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시를 써요 - 아이들 시 쓰기 이오덕의 글쓰기 교육 6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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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읽는 하루

― 오늘 읽기



《우리 모두 시를 써요》

 이오덕

 양철북

 2017.9.25.



  일하다가 다치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누구나 으레 다칩니다. 아이는 다치면서 어느새 낫고, 앓으면서 조금씩 삶과 몸을 알아가면서 천천히 철들어 어른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날 숱한 ‘일자리’는 “일하는 자리”가 아니라, “돈을 벌어서 서울에 터를 잡고 버티는 자리”이기 일쑤입니다. “일을 하며 살림을 가꾸고 보금자리를 일구어서 스스로 즐겁고 한집안이 오붓한 길을 바라는 일자리”는 어떤 ‘틀(회사·공장·공무원)’로도 이루지 못 하거나 않습니다. 먼지 하나라도 들어왔다가는 공장 기계가 망가지니, 공장은 그토록 깐깐하고 모질며 차갑습니다. 누구한테나 고르게 맞추려는 틀을 잡으려고 하기에 ‘공직사회’도 똑같이 깐깐하고 모질며 차가울 뿐 아니라, 이러한 틀(회사·공장·공무원)에 스스로 맞추어서 “돈을 버는 자리”를 얻으려고 하니, 아주 마땅히 힘들고 지치게 마련입니다.


  서울(도시)에 있는 일자리 가운데, 햇볕을 넉넉히 쬐면서, 풀꽃과 나무를 늘 마주하는 곳에 세운 일터가 있을까요? 아마 한두 군데 있을는지 모르나, 모든 공공건물과 회사건물과 공장에는 나무는커녕 들풀 한 포기조차 자랄 틈이 없고, 멧새나 풀벌레나 개구리는커녕 매미조차 깃들지 못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조차 농약과 비료와 기계와 비닐로 덮어씌웁니다. 이뿐 아니라, 이제는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으로 멀쩡한 논밭에 시멘트로 터를 다져서 유리온실을 때려짓고는 와이파이로 다룹니다. ‘공장식 축산’과 똑같은 ‘공장식 농업’으로 간다면서, 몇 조 원도 아닌, 몇 백 조 원을 들이붓는 나라입니다.


  ‘일’이란 무엇인지부터 처음으로 돌아가서 들여다볼 적에 비로소 실마리를 푼다고 느낍니다. 왜 “지불되지 않는 사회”일까요? 삶자리·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가 아닌, 더구나 일자리조차 아닌 ‘돈벌자리’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사람들을 ‘돈벌자리’로 내모는 탓이 하나에, 나라가 사람들을 ‘돈벌자리’로 내모는 줄 알면서도 그냥그냥 ‘서울에 깃들어서 돈벌자리를 쥐는 우리 스스로’ 모든 수렁을 깊이 판다고 느낍니다.


  《우리 모두 시를 써요》는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길잡이책입니다. 노래를 즐겁게 쓰는 길을 알려주는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어린이한테 노래쓰기를 들려주고 이끄는 몫은 어른이요, 어른으로서 어린이한테 노래쓰기를 들려주고 이끌려면 먼저 어른부터 노래를 쓸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 시를 써요》는 아이어른이 함께 노래를 쓰고 엮고 짓고 부르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밝히는 얼거리입니다.


  어른은 어떻게 노래를 쓸 만할까요? 바로 어른 스스로 짓는 일을 쓸 노릇입니다. 아이는 어떻게 노래를 쓰면 될까요? 바로 아이 스스로 누리는 놀이를 쓰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숱한 어른은 ‘일’이기보다는 ‘돈벌이’에 매입니다. 일을 하는 어른이 아닌, 돈을 버는 서울살이에 매인 몸이라서, 막상 어른부터 노래를 쓰거나 부를 겨를이 빠듯합니다.


  아이도 매한가지입니다. 오늘날 숱한 아이는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못 놀거나 안 놀아요. 온나라 아이들이 손전화에 고개를 처박는데, 그나마 손전화를 가끔 들여다보는 아이들은 이미 배움수렁(학교·학원)에 갇힌 채 온하루를 보냅니다. 어른도 갇히고 아이도 갇혀요. 아니, 어른이 먼저 스스로 가둔 탓에 아이도 가두었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아픈 이웃한테 귀를 기울이려면, 서울부터 떠나면 된다고 느낍니다. 사람한테 시달리고 죽는 뭇소리부터 귀를 기울여야, 드디어 사람이 왜 아프고 죽는지 알아본다고 느낍니다. 가을겨울에 봄이면 우리나라는 모든 곳에서 가지치기를 끔찍하게 일삼는데, 길나무 가지를 마구마구 자를 적에 “내 팔이 잘리는구나” 하고 느끼는 분이 갈수록 줄어듭니다. 서울(도시)을 넓히면서 들숲메를 깎아내는 삽질이 날마다 불거지지만, 살갗으로 하나도 안 아픈 사람도 갈수록 늘어납니다. 나라에서 몇 백 조 원에 이르는 돈을 ‘해상 국립공원’ 바다에 쏟아부어서 태양광과 풍력시설을 박는데, 바다가 앓고 아픈 줄 느끼는 사람도 갈수록 사라집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먼저 들숲바다가 앓아눕고 죽어가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싶습니다.


