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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전설 ㅣ 힘찬문고 32
고토 류지 지음, 박종진 옮김 / 우리교육 / 2003년 11월
평점 :
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1.2.
푸른책시렁 179
《열두 살의 전설》
고토 류지
박종진 옮김
우리교육
2003.11.30.
어쩐지 갈수록 “걷는 어른”도 “걷는 어린이”하고 “걷는 푸름이”도 확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는 으레 교육청에서 노란버스로 집과 배움터 사이로 실어나르고, 서울에서는 거의 어버이가 자가용으로 집과 배움터 사이로 실어나릅니다. 멀건 가깝건 스스로 뚜벅뚜벅 걸어서 마을과 이웃을 느끼고 헤아리면서 하루를 누리는 사람이 확확 줄어들어요.
걸어다니는 사람은 따로 몸쓰기(운동)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걷기란 언제나 온몸쓰기입니다. 걸어다니기에 해바람비를 날마다 새로게 느끼고 누리면서 온하루를 오롯이 온몸으로 배울 수 있어요. 걷는 동안 풀꽃나무를 돌아볼 만하고, 풀내음과 새소리와 하늘빛과 살림살이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걷지 않으니 따로 몸쓰기를 합니다. 걷지 않으니 날씨뿐 아니라 철을 등집니다. 어릴 적부터 마을길을 안 걷는 아이는 나중에 쉽게 마을을 떠나요. 다다른 철과 해와 날을 누린 적이 없으니 굳이 시골에 머물거나 깃들면서 꿈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지 않아요. 철을 익힌 바가 없기에 ‘철을 등진 얼개’인 서울을 바라보면서 냉큼 ‘시골벗이(시골탈출)’로 내달립니다.
《열두 살의 전설》은 어린배움터에서 여섯 해째를 맞이한 다 다른 아이들이 한동아리로 새롭게 잇는 마음을 서로 어떻게 열고 풀면서 철들어 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본 책이름 “12歲たちの傳說”를 일본말씨대로 옮겼는데, 우리말씨로 다듬자면 “12살 이야기”입니다. 열한 살까지는 둘레 어른들이 시키거나 억누르는 대로 휩쓸리기도 했고, 스스로 괴로운 나머지 갖은 몸부림으로 펑펑 터뜨리거나 동무를 괴롭히는 바보짓으로 치닫기도 했다지요. 열두 살에 만난 새 길잡이는 몸집도 키도 조그맣고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었다는데, 작고 작고 그저 작은 사람은 여러 아이들한테 처음으로 ‘어른스러운’ 빛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어른이란 네모반듯한 틀이지 않은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위에서 시키려는 굴레가 아닌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아이 곁에 나란히 서서 함께 배우고 먼저 익혀서 새롭게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해야 옳다고 외치거나 밀어대면 어른이 아닙니다. 저렇게 하면 틀리다가 윽박지르거나 나무라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은 언제나 참하고 착하면서 차분하게 빛나는 눈망울로 이야기꽃을 지피는 사람입니다. 어른은 언제나 아이 말씨를 귀담아듣고서 토닥이고 달래면서 품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거의 안 걸어다닌다면, 이 아이들 둘레 숱한 사람도 ‘어른 아닌 어른 흉내’일 뿐이면서 안 걸어다닌다는 뜻입니다.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비슷한데, 서른 언저리에 이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수수길(대중교통)하고 등집니다. 시골버스에서도 서울버스에서도, 참말로 서른 언저리부터 예순 사이인 나이일 적에는 쇳덩이(자가용)를 몰아댑니다.
쇳덩이를 몰기에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쇳덩이에 몸을 맡기면 12월과 1월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고, 3월과 4월이 왜 다른지 몰라요. 안 걷는 사람은 아이들한테 날씨와 바람결과 비내음을 이야기로 못 들려줍니다. 안 걷는 사람은 아이들한테 새소리와 풀벌레노래와 구름결을 이야기로 못 알려줍니다.
아이는 배움굴레(학교·학원 지옥)에 갇히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른은 아이를 배움굴레에 가두려는 자리일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웃을 모르고 못 만나면서 저 스스로 고요히 들여다보는 눈길을 함께 잃고 잊습니다. 나이를 먹기만 할 뿐인 사람이라면 어진 넋하고 자꾸 멀어가면서 그만 꼬부라지고 꼬인 막대기처럼 굴고 맙니다.
열두 살 아이들이 스스로 열두 살 하루를 노래하는 이야기를 짓도록, 우리가 느긋하고 넉넉하게 아이 곁에 설 수 있기를 바라요. 열두 살 이야기는 스물네 살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윽고 서른여섯 살 이야기와 마흔여덟 살 이야기와 예순 살 이야기로 차츰차츰 뻗으면서 슬기롭고 아름다이 피어난다면, 온누리가 환하게 깨어나리라 봅니다.
