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길에서 나무 (2024.8.23.)
― 전북 전주 〈조림지〉
전남 고흥에서 경남 진주로 ‘우리말로 노래밭(시쓰기 수업)’을 하러 가는 길에 전북 전주로 책집마실을 갑니다. 전남 고흥에서 경남 진주로 가자면 11시간쯤 걸립니다. 배움자리에 못 맞추기에 하룻밤 미리 나선 길을 전주에서 보내기로 합니다. 어느 책집부터 들르면 즐거울까 하고 어림하다가 〈조림지〉로 걸어가는데, 곳곳에서 삽질을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는 ‘관광’을 아주 잘못 바라봐요. 길바닥이며 알림판을 새것으로 갈아야 번쩍거리면서 나은 줄 여기더군요. 그러나 ‘봄(관광)’이란, 이웃을 보고 이웃마을을 보며 이웃살림을 보려는 길입니다. 낡거나 나쁘거나 나은 모습은 따로 없어요. 손길을 받고서 고스란히 이은 살림살이가 모두 다르게 빛납니다.
큰길가에 있는 〈조림지〉에 닿습니다. 거님길은 삽질판이라 시끄럽고 뿌옇지만, 책집으로 깃드니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등짐을 내려놓고서 숨을 고릅니다. 다리를 쉬면서 노래를 한 자락 새로 씁니다. 책이 되어 주는 나무는 오래오래 해바람비를 품고서 푸근한 숨결입니다. 사람은, ‘나무로 빚은 종이’에 ‘사랑으로 일군 살림’을 이야기로 여미어서 얹습니다. 나무란, ‘나(사람)’하고 나란히 서는 곳에서 이웃하는 기운입니다. 종이란, 조촐히 조용히 모두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종이로 조촐히 꾸린 이야기를 읽고 나누면서 생각을 잇는 꾸러미인 책입니다. 언제나 아늑하면서 햇살과 햇빛과 햇볕을 누리는 씨앗숲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글로 추슬러서 담는 그릇인 종이에 책입니다.
전주를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요. 삽질을 멈추고서 종이를 함께 짓는 자리를 펴기를 바라요. 손수 지은 종이에 손수 지은 삶노래를 적어 보기를 바라요. ‘문학’이 아닌 ‘오늘이야기’를 사근사근 쓰면 넉넉합니다.
권정생이라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한창 젊을 적부터 갖은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고, 죽을 뻔했고, 살아났으나 오줌을 빼내려면 고무줄을 옆구리에 박아야 했기에, 젊은날부터 죽는날까지 마흔 해 남짓 ‘고무줄로 오줌을 빼며 살’던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곁일(알바·투잡)을 하느라 힘을 다 쓰는 나머지, 막상 살림지기로 보금자리를 가꾸려고 할 적에는 고단할 수 있으나, 오히려 고단한 몸을 느끼기 때문에 ‘여러 이웃을 더 헤아리는 눈과 손과 귀와 몸과 마음과 넋’을 맞아들이고 배우기도 합니다. 오늘을 이곳에서 살리고 사랑하는 글 한 줄을 새롭게 여밀 수 있어요. 찔레나무랑 딸기덩굴이랑 귤나무랑 초피나무에는 가시가 굵어요. 그렇지만 가시 굵은 푸나무는 꽃도 열매도 소담스럽고 향긋하면서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바도파다》(박가현, 신아출판사, 2023.12.1.)
《아주 커다란 잔에 맥주 마시기》(김은지, 아침달, 2024.6.28.첫/2024.7.15.2벌)
《골렘》(천기현, 조림지, 2024.봄.)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