  노래를 쓰려면 노래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노래란 ‘유행가·대중가요’가 아닙니다. 놀면서 터져나오는 웃음가락이 바로 노래입니다. 놀이란 노래하면서 짓는 가볍고 신나는 노을빛 같은 몸짓입니다. 노래하고 놀이는 늘 하나입니다. 놀이하기에 노래하고, 노래하기에 놀이하는 얼개이니, 아이어른이 함께 기쁘게 일하고 어울리는 삶자리에 있을 노릇입니다.


  사람이 노래하고 새가 노래합니다. 풀벌레가 노래하고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나무가 노래하고 풀꽃이 노래합니다. 별이 노래하고 바람과 바다가 노래합니다.


  우리가 노래를 쓴다고 할 적에는 이 모든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서 마음을 담는 하루를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온누리 푸른노래에 등돌리는 굴레라면 노래를 모르지요. 온누리 파란노래에 눈감는 쳇바퀴라면 노래를 아주 잊고 잃습니다.


  누구나 쓰는 노래요 글입니다. 누구나 부르고 읽는 노래요 글입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나란히 노래님으로 서는 터전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손을 잡고 걷는 하루를 살고, 어깨를 겯고 웃고 춤추는 오늘을 지어야지 싶습니다. 겉으로 꾸미는 흉내가 아닌,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가다듬으면서 속삭이고 나누는 노래쓰기와 글쓰기를 돌아볼 일입니다.


  노래쓰기란 오늘쓰기입니다. 글쓰기란 하루쓰기입니다. 오늘쓰기란 삶쓰기요, 하루쓰기란 살림쓰기입니다. 모든 쓰기는 짓기에 빚기에 가꾸기에 가다듬기에 나누기입니다. 오늘을 숲빛으로 사랑하면서 부드러이 일구는 둘 사이로 빛나기에 스스럼없이 노래가 샘솟습니다.


ㅅㄴㄹ


시는 누구든지 쓸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5쪽)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참 기쁨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를 쓸 수 없습니다 … 남의 아픔을 내 아픔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 많아도 어린이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입니다 … 시를 쓰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7쪽)


무엇이든 멀리 하고 있으면 이해를 못 하고, 싫고, 밉고, 적이 되고 말지요. 옛날의 어린이들은 밤에 개구리 소리를 들었을 때 자장가를 듣는 기분이 되어 잠을 잤는데, 요즘 어린이는 도리어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 짜증이 나고 잠이 안 오는 것 같으니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것 아닐까요? (15쪽)


‘내 그림, 내 글은 내 마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남의 시를 읽을 때 얼마나 훌륭한 말로 유식하게 썼나 하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다만 마음에 울려오는 것이 있나 없나, 곧 감동이 느껴지나 안 느껴지나 하고 보아야 합니다. (34쪽)


감동은 없지만 재미로 읽히는 것, 재미로 불리는 것, 이것이 동요입니다. 이런 동요는 어른들이 씁니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더구나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재미있게 읽히기 위해 써 보이는 것이니, 이런 것을 흉내내어 써서는 안 됩니다. (39쪽)


남 따라 그럴싸한 말을 생각해 내어 써서는 결코 시가 되지 못합니다. (89쪽)


유행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유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예 시를 쓸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121쪽)


시가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면 마땅히 일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일하는 기쁨을 보여주는 시가 많아야 할 것인데 사실은 일하는 시가 아주 드뭅니다. 드물다기보다 거의 없습니다. 어른들이 쓰는 시도 그렇고 어린이가 쓰는 시도 그렇지요. (231쪽)


어린이들이 그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면 그것이 훌륭한 비판이 되기 예사입니다. 이런 어린이들의 소리를 슬기로운 어른들은 귀담아듣고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250쪽)


+


도리어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 짜증이 나고 잠이 안 오는 것 같으니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것 아닐까요

→ 도리어 이 소리가 귀에 거슬려 짜증이 나고 잠이 안 온다고 하니 뭔가 크게 잘못이 아닐까요

15쪽


‘할머니가’라고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 ‘할머니가’라고 써야 맞습니다

→ ‘할머니가’라고 쓰기를 바랍니다

212쪽


이런 어린이들의 소리를 슬기로운 어른들은 귀담아듣고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 이런 어린이 소리를 슬기로운 어른은 귀담아듣고서 크게 깨닫습니다

25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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