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너를 부른다 (2024.12.21.)

― 부산 〈카프카의 밤〉



  집에 쌓은 책더미부터 풀자는 마음에 오늘은 느슨히 부산으로 건너갑니다. 부산에 내려서 책집마실부터 하지 않고서 ‘곳간’으로 갑니다. 조촐히 ‘살림씨앗’ 모임을 하고서, 보수동 〈학문서점〉하고 〈파도책방〉을 가볍게 들른 다음에, 연제동 〈카프카의 밤〉으로 갑니다. 어느덧 이응모임(이오덕 읽기 모임) 여덟걸음입니다. 처음 이응모임을 잡을 적에는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를 어렵잖이 장만할 수 있었는데, 올해 12월 첫머리부터 판이 끊기는군요.


  이오덕 어른은 이원수 님이 이끌어서 글빗(평론)을 합니다. 이원수 님이 보기로 우리나라는 글꽃(문학)도 모자라고 옮김(번역)도 어설프지만, 이 두 가지는 어떻게든 앞으로 늘 만하지만 좀처럼 글빗을 맡을 일꾼이 없는 판이라, 아무래도 가장 고되고 힘들 테지만 이오덕 어른더러 글빗길을 걸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 대목을 모르는 분이 많은데, 이오덕 어른이 권정생 님을 알아본 눈도 바로 ‘글빗길’을 걸었기에 싹텄습니다.


  글빗이란, 글을 빗질하는 손길입니다. 머리카락이 엉킬 적에는 가벼운 빗질도 따끔하고 머릿살도 아프지요. 그러나 빗질로 머리카락을 고르면 마음도 몸도 머리도 맑게 가눌 만합니다. 굳이 따끔하게 써야 하지 않으나, 글빗은 모름지기 ‘따끔글·까칠글’입니다. 살살 고르는 빗질이어도 아프다고 여겨 미워하는 글꾼이 수두룩하겠지요. 이러다 보니 추킴질(주례사서평)만 판치면서 글꽃이 곪아요.


  너를 부릅니다. 너머로 같이 날아가고 싶어서 너를 부릅니다. 서로 너를 부릅니다. 이 길은 혼자인 적이 없다고, 네 곁에 내가 있고, 우리 곁에 풀꽃나무에 해바람비에 벌나비가 있으니, 사뿐사뿐 거닐며 노래를 부릅니다.


  누가 곁을 떠나는 일을 받아들이기란 아무리 오랜 나날이 흘러도 사라질 수 없어요. 그런데 떠나는 분은 몸을 내려놓을 뿐, 넋은 늘 우리 둘레에 있게 마련이라고 바라본다면, 우리 삶은 늘 숱한 가없는 더없는 다시없는 사랑으로 둘러싸인 오늘이로구나 하고 보듬을 수 있습니다.


  만날 적에만 반가워서 손을 잡거나 흔들지 않습니다. 헤어질 적에도 다음길을 그리면서 반갑게 손을 잡거나 흔듭니다. 바람이 불어와서 우리 숨결로 스민 뒤에 어느덧 날숨으로 빠져나가서 멀리 갑니다. 샘물 한 모금은 우리 몸을 거쳐 다시 땅으로 깃들어 바다로 나아가더니 빗물로 새삼스레 찾아옵니다.


  오늘 이 하루를 고이 부릅니다. 밥을 잔뜩 먹어야 배부르지 않습니다. 부피만 키우면 펑 터집니다. 봉긋봉긋 겨울꿈을 누리는 겨울잎눈이 천천히 부풀어 갑니다.


ㅅㄴㄹ


《조응》(팀 잉골드/김현우 옮김, 가망서사, 2024.3.29.)

#Correspondences #TimIngold

《케테 콜비츠 평전》(유리 빈터베르크·소냐 빈터베르크/조이한·김정근 옮김, 풍월당, 2022.11.23.)

#KOLLWITZDieBiografie #KOLLWITZD #KatheKollwitz

#YuryWinterberg #SonyaWinterberg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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