ㅅㄴㄹ
“6학년이 된 여러분은 5학년 때와는 다르고, 여러분도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알아가는 건 오늘부터. 오늘부터가 전부입니다.” (28쪽)
릴라 선생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아주 좋아한다. ‘1분 동안 마음대로 말하기’라는 시간도 만들었다. 공부 시작 전에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기 마음대로 발표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는 시간이다. (54쪽)
그때 아이들은 정말 지쳐 있었다. 하야가와는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살고, 아침엔 새벽 5시부터 엄마에게 감시받으며 학습장을 한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띵하다. (77쪽)
내심 겁이 났지만 어머니가 지켜 줄 거라고 믿었다. 학원을 그만두고 일주일도 안 돼서 등판 한가득 난 여드름이 싹 없어졌다. 피부가 매끌매끌! 사실이다 … 어머니도 깜짝 놀랐다. “미안하다. 이렇게 맘고생하는 줄 정말 몰랐다.” 어머니는 울면서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왜, 왜 이래?’ 나는 어쩔 줄 몰랐다. (104쪽)
열혈 선생님은 우리 집에 몇 번이나 쳐들어와서 설교. 나는 대답할 힘도 없었다. 학교는 당한 만큼 돌려주는 그런 곳인가? 솔직히 그런 걸 하기 위해서 일부러 학교에 갈 기운이 없었다. (140쪽)
사실이 그래. 우리는 집이나 학교나 전부 전쟁터를 돌아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야. 보이는 건 모두 적. 너나 할 것 없이 덜덜 떨면서 틈만 노리는 거지. (161쪽)
선생님은 약한 아이를 보호한다는 생각에 기분 좋았을지 몰라도, 미키는 뒤로 몇백 배 더 괴롭힘을 당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왜 모를까? (175쪽)
#後藤?二 #鈴木びんこ
#後藤龍二 #12歲たちの傳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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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전설》(고토 류지/박종진 옮김, 우리교육, 2003)
탁탁 때리며 기합을 넣었다
→ 탁탁 때리며 기운을 넣는다
→ 탁탁 때리며 힘을 넣는다
8쪽
탄식하고 한숨 쉬고
→ 한숨 쉬고
8쪽
소곤소곤대는 말투. 입 안에서 웅얼웅얼거려서
→ 소곤소곤하는 말씨. 웅얼웅얼해서
→ 소곤대는 말씨. 웅얼거려서
22쪽
하야가와의 생떼는 유명하다
→ 떼쟁이 하야가와는 이름나다
→ 하야가와 떼쓰기는 알아준다
→ 하야가와 억지는 왁자하다
30쪽
하기 힘든 말을 과감하게 꺼낸다는 건 장말 용기가 필요하지요
→ 하기 힘든 말을 모두 하려면 참말 씩씩해야 하지요
→ 하기 힘든 말을 당차게 한다면 참으로 의젓하지요
30쪽
농담을 던져 교실에 웃음소리가 터졌다
→ 말놀이로 모둠에 웃음소리가 터진다
→ 익살말로 모둠에 웃음소리가 터진다
47쪽
열의 없는 박수를 쳤지만
→ 힘없이 손뼉을 쳤지만
→ 그냥 손뼉을 쳤지만
51쪽
그래도 대단한 거야. 공인한 거잖아
→ 그래도 대단해. 받아들였잖아
→ 그래도 대단하지. 널리 폈잖아
→ 그래도 대단한걸. 되었잖아
51쪽
허락해 주시지 않아도 단행하려고 했어
→ 받아주시지 않아도 벌이려고 했어
→ 받아들이지 않아도 꾀하려고 했어
→ 안 받아주어도 밀려고 했어
52쪽
나도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턱을 고였다
→ 나도 중얼거리며 책상에 턱을 고인다
56쪽
대변을 보고 왔는지까지
→ 똥을 누고 왔는지까지
57쪽
한밤중에 이불 속에서 호호호
→ 한밤에 이불을 쓰고 호호호
85쪽
한숨을 내쉬면서 중대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그림책 읽기 연습을 시작했다
→ 한숨을 내쉬면서 큰일이라도 다짐한 듯 그림책을 읽어 본다
→ 한숨을 내쉬면서 크게 다짐한 듯 그림책을 읽어 본다
87쪽
아동 학대 얘길 들어 보면 애들도 힘든 것 같고
→ 아이들볶음 얘길 들어 보면 애들도 힘든 듯하고
→ 아이괴롭힘 얘길 들어 보면 애들도 힘들고
88쪽
그런 공부 시간에 앉아 있는 건 고문이야
→ 그렇게 배우며 앉으라면 괴로워
99쪽
누군가가 중얼거리고 있다
→ 누가 중얼거린다
114쪽
식물의 씨앗은 괜찮은데
→ 풀씨는 걱정없는데
→ 풀씨앗은 멀쩡한데
138쪽
오늘 1번 타자는?
→ 오늘은 누가?
→ 오늘은 누구부터?
16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