맺거나 함께살 적에는, 한결같이 싸우고 지지고볶다가 으레 마음과 몸이 다 다친다고 느낀다. 나랑 안 맞는 사람이기에, 나랑 다른 사람이기에, 내가 나부터 스스로 사랑하면서 이 삶을 노래하려는 하루이기에, 이 ‘다른빛’이 “다르면서 사람이라는 하나인 빛”인 줄 받아들일 수 있을 적에, 이리하여 이렇게 짝을 맺는 길에서는 언제나 서로서로 살피고 헤아리고 생각하면서 ‘나사랑’이란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살림살이를 이룬다고 느낀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