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민음의 시 162
강기원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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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6.

노래책시렁 473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강기원

 민음사

 2010.2.26.



  깊밤(동지)이 지나간 지 달포에 이르면 새봄(입춘)에 이릅니다. 새봄은 아직 늦겨울이되, 겨울이 저무는 철이라서 밤에는 얼어도 낮에는 사르르 녹습니다. 날마다 새벽이 더 일찍 찾아오고, 밤은 더 느슨히 다가오지요. 언제나 갈마드는 날씨입니다. 겨울이 오는구나 싶을 즈음은 여름이 떠나는 때입니다. 여름이 가깝구나 싶을 무렵은 겨울이 스러지는 때예요. 그런데 어느 철이건 해바람비는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다 다른 숨빛으로 감돌면서 어울리는 나날입니다.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을 읽으며 철눈을 되새깁니다. 별밭은 어떻게 별밭을 가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있는 이 누리에서 저기에 있는 저 누리로 어떻게 건널 만할까요. 눈을 감으면 눈앞이 감감합니다. 까맣지요. 감기에 감장(검정)입니다. 머리를 감아 머릿결이 더 까맣고, 감싸안으면서 서로 가까이 마주하며 고요히 숨을 돌립니다. 모든 다 다른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다 다른 말로 저마다 ‘우리누리’를 그립니다. 우리는 오랜 우리말씨로 오늘과 모레와 어제를 하나로 잇는 길을 이을 만합니다. 수수하게 말하기에 숲으로 가는 순이입니다. 수수말씨를 잊는 곳에서는 누구나 길을 잃습니다. 수수하게 수다를 잇기에 마음이 하나 있으면서 이야기로 번집니다.


ㅅㄴㄹ


술이 싱겁다 여겨지면 날 선 단도로 짭조름한 다리 살 슥 슥 베어 씹어 대고요 / 가십과 고기는 역시 씹어야 맛이니까요 / 잠시 끊어졌던 얘기 어디까지였더라? 지나간 말꼬리 휘익 잡아채 이어 가는 건 문제도 아닙니다 / 매달린 다리가 떨구는 핏물에 아니, 살집 오른 소문에 / 사람들 얼굴은 점점 불콰해지고 돼지는 돼지답지 않게 창백해져 갑니다 (하몽/22쪽)


탁본을 뜨자는 아우성 뒤로 한 채 / 입에 박힌 바늘을 / 조심스레 빼낸다 / 그의 변신을 방해할 마음이 내게는 없다 (늙은 우럭/32쪽)


+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강기원, 민음사, 2010)


내가 네게로 갈수록 네가 내게로 올수록 우리는 만발하고 시든다

→ 내게 네게 갈수록 네가 내게 올수록 우리는 흐드러지고 시든다

→ 내게 너한테 갈수록 네가 나한테 올수록 우리는 짙고 시든다

14쪽


또다시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 또다시 죽으러 걸어간다

→ 또다시 죽는 길을 걸어간다

21쪽


탁본을 뜨자는 아우성 뒤로 한 채

→ 무늬를 뜨자는 아우성 뒤로 한 채

32쪽


너라는 캔버스 위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환상의 몽타주

→ 너라는 천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빛나는 얼굴그림

→ 너라는 그림천에 덕지덕지 붙인  눈부신 차림그림

66쪽


나의 스텝은 너의 스텝과 달라도 너무 달라

→ 내 발걸음은 너와 달라도 너무 달라

→ 나는 너와 다르게 걸어

70쪽


우린 스핑크스 동물만도 사람만도 아닌 반인반수 우린 번갈아 짐승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 우린 두너머 짐승만도 사람만도 아닌 사람짐승 우린 갈마들어 짐승이 되다가 사람이 되다가

→ 우린 두몸 짐승만도 사람만도 아닌 짐승사람 우린 갈마들어 짐승이 되다가 사람이 되다가

72


캄캄한 도시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 캄캄한 서울로 돌아간다

83쪽


촉수도 마음의 더듬이도

→ 손도 마음더듬이도

→ 손길도 마음더듬이도

→ 숨결도 마음더듬이도

84쪽


밤의 식탁에서 나는 쓴다

→ 나는 밤자리에서 쓴다

91쪽


밤의 복화술사일 뿐 어느덧 새벽의 비린내가 끼쳐 온다

→ 밤을 벙긋거릴 뿐 어느덧 새벽 비린내가 끼쳐 온다

→ 밤을 방긋거릴 뿐 어느덧 새벽 비린내가 끼쳐 온다

97쪽


최초의 창조물이 그랬듯이

→ 첫사람이 그랬듯이

10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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